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앞으로 2~3개월 안에 (경제적) 재앙이 닥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대비 중이다.”
소프트뱅크그룹 손정의(孫正義ㆍ마사요시 손) 회장이 다시 경고장을 날렸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가 온라인으로 개최한 딜북(Dealbook) 컨퍼런스에서다. 손 회장의 우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에 기반한다. 손 회장은 “백신이 개발 중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2~3개월 안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가 아는가”라고 반문했다.
말로만이 아니다. 그는 우선 주머니부터 채우는 중이다. 공격적으로 소프트뱅크의 자산을 매각한 것이 대표적이다. 비단 소프트뱅크의 역대 최대 적자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본경제신문(日經ㆍ닛케이)은 18일 “손 회장이 확보한 현금은 8조엔(약 84조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손정의 회장이 지난해 11월 적자 관련 자구책을 주주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소프트뱅크는 올해 1분기(1~3월) 1조4381억엔(15조2580억원)의 적자를 냈으나 3분기(7~0월)엔 6274억엔(약 6조6400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그사이 손 회장은 연이어 공격적으로 자산을 매각했다. 알짜 기업인 반도체 팹리스(설계 전문) ARM을 미국 엔비디아(NVIDIA)에 400억 달러를 받고 매각했다. 약 80억 달러의 차익을 챙긴 거래였다. 손 회장은 또 중국 알리바바와 미국 T모바일(합병 전 스프린트) 및 소프트뱅크 등 3개 회사의 지분 5조6000억엔어치를 팔았다.
ARM과 소프트뱅크그룹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황소고집이지만 통찰력이 있다는 평가를 받아 온 손 회장이 우려한 “재앙”은 뭘까. 그는 구체적 내용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비유로 들었다. 2008년 9월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 사태는 전 세계 금융위기로 이어졌다. CNBC는 “하나의 사건이 총체적 난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라고 해석했다.
2008년 파산하며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시켰던 리먼 브라더스. AFP=연합뉴스
손 회장은 쌓아둔 현금 활용 방안에 대해 “다양한 옵션이 있다”고 답했다. 닛케이에 따르면 손 회장이 염두에 둔 방안은 인공지능(AI) 관련 기업에 투자하는 것과 자사주 매입 등이다.
상장폐지라는 초강수를 둘지도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날 콘퍼런스의 주요 논점 중 하나도 소프트뱅크의 상장 폐지 여부였다. 손 회장은 2015년부터 꾸준히 상장 폐지 가능성을 흘려왔다. 주주·시장 눈치를 보지 않고 ‘손정의 경영’을 과감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프트뱅크 주가에 대한 불만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상장 폐지를 위해 소액주주 주식을 사들이려면 1000억 달러 이상의 자금이 필요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상장 폐지를 원하는 건 손 회장 본인 한 명뿐”이라는 익명의 소프트뱅크 임원 인터뷰를 게재하기도 했다.
손 회장은 이날 관련 질문을 두 번이나 받았지만 모두 “노 코멘트”라고 답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으나, 상장 폐지의 문은 여전히 열어둔 셈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틱톡
한편, 손 회장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면서 손 회장은 “슬프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만들어져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동영상 앱 틱톡 등에 가한 제재를 언급하는 과정에서다. 손 회장은 또 최근 구글 등 빅테크 기업에 대해 미국 정부가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칼을 빼든 것과 관련해서도 “덩치가 크고 파워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악질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