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일성·김정일의 장손인 김한솔이 2017년 마카오에서 제3국으로 탈출하는 과정에 대한 자세한 증언이 나왔다. 김정일의 장남이자 김한솔의 부친인 김정남은 2017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이복동생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사주로 피살됐다.
자유조선 에이드리언 홍 창 '뉴요커'에 밝혀
16일(현지시각) 미국 잡지 뉴요커는 김씨를 구출한 반북(反北)단체 '자유조선'(Free Joseon)의 수장 에이드리언 홍 창(36·홍으뜸) 등 멤버들의 인터뷰를 실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키 김이 기고한 글로, 제목은 '북한 정권을 뒤집으려는 지하운동'이다. 글을 쓴 김 작가는 2011년 북한에 잠입해 평양과기대 영어교사로 일하며 겪은 경험을 책을 낸 바 있다.
홍씨는 2013년 파리에서 김한솔을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는 "구찌 구두를 신고 있던 김한솔이 '북한의 실상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며 "이렇게 돈이 많은 아이는 처음 봤다. (김한솔의 부친) 김정남이 생전에 현금을 은닉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김한솔이 부친의 사망 직후 연락해 '어머니·여동생과 함께 마카오를 빠져나가야 한다'고 요청했고, 미국 해병대 정보병으로 복무했던 크리스토퍼 안을 보내 그의 가족을 구출하기에 이른다고 했다.
김한솔을 직접 데리러 갔던 안씨는 '김한솔과 가족이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지만, 아시아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고 한다. 김한솔의 키는 5피트 10인치(약 178cm)가량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예쁜 중년 여성이었으며 청바지를 입고 있던 그의 여동생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 미국의 10대 청소년을 떠올리게 했다고 한다.
김한솔은 안씨에게 할아버지와 낚시하러 가는 이야기를 했고, 안씨는 그 이야기가 아늑하고 친밀하게 들렸다고 한다. 이후 그의 할아버지가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란 것을 떠올렸다고 전했다.
홍씨는 "김한솔과 가족들이 로디 엠브레흐츠 당시 주한네덜란드대사의 도움을 받아 네덜란드로 가려 했지만, 공항에 도착한 뒤 입국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고 옆문을 통해 공항 내 호텔로 끌려갔다"며 "김한솔이 호텔 로비로 내려오겠다고 해 자유조선 변호사 등을 보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한솔은 현재 네덜란드 등 제3국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미 중앙정보국(CIA)이 그의 신병을 확보하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홍씨는 "김한솔을 잃은 것은 큰 실수였다"며 "궁극적인 목표는 북한 김씨왕조의 종말이고, 김한솔이 그 왕조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홍씨는 북한 정권에 대해 "천천히 무너지지 않고 갑자기 무너진다"며 "모든 혁명이 이러한 방식이고, 북한도 똑같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자유화를 위해 충분한 돈을 제공하더라도, 개방·개혁은 그들의 불안감만 야기한다"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홍씨는 지난해 주스페인 북한대사관을 습격했던 상황을 털어놓기도 했다. 현지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진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됐다고 한다.
한편 지난해 4월 미 FBI 등 사법당국은 두 차례에 걸쳐 홍씨의 주거지를 수색했고, 이 과정에서 현지에서 김한솔을 구출했던 안씨가 붙잡혔다. 현재 미 당국은 홍씨에 대해 지명수배를 내린 상태다.
홍씨는 "당국을 피해 가족·친구들과 접촉 없이 은신하고 있다"며 "미 법무부의 수배 전단이 북한 공작원들이 나를 찾기 위한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또 "우리는 북한 사람들이 자유를 찾고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무력으로, 아이디어로, 몸으로 북한 정권에 대항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