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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부조·무상교육이 저출산 예산? 절반이 ‘엉뚱한 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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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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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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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8월 출생아는 지난해보다 9.5% 줄었다. 지난해 0.92명에서 올해 0.8명대로 떨어졌다. 연말까지 가면 약 0.83명이 될 것으로 보인다. 끝없는 추락이다. 2016년 이후 수백조원을 저출산 정책에 썼는데도 왜 이럴까. 최근 몇 년 새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지금도 그렇다. 의문을 넘어 ‘이제 출산 대책은 안 된다’라는 한탄, 나아가 자포자기하려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저출산 대책을 해봤자 안 된다는 식으로 자포자기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며 “예전에는 경제 전문가가 그랬는데, 요즘에는 저출산 대책에 관련된 사람도 그런다”고 지적한다.

저출산 대책 예산 분석해보니 #순수 가족지원은 47%에 그쳐 #주거·교육 지원까지 넣어 거품 #국제기준 안맞는 항목까지 포함 #“제대로 투자해야 0.8명 벗어난다”

저출산 대책에 쓴 돈을 따져보니 절반이 직접 관련 없는 돈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연도별 시행계획 등을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예산 분류 방식을 따랐다. OECD는 가족 지출을 저출산 예산으로 규정한다. 올해 저출산 예산은 40조1906억원이다. OECD 기준에 따르면 저출산 예산은 19조221억원, 즉 전체의 47.3%이다. 절반 안 된다. 매년 떨어져 지난해부터 절반 밑으로 내려갔다.

저출산 예산 분류해보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저출산 예산 분류해보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러면 나머지 21조1686억원(52.7%)은 뭘까. 간접 지원 예산이다. 고용·주거·교육 등에 들어간 돈이 그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엉뚱한’ 예산이다. 예를 들면 특수고용직 근로자 고용보험 적용, 영세사업장 근로자 사회보험료 지원, 한국형 실업부조(국민취업제도) 등이다. 저출산 해소에 도움이 아예 안 된다고 보긴 어렵지만 ‘글쎄’라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OECD는 이런 돈은 저출산(가족지원) 예산으로 보지 않는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 교수 “근로자의 산업안전과 생활안정을 위한 예산까지 저출산 예산이라고 하면 기업의 경영자금 자체가 저출산 예산이란 말인가”라며 “효과를 기대하기보다 보이기 위한 부풀리기식 편성”이라고 지적한다. 김 교수는 “여러 부처의 예산을 가져와서 짜깁기 예산을 내놓는다고 해서 정부의 저출산 문제 해결 의지를 보이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주요 간접 지원 사업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요 간접 지원 사업 내용.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주거비 지원은 더 멀어 보인다. 청년과 신혼부부 주거비 대출 사업에 올해 9조3992억원이 들어간다. 그런데 이 돈을 청년이나 신혼부부에게 주는 게 아니라 대출한다.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는다. 물론 장기 저리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상환할 돈을 마치 저출산 지원금으로 포장한 게 이해가 잘 안 된다. 이자 차액을 예산으로 잡으면 모를까. 신혼부부 전세나 매입 임대 사업, 행복주택, 청년 전세와 매입 임대도 그렇다.

교육비도 마찬가지다. 올해 고교 무상교육에 드는 1조3882억원이 저출산과 관련 있을까. 저소득층 학생(기초수급자 자녀)의 부교재·학용품·교과서 비용과 입학금도 저출산 예산에 들어있다. 교육사업, 복지사업 예산을 저출산에 넣은 게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올해 신생아도 급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올해 신생아도 급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정부는 2017년 기존의 저출산 정책을 손보면서 정책 가짓수를 대폭 줄였다. 그 전에 템플스테이 지원 같은 저출산과 무관한 예산까지 포함했다가 ‘종합선물세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손을 봤는데도 여전히 절반 이상이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손을 보면서 원래 지원하던 청년 주거지원 예산을 저출산에 끼워 넣었다. 이 덕분에 예산이 껑충 뛰었다. 더 이상한 것은 올해 고교 무상교육비는 저출산 예산에 들어있고, 초등생·중학생 예산은 빠져 있다. 나이가 어린 아이를 지원하는 게 저출산 정책에 더 가까운데 거꾸로다.

2006년 이후 저출산 종합선물세트 예산은 225조원이다. 수백조원을 썼다는 주장이 여기에서 나온다. 하지만 잘 따져봐야 한다. 2016~2020년만 보면 150조원이고, 이 중 47%만이 순수 저출산 예산이다. 그간 ‘예산 뻥튀기’로 인해 많이 쓴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차이가 있다.

이상림 연구위원은 “정부가 저출산 대책으로 뭔가 하는 걸 보여주려고 예산과 사업을 부풀렸다”며 “저출산 대책으로 뭘 할지 잘 몰라서 모든 정책 동원하는 것처럼 포장했다”고 지적한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순수 저출산 예산은 많지 않다. 청년·신혼부부 주택 대출은 회수하는 건데 그걸 저출산 예산으로 넣은 것에서 보듯 정교하지 않다”며 “올해는 0.83명까지 합계 출산율이 내려간다. 가족 지원 예산을 더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출산 예산의 많은 부분이 저출산과 관련 없는 예산이 많다. 이건 정책의 실효성과 관련되는 문제”라면서 “물론 복지가 잘 갖춰진 사회라면 저출산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산은 직접 효과가 있는 쪽으로 편성하고, 집행해야 효율성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