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모는 아이 낳을 권리 없나, 사유리가 한국에 던진 질문

중앙일보

입력 2020.11.18 00:02

업데이트 2020.11.1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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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非婚)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아기를 안고 있다. [KBS캡처]

방송인 사유리가 비혼(非婚)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한 아기를 안고 있다. [KBS캡처]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줬으면 한다”

정자 기증받으려면 남편 동의 필수
시험관·인공수정도 부부만 가능

여성계 “출산·낙태 결정권 인정을”
육아·복지 제도서 비혼가족 소외
가족 개념 변화에 따른 입법 필요

방송인 사유리(41·후지타 사유리)가 비혼(非婚)  상태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했다는 사실을 공개한 뒤 ‘출산을 선택할 여성의 권리’에 대한 논의에 불이 붙었다. ‘낙태죄’ 논란도 재소환됐다. 최근 낙태죄를 존치하되 임신 14주까지만 낙태를 전면 허용한 형법 개정안이 발표되면서다. 사유리가 출산 후 인터뷰에서 “요즘 (한국에서) 낙태를 인정하라는 주장이 있는데, 낙태뿐 아니라 아기를 낳는 것도 인정했으며 좋겠다”고 밝힌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둘이 짝을 이뤄 여성의 고유 권한인 임신과 출산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온전히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임신하고 싶어하면서, 낙태도 허용하라는 것이냐”며 이중적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엔 “한국 사회가 여성의 결정을 법으로 막고 있다는 점에서 같기 때문에 출산권과 낙태권을 동시에 주장하는 건 모순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사유리, 일본서 정자 기증받아 출산

사유리는 1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 4일 아들을 출산했다. 앞으로 아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공개했다. 그는 당일 KBS 인터뷰에서는 결혼하지 않고 ‘엄마’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를 털어놨다.

그는 “지난해 의사로부터 자연임신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 비혼 임신을 선택했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급하게 찾아 결혼하는 것은 어려웠다”고 밝혔다. 사유리는 일본의 한 정자은행에 보관된 누군가의 정자를 기증받아 3.2㎏의 건강한 아들을 출산했다. 일본에서 정자 기증을 받은 이유에 대해선 “한국에서는 결혼한 사람만 시험관이 가능하고 모든 게 불법이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17일 한 난임 전문병원에 ‘결혼하지 않은 사람도 시험관 시술을 받을 수 있냐’고 묻자 “우리 병원은 결혼하지 않은 여성에게는 시술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발적 비혼모 발목잡는 법률

자발적 비혼모 발목잡는 법률

국내에서 ‘자발적 비혼모’가 불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명윤리법(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 제23조 3항은 난자 또는 정자의 금전적 거래만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여성이 임신을 위해 정자를 기증받으려면 배우자, 즉 법적인 남편의 동의가 필수다. 정자를 기증받는 과정도 까다롭다. 정자를 기증하는 남성의 동의가 필요하고, 혹시 이 남성이 결혼했다면 배우자의 동의도 필요하다. 의료인이 이를 어기면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게 돼 있다. 또 현행 모자보건법은 ‘난임 부부’만 인공수정 등 보조생식술을 받을 수 있게 규정했다. 사실혼 혹은 법률혼 관계에 있는 부부 중, 1년 동안 자연상태에서 임신이 되지 않는 경우를 난임 부부로 정의한다. 결국 국내에선 비혼은 물론 미혼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임신할 수 있는 합법적인 통로는 없다. 윤진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법률의 공백 상황으로 보인다”고 했다.

비혼·만혼이 늘면서 출산 대신 난자 냉동을 택하는 여성도 늘고 있다. 실제 차병원엔 난자 동결을 택한 여성이 2014년 42명에서 2018년 635명으로 약 15배 증가했다. 사유리도 자신의 난자를 냉동했다고 말했다.

박남철 부산대병원 비뇨의학과 교수(한국공공정자은행연구원 이사장)는 “시대가 변하면서 가족의 형태가 바뀌고 있는 만큼 덴마크 같은 선진국처럼 국가가 유통을 관리하는 정자 은행 도입을 고려해봐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영국, 스웨덴, 미국 일부 주에선 배우자 없는 여성도 정자를 기증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여성계는 정부의 지난달 ‘낙태 합법화’ 결정에 강하게 반발했다. ‘낙태죄 전면 폐지’가 아니라면서다. 지난 15일 한국여성민우회 등 여성단체들은 서울 신촌역 인근에서 시위를 열고 “형법에서 낙태죄를 완전히 삭제하고, 안전하고 합법적인 임신중지를 전면 보장하라”고 주장했다.

사유리의 출산을 둘러싸고도 낙태권과 출산권이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 “아이를 원하지 않는데 낙태하면 처벌하고, 정말 원해서 혼자 낳겠다 하면 막는 게 말이 되느냐” “출산 장려하면서 비혼 상태로 아이 낳는 건 허락하지 않고, 남성이 도망가 미혼모가 되면 여자가 알아서 하라고 한다”는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

다양한 출산방법 관련 판례 이어져

법원도 인공수정을 통해 낳은 자녀와 부모의 친자 관계, 대리모 출산의 무효 여부 등 다양해지는 출산 방법에 대한 판례를 내놓고 있다. 지난해 10월엔 한 남성이 “아내가 인공수정, 혼외관계를 통해 출산한 두 자녀와의 친자 관계를 끊겠다”며 낸 소송이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올라오자 대법관 13명이 머리를 맞대고 격론을 벌였다. 당시 대법원은 가족 관계 변화에 따른 국회의 추가 입법 필요성을 제기했다. ‘대리모 문제’를 대표적 사례로 들었다. 대리모 계약은 법률상 무효다. 하지만 대리모에 대한 처벌은 어렵다.

이번 일을 계기로 기존의 가족관념을 벗어나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낙태권이든 출산권이든 “결혼으로만 맺어지는 가족의 개념을 깨고 각자의 결정권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는 것이다. 권김현영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위원은 “한국에서 출산 및 육아와 관련한 법률이 모두 이른바 ‘정상가족’에 한해 적용된다”며 “여성의 선택권을 넓히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홍주희·박태인·김지아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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