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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일본해’ 대신 숫자 도입, 동해 표기 싸움은 이제부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동해를 ‘일본해’로 주장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사라진다. 기존에는 국제수로기구(IHO) 해도집이 일본해 단독 표기를 표준으로 했지만, 향후 적용될 새로운 표준에서는 명칭이 아닌 숫자 표기를 원칙으로 삼기로 했기 때문이다.

IHO, 고유 식별번호 사용 확정 #일본해 주장할 근거 사라졌지만 #속성 정보엔 명칭 들어갈 가능성 #일본, 각국에 계속 표기 로비할 듯

세계 각국에 바다 이름 표기의 기준을 제시하는 IHO는 16일 화상으로 진행된 총회에서 향후 디지털 표준 해도(海圖)에 동해나 일본해 같은 명칭이 아니라 고유 식별번호를 표기하는 새로운 방식(S-130)을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IHO의 기존 표준(S-23)은 동해를 일본해로 단독 표기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국제적으로 일본해가 정식 명칭”이라는 억지의 근거로 삼아왔는데, 이런 표준 자체가 사실상 제거된 것이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17일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이 주장하는 일본해라는 명칭 자체가 국제 표준으로서 지위가 떨어지게 됐고, 동해 표기 확산의 새로운 틀도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실제 한국이 중요한 전투에서 이긴 건 사실이지만, 전쟁은 아직이다. S-130이 적용되더라도 식별번호마다 해역의 구체적 관련 내용을 담은 ‘속성 정보’가 따라붙기 때문이다. 바로 이 속성 정보에 명칭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동해 표기 확산을 위한 정말 큰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이야기다.

당장 일본 정부는 일본해 단독 표기를 지켜냈다는 엉뚱한 주장을 하고 나섰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상은 이날 IHO 총회에 대해 “종이에는 ‘일본해’가 남는다”고 논평했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도 “일본해를 사용해 온 가이드라인 S-23은 계속 현행 IHO 출판물로서 공개적으로 이용 가능하다”고 지적했다.

기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지만, 큰 모순이 있다. IHO의 해도는 이제 디지털로만 생산된다. 종이 해도 자체가 화석이 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일본은 “아날로그에선 여전히 일본해”라고 억지를 부리는 셈이다.

사실 그동안 동해 표기 싸움은 일본에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 국제적 기준이 일본해인데, 한국이 동해라는 도전장을 낸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특히 이는 IHO 사무총장의 제안이었다. 이미 동해와 일본해 병기 사례가 40%를 넘는다는 점 등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S-130 관련 세부 사항은 향후 수년에 걸쳐 백지 상태에서부터 논의가 시작되겠지만, 애초에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한국에 불리한 싸움만은 아니라는 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오히려 급한 건 일본해 표기의 당위성을 상실한 일본이다. 이번 IHO 총회만 보더라도 한국은 수석대표(유기준 외교부 국제법률국장)와 논평자(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 모두 국장급인데 일본은 장관이, 그것도 두 명이나 나서 해명하고 나선 건 위기감의 방증으로도 볼 수 있다.

다만 IHO는 표준을 제시할 뿐, 이를 활용해 실제 해도를 만드는 것은 각국 정부 및 출판사의 역할이다. 일본은 S-130 실용화 전까지 적극적 로비를 통해 계속 일본해 표기를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 관계자는 “동해 표기가 자리잡도록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서울=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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