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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급 해시계 ‘앙부일구’ 돌아왔다… 미국서 경매로 구매

중앙일보

입력

문화재청이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해 8월 국내로 들여왔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앙부일구와 손목시계.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해 8월 국내로 들여왔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앙부일구와 손목시계. [사진 문화재청]

“관측 위도가 명기돼 있는, 우리나라에서만 제 의미를 발하는 유물의 뜻 깊은 귀환이다. 중국과 달리 우리의 과학기술로 우리 시간을 측정한 자주정신과 세종의 애민정신도 엿볼 수 있다.”(한국천문연구원 고천문연구센터 김상혁 센터장)

세종 때 첫 제작, 18세기 이후 다양해져 #"24절기와 우리 시간 알려주는 과학유물" #국내 비슷한 유물 7점보다 완성도 뛰어나

작은 가마솥을 연상케 하는 지름 24.1㎝의 반구(半球) 맨 끝자락을 따라 촘촘한 한자가 새겨져 있다. 동지‧대설‧소설‧입동‧상강 등으로 이어지는 한자는 24절기 표시. 1년간 해가 떠 있는 위치가 변화하며 만들어내는 영침(일종의 시계바늘)의 그림자가 이 같은 절기 변화를 알려준다. “일출‧일몰 시간 뿐 아니라 24방위를 살펴보고 1년 동안 태양의 운행을 이해하고 체험할 수 있게 한 독창적인 해시계”(이용삼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명예교수)라는 찬사가 아깝지 않다.

이 해시계의 이름은 ‘앙부일구’. 하늘을 우러러 보는(仰, 앙) 가마솥(釜, 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日晷, 일구)로 때를 아는 시계라는 뜻이다. 세종 16년(1434년) 처음 만들어져 종묘와 혜정교(惠政橋, 지금의 서울 종로1가)에 설치됐던 우리나라 최초 공중(公衆) 시계다. 경제의 근간이 되는 농업발전을 위한 측량기기의 일종이자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용도였다. 당시 만들어진 유물은 전해지지 않고 후대에 제작된 것도 희소하게 남아 있는데, 이 가운데 미국에서 개인이 소장해온 1점이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18세기에서 19세기 초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름 24.1㎝, 높이 11.7㎝, 약 4.5㎏의 무게다.

문화재청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7일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언론 간담회를 열고 미국에서 경매로 매입한 앙부일구 1점을 공개했다. 매입을 주도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최응천 이사장은 “재단이 해외에서 찾아온 첫 번째 과학문화재”라면서 “국내에 비슷한 재질과 크기로 총 7점이 전하는데, 이번에 들여온 유물은 그와 견주어서 완성도가 높고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고 설명했다. 이날 공개된 유물은 용과 구름, 거북머리로 장식된 다리가 매혹적인 자태를 과시하고 ‘북극고37°39′15″(北極高三十七度三十九分一十五秒)’ 등의 은입사(銀入絲)가 뚜렷했다. 이날 해설을 맡은 이용삼 충북대 명예교수는 “북극고37°39′15″는 한양의 위도로서 숙종39년(1713)에 이렇게 정밀측정됐다는 기록으로 미뤄볼 때 이번 앙부일구의 제작연도는 그 이후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17일 오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에서 조선의 해시계'앙부일구'가 언론 공개되고 있다.  미국에서 경매 매입으로 환수한 '앙부일구'는 오는 18일부터 일반 공개한다. [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국립고궁박물관 본관에서 조선의 해시계'앙부일구'가 언론 공개되고 있다. 미국에서 경매 매입으로 환수한 '앙부일구'는 오는 18일부터 일반 공개한다. [연합뉴스]

문화재청은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조선 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했다고 17일 밝혔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앙) 가마솥(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일구)로 '때를 아는 시계'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반구형 해시계의 맨위 끝자락을 따라 촘촘히 절기와 방위가 표시돼 있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은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조선 시대 해시계인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했다고 17일 밝혔다. 앙부일구는 하늘을 우러러 보는(앙) 가마솥(부) 모양에 비치는 해 그림자(일구)로 '때를 아는 시계'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반구형 해시계의 맨위 끝자락을 따라 촘촘히 절기와 방위가 표시돼 있다.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해 8월 국내로 들여왔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앙부일구 측면. [사진 문화재청]

문화재청이 지난 상반기 미국의 한 경매에 출품된 앙부일구를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지난 6월 매입해 8월 국내로 들여왔다고 17일 밝혔다 사진은 앙부일구 측면. [사진 문화재청]

반구형 해시계는 그리스에서 시작돼 이슬람을 거쳐 중국에 전해졌으며 원나라의 앙의(직경 3m 추정)에서 영향 받은 조선조에 이르러 다양한 기능의 해시계로 발달했다. 이 명예교수는 “서양이나 중국의 앙의는 오목한 해시계일 뿐 다양한 기능이 없는데 우리나라에선 절기 기능까지 나타낼 정도로 발달했다”면서 “특히 앙부일구의 영침은 북극 축을 향해 한양의 위도에 맞도록 설치됐기에 이번 유물은 오랜 세월 끝에 제자리로 귀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준 전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현대 시각체계와 비교했을 때도 거의 오차가 나지 않는 정밀한 유물인데다 오히려 일본의 동경 표준시를 따르는 현대 한국인보다 우리나라 시각에 더 맞춤한 시계”라고 설명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에 따르면 이 유물의 해외 반출 경로는 알려진 바 없다. 경매에 내놓은 이는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거주하는 개인으로 그는 지역 골동품상에게서 구입했다고 한다. 재단 측은 “지난 1월 이 유물이 경매에 나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유물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국내 소장 유물들과의 과학적 비교분석 등을 통해 긴급매입할 가치가 있다고 결론 내렸다”면서 “코로나19로 인해 3월부터 6월까지 수차례 경매가 취소되고 연기되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8월 마침내 국내로 들여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번에 돌아온 앙부일구는 기존에 보물로 지정된 2점과 마찬가지로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된다. 박물관 측은 18일부터 12월 20일까지 박물관 내 과학문화실에서 이번에 돌아온 앙부일구를 포함한 3점을 나란히 공개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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