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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남편이 北동경했냐 묻더라" 피격 공무원 前부인 울분

중앙일보

입력

지난 9월 21일 서해 북방 한계선 밖에서 유명을 달리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 모(47) 씨 집은 경남 양산에 있다. 그는 집에서 약 500km 떨어진 북측 바다에서 북한군 총탄에 맞아 숨졌다.

당시 정부는 이씨가 그곳까지 이르게 된 이유에 대해 유가족과 다른 이야기를 내놓았다. 정부는 “이 씨가 도박 빚과 이혼 등의 문제로 도피성 월북을 했다. 월북이란 구체적인 단어를 쓰진 않았지만, 정황상 월북이 맞다”고 했다. 이에 유가족은 정부 발표가 거짓이라고 맞섰다. 숨진 이씨는 정말 월북을 시도했을까. 같이 살던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 12일 북한 피격 공무원 전부인과 아들이 경남 양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정수경 기자

지난 12일 북한 피격 공무원 전부인과 아들이 경남 양산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정수경 기자

지난 12일 오후 경남 양산에서 숨진 이 씨 전 부인 A(41)씨와 아들 B(17) 군을 만났다. 함께 살던 가족들이 언론 인터뷰에 나선 건 처음이었다. 아들은 멀끔했지만 조금 창백했다.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똑 부러졌는데, 인터뷰 땐 가끔 숨을 골랐고, 손을 바르르 떨기도 했다. 이 씨 전 부인은 그런 아들을 안쓰럽게 바라봤다. 막내딸(7)은 아직 아빠 소식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자택 대신 가까운 숨진 공무원 이 씨의 누나 집에서 진행했다.

답답했을 텐데, 두 달 동안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A씨= 이 나라가 참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없는 서민은 없는 죄도 뒤집어씌웠다. 정부가 한 가정을 이렇게 몰락시킬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나.
A씨=책임감이 강하고 마음이 여리다. 길가다 어르신 짐 들어 드리고, 과일 사 들고 가다 노인분들 보면 하나씩 드렸다. 그리고 딸 바보다. 딸과 거의 매일 화상 통화하고, 전화하면 항상 ‘사랑한다’ 말하고, 끊을 때도 항상 뽀뽀하고 끊었다.
9월 25일(사건 4일 뒤)이 귀항 날이었다. 특별한 계획이 있었나.
B군=아버지가 당직 근무 때문에 여동생 생일(9월 4일)을 못 챙겨주셨다. 동생이 생일선물로 머리핀 세트를 갖고 싶다고 해서 아빠가 집에 돌아올 때 사온다고도 했다. 결국 못 사오셨고…아빠가 해외에서 보내줬다면서 엄마가 대신 머리핀 세트를 사줬다.
 지난 겨울, 막내 딸과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이씨 모습. 이씨 유가족 제공

지난 겨울, 막내 딸과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이씨 모습. 이씨 유가족 제공

어떤 공무원이었나.
B군=8년 동안 불법 어선을 단속하셨다. 집에 돌아오시면 단속 영상 보여주면서 “너도 (공무원이 돼서) 아빠랑 같은 일 하면 좋겠다”고 했다.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중학교 1학년 때 학교에서 부모 직업소개 강의도 하셨다. 보람차고 중요한 일 한다고 말했다.
남편은 월북했다고 생각하나.
A씨=월북은 꿈도 꿔본 적이 없다. 처음에 단순 실종으로 알았다. 월북이란 단어를 처음 본 것도 뉴스 속보였다. 망치로 뭘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 북한이 어떤 곳인지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안다. 아무리 살기 힘들어도 월북을 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됐다.
평소 월북을 의심할만한 이야기 한 적은. 
A씨=남편은 평소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영화·드라마를 좋아했고 뉴스도 거의 안 봤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치 관련 대화를 한 적도 없다. 그리고 남편은 애국심이 강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 국경일이면 새벽 6시에 일어나서 태극기를 걸었다. 광복절 행사 참석한다고 한 달에 1~2번 오는 집에 안 온다길래 내가 투덜거린 적도 있다.
북한 이야기를 꺼낸 적은 있나. 
A씨=한 번도 없다. 9월 24일쯤 해경에서 전화로 대뜸 “남편이 평소 북한을 동경했느냐”, “사회주의를 찬양했느냐”고 묻길래 “지금 무슨 소리 하는 거냐”고 화를 냈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결혼한 지) 20년이 다 됐지만, 남편에게 ‘북한’, ‘사회주의’ 이런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는 ‘자진 월북’으로 결론 내렸는데. 
A씨=국방부가 ‘(월북)의사를 밝힌 내용이 있다’고 했다. 만약 그런 내용이 있다면 무서워서 나온 말이 아닐까. 북한 국기만 봐도 무서운데, 총 든 북한군 앞에서 살려고 그런 말을 했을 수 있다. 그걸 진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않나.
자진 월북이 아니라면.
A씨=실족 확률이 높다. 남편이 담배를 정말 자주 피운다. 하루에 두 갑 정도 피고 배에서도 자주 핀다고 알고 있다. 최근에 나랑 떨어져 살다 보니 밥을 제대로 안 챙겨 먹어서 “살 빠지고 어지럼증이 있다”고 말한 적도 있다.
정부와 다른 입장인데, 근거는.
A씨=국방부 말이 계속 바뀐다. 신뢰가 안 간다. 남편은 실종 한 두 시간 전에도 아들 문제로 “공무원 시험을 치더라도 대학은 가야 한다”, “공무원 시험 치면 면접도 중요하다.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딸이랑 약속은 무조건 지킨다. (9월) 18일에 딸이랑 화상 통화하면서 (25일에) 입항하면 집에서 놀아주겠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유가족의 증거 없는 어필이라는데 우린 가족이니까 월북이 아니란 걸 너무 잘 안다.
가족 카톡이나 문자 대화 공개할 수 있는지.
A씨=아들은 폴더폰이라 카톡을 안 쓴다. 사춘기라 남편과 문자는 잘 안 했다. 난 한 달 전 핸드폰을 잃어버렸다. 남편과 나눈 화상통화 기록이나 카톡이 사라졌다. 복원해보려고 했는데 안됐다. 개인적으로도 추억이 담긴 건데 속상하다. 
정부는 도박과 이혼이 월북 이유라고, 과거에도 도박했나.
A씨=2000년에 이 사람을 처음 만났다. 지금까지 이런 문제는 없었다. 최근 1년 동안 도박한 거로 안다. 그런데 이 1년으로 이 사람 47년 인생을 해석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사람이 예전부터 계속 도박을 했었다면 재결합을 생각하지도 않았을 거다.  
해경은 “도박으로 인한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도피성 월북했다”고.
A씨=해경은 확실한 증거를 갖고 수사해야 한다. 정확한 월북 증거도 없이 도박 빚을 도피성 월북 근거로 단정했다. 해경이 남편 심리검사를 한 게 아니지 않나. (심리) 진단이 있던 것도 아니다. 추측만 한다. 만약 도박 빚과 이혼이 월북 이유라면 우리나라에서 도박하고 이혼하고 빚 있는 사람들은 다 잠재적 월북자로 보고 감시해야 한다.
윤성현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이 22일 오후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서해 피살 어업지도 공무원 실종 수사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윤성현 해양경찰청 수사정보국장이 22일 오후 인천 연수구 해양경찰청 대회의실에서 서해 피살 어업지도 공무원 실종 수사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금전·이혼문제로 충동적인 선택(월북) 했을 가능성은
A씨=이혼 말고 직장동료에게 독촉도 받고 채무 고민은 있었다. 그런데 사람은 원양어선 선장을 했던 사람이다. 도망가고 싶고, 돈이 급했으면 원양어선을 다시 타면 됐다. 돈을 많이 벌었을 테니. 월북보다 원양어선을 타는 게 현실적인 선택이다. 지난 8월 말에 회사로 월급 압류 들어올 때 내게 “회사에 얼굴 들고 다니기 부끄럽다. 회사 그만두고 원양어선 타러 가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책임감 투철한 공무원 가장인데 1억 넘는 도박 빚을 지는게 쉽게 이해 안 간다.
A씨=도박했던 시기에도 회사와 가정에 충실했다. 도박과 책임감은 별개라고 생각한다. 연결 짓는 건 아닌 거 같다. 도박을 중독이라고 하지 않나. 제어가 안 됐을 수 있다.
유가족들이 보상금 등을 받으려고 월북 부정한다고도.
A씨=우리가 순직 처리해달라고 무조건 해주는 것도 아니다. 그리고 난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 아이들이 중요하다. 자식들이 한국에서 살아가야 하지 않나. 아무리 연좌제가 없어졌어도 아이들이 월북자 자식이란 주홍글씨를 새기고 사는 건 씻을 수 없는 상처다. 아이들 미래 위해서 싸우는 거다.
지난해 가을 경주엑스포공원에 놀러 간 이씨 가족 사진. 이씨 유가족 제공

지난해 가을 경주엑스포공원에 놀러 간 이씨 가족 사진. 이씨 유가족 제공

‘월북 부정 말고 도박 빚 먼저 갚으라’는 비판도 있다.
A씨=실종 1년이 지나 사망신고가 되면 아이들한테 재산과 채무가 모두 상속된다. 법적 보호자인 내가 가족들과 상의해 처리할 생각이다.
개인회생 절차는.
A씨=진행 중이다. 남편 월급이 월 450~500만원 정도였다. 한 달에 260만원씩 3년 동안 다 갚을 수 있었다.
회생절차 기간에도 도박했다.
A씨=그 건 해경 발표를 보고 알았다. (한숨) 남편이 공무원 신분으로 도박한 건 잘못된 일이다. 손가락질받을 일이다. 그런데 도박을 월북과 연관 짓는 건 아니다. 확실한 월북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해경이 두 달간 수사해서 내민 건 금융권(기록) 조회 결과가 전부다. 도박이란 약점을 잡아서 해상경계 실패를 덮고 월북으로 몰아간다.
사건 두고 정치권 공방도 치열했다.
A씨=일부 국회의원은 ‘월북을 시도했으니까 사살당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자기 자식이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 국회의원인 게 부끄럽다. 어떻게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걸)에 당연하다는 표현을 쓸 수 있나. 이 나라에서 버려진 느낌이 든다. 정부는 이 사건을 조용히 묻고 싶어 하는 거 같다. 그런데 절대 착각하지 말아야 할게, 아이들 때문에라도 끝까지 간다. 분명히 말씀드린다.
정부 대응은 적절했다고 보나
A씨=해경은 남편이 북한 해역으로 흘러 들어간 그 긴 시간 동안 방관했다. 그리고 남편이 북한해역에 다다랐을 때도 국방부는 알면서도 살리지 않았다. 분명 책임이 있다. 그리고 정부에서 월북으로 결론 내고 싶다면 월북하겠다고 말한 남편 목소리가 담긴 직접 증거를 내놓아야 한다. 국정감사에서도 분명히 남편 육성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지난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지난 10월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2021년도 예산안 및 기금운용 계획안에 대한 정부의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부·여당은 ‘피격’이 아닌 ‘사망’이라는 표현 쓰기도.
A씨=대통령께서 시정연설에서 ‘피살’이 아닌 ‘사망’이라고 표현했다. 참담했다. 이 나라 대통령이 북한도 인정한 사살을 ‘사망’이라는 말한 건 조심스럽지 못한 표현이었다. 유가족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지금도 남편이 북한 바다에서 끌려가 총에 맞고 화형당했다고 생각하면 잠을 못 잔다. 너무 끔찍하다. 웃긴 게 분명히 가해자는 있는데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리고 단 한 번도 국방부나 정부가 유가족한테 ‘이 사람이 사망했습니다’, ‘시신이 불태워졌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없다. 모든 걸 언론에서 알았다. 어떻게 대한민국 가정의 한 가장이고, 8년 동안 나라를 위해 일한 공무원을 이렇게 외면할 수 있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게 참 원망스럽다.

양산=김태호 기자 Kim.taeho@joongang.co.kr
영상=정수경, 장정음·김지수·윤세현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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