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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검찰개혁의 성공과 실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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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문재인 정부 들어 가장 소란스럽고 가장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 개혁 사안은 검찰 문제다. 그러나 거듭되는 실수로 인해 이제 이 문제는 하나의 권력기구를 개혁하는 단일 의제를 넘어 최대 정치 현안이자 국가 사안이 되더니, 마침내 문재인 정부 개혁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의제처럼 상승해버리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 대혼돈 #‘적폐청산’ 국정과제가 제일 원인 #개혁대상을 개혁주체로 극대화 #김영삼·김대중 성공사례 돌아가야

민주화 이후 정부 내 기구 하나를 둘러싸고 이런 소동이 초래된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황당하고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의 검찰 체제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중대한 개혁과제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권력기관 개혁에 성공한 앞 정부들과 비교하면 오늘의 혼돈이 초래된 원인은 분명하다. 검찰보다 더 막강했던 군부, 정보기관, 경찰 개혁은 지금의 검찰개혁보다 훨씬 조용했으되 훨씬 효과가 컸다.

성공한 개혁은 이렇듯 개혁 대상에게 의존하지 않는 데로부터 출발한다. 과도한 힘을 빼서 원래 제도와 권한으로 제한하는 게 바로 개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반대의 길을 갔다. 즉 검찰개혁의 실패는 개혁의 대상을 개혁의 주체로 너무 키워놓았기 때문이었다. 검찰개혁을 고려했다면 불가능한 선택이었다.

정부 초반 검찰은 적폐 청산의 최고 최강 주체였다. 적폐 청산을 주도한 검찰총장 후보에게 그토록 진심 어린 지지와 옹호, 적극적인 방어와 찬동을 보내는 것도 당연하였다. 그러나 적폐 청산 국면 동안에는 검찰개혁을 향한 적극적 노력은 없었다. 검찰은 정부와 지지층으로부터 통제는커녕 넘치는 찬사를 받았다. 적폐 청산을 국정과제의 제1순위로 올려놓는 순간 검찰개혁은 불가능하거나 난제 중의 난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검찰 권력에 의존한 국정과제 추진이 불가피하였기 때문이었다. 인적 처벌 중심의 적폐 청산을 반대하고 제도개혁 중심의 적폐 극복을 강조했던 소이는 여기에 있었다.

문제는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처가 출범한다면 검찰개혁은 과연 성공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는 데에 더 심각한 문제가 놓여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이런 권력기구가 선진 민주국가에는 유례가 없는 데에는 민주주의 원리에 비추어 분명한 근거가 있다. 실제로도 검찰은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분리는 물론 장관의 인사권과 수사지휘를 모두 수용하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정부 내 대소동은 더더욱 제도 개혁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 운영과 권력 현실의 문제다.

적폐 청산을 대선 공약과 국정과제의 최우선에 놓으면서 검찰로의 권력 집중은 당연하였다. 검찰공화국이 된 것이다. 검찰개혁과 권력 분산과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가장 위험한 선택이었다. 군부와 정보기관을 혁파할 때 김영삼과 김대중이 절대 가지 않은 길이었다. 오늘의 검찰개혁 실패는 적폐 청산 국정과제와 검찰 중심 국정운영의 자기 산물인 것이다.

둘째는 고소고발·부패·선거·권력남용을 포함해 현재 권력을 향한 수사 사안들이 연속해서 터져 나왔다는 점이다. 깨끗한 현재 권력이었으면 한껏 키워놓은 검찰의 칼은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과거 권력을 향해 절정의 권력을 갖게 된 칼을 현재 권력을 보호하기 위해 통제하려는 순간, 활용할 수도 통제할 수도 없는 권력 내부로부터의 이중 늪에 빠지고 만 것이다.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의 갈등이 모두 대통령이 임명한 정부 내의 사생결단식 권력투쟁이라는 점처럼 이를 상징하는 것도 없다.

민주화 이후 문재인 정부를 제외하고는 검찰 권력이 이토록 열광적인 지지 속에 국정과제를 주도한 적은 없었다. 또 문재인 정부 외에 어느 정부도 이토록 검찰의 권력을 키워주는 최고 국정과제를 설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결국 ‘적폐 청산’ 국면에서 열광적인 검찰 지지자들은 ‘검찰개혁’ 국면에서는 맹렬하게 검찰을 비난하고, 앞 국면에서 강력한 검찰 비판자들은 뒤 국면에서는 열렬한 검찰 지지세력으로 역전된 돌변 상황이 등장하고 말았다. 지지는 분노로, 분노는 지지로 완전 뒤집힌 것이다. 이는 권력이 독임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다.

이승만 시기 토지개혁은 2차대전 이후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탈식민 개혁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식민경제구조 타파, 지주세력 해체, 소작제도 철폐, 농민 지지확보, 급진주의 저지, 시장경제 전환 및 산업화의 초기 토대를 놓았기 때문이다. 성공의 원인은 분명하였다. 식민경제의 최대 수혜계층인 지주계급에 의지하는 국정과제를 추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같았다. 김영삼의 성공적인 군부 개혁이 가능했던 이유는 군부를 활용한 중심 국정의제를 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성공 요인이었다. 김대중은 자신을 향한 정치공작을 수행하였음에도 정보기구를 국정에 활용하지도 보복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건국 이래 최초의 정권교체였음에도 과거 청산 대신 연합·통합의 길을 갔다.

가장 단순하나 가장 명료한 성공의 경로였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길로 돌아가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