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소프라노 박혜상 "최악 슬럼프 직후 급반전"

중앙일보

입력 2020.11.18 10:54

독일의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이 깜짝 발탁한 소프라노 박혜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독일의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이 깜짝 발탁한 소프라노 박혜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난 5월 클래식 음반사인 도이치그라모폰(DG)은 소프라노 박혜상(33)과 전속 계약을 발표했다. 전 세계 앨범 발매를 전제로 계약한 한국 소프라노는 처음이다. 박혜상의 첫 음반 ‘아임 헤라(I’m Hera)’는 이달 6일 나왔다. 122년 전통의 DG는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이 소속됐었고,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음반을 내는 곳이다. DG의 회장인 클레멘스 트라우트만은 지난해 박혜상의 노래를 직접 듣고 나서 전격 영입했다. 뉴욕타임스가 “맑고 경쾌한 목소리”라 표현한 박혜상은 음악계의 신데렐라로 일약 떠올랐다.

17일 서울에서 만난 박혜상은 “지금도 궁금하다. ‘내가 왜 여기있지?’ 하고 묻게 된다”고 했다. 그는 “노래가 좋고 편했던 사람이었을 뿐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상황은 그의 말대로 “물 흐르듯이”일어났다. 초등학생 시절 어린이 합창단에서 노래를 시작했고 “노래는 늘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사실 최악의 슬럼프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DG의 깜짝 발탁 이전에 고비가 있었기 때문이다. 줄리어드 재학 중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신진 음악가 프로그램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그가 기억하는 최악의 슬럼프는 바로 이 때 왔다. “‘내가 여기 있을 자격이 없는데’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는데 어느 순간 과부하가 왔다.” 오페라단에는 훌륭한 성악가가 많았고,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신감이 무너져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아프니까 소리도 안 나더라”고 했다. 당시 오페라단의 음악 감독이던 지휘자 제임스 레바인을 찾아가 그만두겠다고 말한 후 노래를 쉬었다. 박혜상은 “당시 영어를 가르쳐주던 선생님이 ‘나는 충분히 괜찮다(I am enough)’라는 문장을 쓰라고 했다. 희한하게도 그 순간 완전히 무너지고 나를 다시 보게됐다”고 했다. 늘 가정법을 써서 말하던 그의 습관을 바꾸기 위한 문장이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해보자고 마음 먹게 됐다.”

그때부터 좋은 일이 생겼다. ‘내가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데, 이탈리아어 발음이 어떻게 완벽하겠어?’ ‘노력했는데도 안되면 할 수 없는 거지’라고 마음 먹기 시작했다. 2017년 오페라 ‘루살카’의 숲의 정령으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데뷔했고, 같은 해 ‘피가로의 결혼’ ‘헨젤과 그레텔’에서 각각 바르바리나, 이슬 요정이라는 작은 역을 맡기 시작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총감독인 피터 겔브는 당시의 무대에서부터 그를 눈여겨봤고, 올해 12월 예정됐다 코로나19로 취소된 ‘헨젤과 그레텔’의 주역을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에서의 박혜상의 활약을 들은 DG의 회장이 지난해 그의 노래를 확인하러 영국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에 직접 간 일도 일어났다.

소프라노 박혜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프라노 박혜상.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DG와 계약이 정말 좋은 일이 될 거라는 건 알았지만,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노래 잘하는 사람은 너무 많으니까. 나는 나대로 하면 된다고만 생각해 긴장도 안됐다.” 이번 첫 앨범에도 자신의 이름을 선언적으로 넣었고, 한국의 노래들도 포함시켰다. “내가 가진 것에 비해 과분하게 보상받고 있다. 이제 나 좋으려고 하는 노래가 아니라, 남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돼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원래 더 무겁고 정통성 있는 노래들로 계획했던 앨범 수록곡을 상당 부분 수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마음에 위안을 주는 노래로 바꿨다. 내가 ‘디바’가 되지 않아도 되는 노래로 채워넣고 싶었다.” 규모가 크고 화려한 노래들 대신 18세기 글루크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페르골레시 '마님이 된 하녀' 의 노래와 나운영의 '시편23편' 등을 불렀다. 앨범 발매를 기념하는 박혜상의 리사이틀은 20일 오후 8시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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