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람보르기니도 버린다’…폴크스바겐 전기차 올인, 현대차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수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와 고급 모터바이크 브랜드 두카티의 분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수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와 고급 모터바이크 브랜드 두카티의 분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 폴크스바겐그룹이 ‘몸집 줄이기’에 나섰다. 내년 본격적인 전기차 경쟁에 ‘올인’하겠다는 의미다.

그룹의 핵심 브랜드였던 슈퍼카 브랜드 람보르기니, 고급 모터바이크 브랜드 두카티의 분사까지 거론되고 있다, 폴크스바겐그룹이 전기차 경쟁에 집중하면 내년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 기반 첫차를 출시하는 현대자동차그룹도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람보르기니·두카티 독립 시사

헤르베르트 디스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은 지난 15일(현지시간) 그룹 감독이사회에서 “이탈리아 회사들(람보르기니·두카티)의 법적 구조(legal structure) 관련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그룹이 이들 브랜드를 분사·독립시킬 것이란 전망은 시장에서 계속 있었지만, 최고 경영진에서 이를 시사한 건 처음이다.

이탈리아 수퍼카 업체 람보르기니는 '카이저 아우토(자동차 황제)'로 불렸던 고(故)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이 아꼈던 브랜드다. 이탈리아 산타가타 볼로냐의 람보르기니 공장에서 SUV 우루스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 람보르기니

이탈리아 수퍼카 업체 람보르기니는 '카이저 아우토(자동차 황제)'로 불렸던 고(故) 페르디난트 피에히 전 폴크스바겐그룹 회장이 아꼈던 브랜드다. 이탈리아 산타가타 볼로냐의 람보르기니 공장에서 SUV 우루스를 조립하는 모습. 사진 람보르기니

지난 9월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차이퉁 등은 “폴크스바겐 그룹이 하이퍼카(초고성능 스포츠카) 브랜드 부가티를 크로아티아의 전기 하이퍼카 업체인 리막에 매각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보도했다. 부가티 매각에 이어 람보르기니·두카티를 분사하거나 독립시키는 건 폴크스바겐 그룹이 양산형 전기차에 집중하겠다는 의미다.

리막은 2009년 설립된 전기 하이퍼카 업체다. 창업자 마테 리막이 51%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고, 폴크스바겐그룹 산하 포르쉐가 다음 대주주(15.5%)다. 현대자동차그룹도 13.7%의 지분을 갖고 있다. 폴크스바겐그룹은 부가티와 리막의 주식을 스왑(맞교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폴크스바겐그룹은 하이퍼카 부가티부터 대중차 브랜드 스코다에 이르기까지 12개 브랜드를 거느린 ‘완성차 공룡’이다. 한때 ‘최고의 포트폴리오’라는 찬사를 받았지만, 미래 차 변혁에 맞닥뜨리면서 선택과 집중의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이 지난해 5월 크로아티아의 리막 본사를 방문해 마테 리막(왼쪽 네번째) CEO와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리막의 대주주 중 하나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 두번째)이 지난해 5월 크로아티아의 리막 본사를 방문해 마테 리막(왼쪽 네번째) CEO와 작업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리막의 대주주 중 하나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5년간 96조원 미래 차에 투자

폴크스바겐그룹 감독이사회는 이날 “앞으로 5년 동안 730억 유로(약 96조원)를 디지털-전기차 분야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폴크스바겐은 이미 올해 전기차 전용 플랫폼 MEB 기반의 첫 차 ID.3를 선보였고, 유럽 주요 국가에서 전기차 판매 수위에 올라있다. 조만간 크로스오버 차량인 ID.4를 출시하는 등 전기차 분야에서도 ‘규모의 경제’를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독일 언론 등에 따르면 폴크스바겐그룹의 ‘몸집 줄이기’ 시나리오는 대략 세 가지 갈래다. 럭셔리카 브랜드인 벤틀리는 아우디 자회사로 편입한 뒤 전기 럭셔리카 브랜드로 키운다. 부가티는 리막과의 지분 스왑을 통해 매각하고, 람보르기니·두카티는 독립된 자회사로 분사한다는 것이다.

두카티는 이탈리아 프리미엄 모터바이크 브랜드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전기차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 두카티의 분사를 검토 중이다. 두카티의 2020년형 파니갈레 V4 바이크. 사진 두카티

두카티는 이탈리아 프리미엄 모터바이크 브랜드다. 폴크스바겐그룹은 전기차로 선택과 집중을 하기 위해 두카티의 분사를 검토 중이다. 두카티의 2020년형 파니갈레 V4 바이크. 사진 두카티

람보르기니 분사는 같은 이탈리아 수퍼카 브랜드인 페라리의 사례를 검토 중이다. 페라리는 피아트·크라이슬러(FCA) 소유였지만 2016년 분사해 FCA 지주회사인 엑소르그룹 자회사로 편입됐다. 엑소르그룹은 피아트 창립 가문인 아넬리가(家) 소유 회사다.

당초 이달 감독이사회가 리막 매각과 람보르기니·두카티 분사를 결정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지만, 당장 결정은 유보됐다. 하지만 디스 회장이 관련 사실을 시인하면서 폴크스바겐그룹의 몸집 줄이기는 기정사실로 하는 분위기다. 디스 회장은 올 초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노키아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공룡으로 군림하다가 시대에 뒤처져 사라진 노키아처럼 될 수 없다는 의미다.

다른 완성차 브랜드 긴장

폴크스바겐그룹은 미래 수익성이 떨어지는 수퍼카, 하이퍼카 브랜드를 정리하고 양산 전기차 사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독일 볼프스부르그 폴크스바겐 본사 옥상에 설치된 대형 로고의 모습. EPA=연합뉴스

폴크스바겐그룹은 미래 수익성이 떨어지는 수퍼카, 하이퍼카 브랜드를 정리하고 양산 전기차 사업에 집중할 예정이다. 독일 볼프스부르그 폴크스바겐 본사 옥상에 설치된 대형 로고의 모습. EPA=연합뉴스

‘공룡’ 폴크스바겐그룹이 전기차에 올인하면서 다른 완성차 브랜드도 긴장하고 있다. 리막 지분 투자를 통해 고성능 전기차 노하우를 습득하려던 현대차그룹도 영향을 받게 됐다. 폴크스바겐그룹의 지분이 높아지면 리막과의 제휴 우선순위가 밀릴 수 있어서다.

폴크스바겐이 전기차 물량을 늘릴 경우, 핵심 부품인 배터리와 모터, 각종 전기차 전용 부품 시장에서도 ‘큰 손’으로 군림할 수 있다. 급증하는 전기차 부품 수요 속에서 폴크스바겐이 물량으로 밀어붙인다면 다른 업체들이 배터리 등의 수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미 폴크스바겐그룹은 배터리 시장에서 ‘가격 협상력’을 갖춘 회사”라며 “앞으로 영향력이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미래차 전략 토크쇼'에서 내년 선보일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원희 현대차 사장이 지난달 30일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열린 '미래차 전략 토크쇼'에서 내년 선보일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