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철도 뚫은게 신의 한수” 해운대란 덕본 LG 판토스

중앙일보

입력 2020.11.1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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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판토스는 올 1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논스톱 특송'을 시작했다. 마침 해운 운임 급등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판토스 홈페이지 캡처

판토스는 올 1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논스톱 특송'을 시작했다. 마침 해운 운임 급등으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판토스 홈페이지 캡처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신의 한 수였다.”

올 1월부터 열차로 화물운송 시작
해상운임 폭등에 유럽행 수요 급증
3분기 영업익 482억 서프라이즈

LG그룹 계열 물류회사인 판토스가 뜻밖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판토스가 주장하는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끊김 없는 육·해·공 물류 네트워크)가 빛을 발한 것이지만, 최근 해운 운임 급등으로 인한 반사 효과와 운(運)까지 따라준 결과다. 판토스는 LG그룹 계열 분리의 축으로도 떠오르고 있어 더 눈길이 쏠린다.

16일 물류 업계에 따르면 판토스는 올 1월 시작한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급행 화물 운송을 현재의 주 3~4회에서 매일로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당초 주1회 목표로 ‘블록 트레인(Block Train·정기 운송편)’ 계약을 맺었지만 화물 수요 폭증에 일주일 3~4회로 늘린 상태다.

“유럽 운송의 유일한 대안”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최근 유럽으로 가는 해운 운임 급등 때문이다. 원래 철도 운송은 해상 운송(배편)보다 20일 가량 빠르지만 상대적으로 운임이 비쌌다. 하지만 최근 해운 운임이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철도 운송이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면 해상 운송보다 20일 가량 시간이 덜 걸린다. 해운 운임이 급등하면서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플랫폼 모습. 중앙포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면 해상 운송보다 20일 가량 시간이 덜 걸린다. 해운 운임이 급등하면서 가격 경쟁력도 갖췄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플랫폼 모습. 중앙포토

해상 운임의 ‘바로미터’인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매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중이다. 지난주 SCFI는 1857.33으로 1주일 전 대비 192.77포인트나 올랐다. 2009년 10월 집계를 시작한 이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의 주요 수출 시장인 미국·유럽 해상 운임은 모두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는 중이다. 미국 서해안 항로 운임은 1FEU(40피트 길이 컨테이너 1개)당 3887 달러까지 뛰었다. 전주보다 16달러 오른 사상 최고치다. 유럽 항로 운임도 1TEU(20피트 길이 컨테이터 1개)당 1508 달러로 전주 대비 15% 가량 상승했다.

해운 선복(船腹·해운 서비스 물량) 부족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가리지 않는다. 원래 대기업은 6개월 이상 장기 계약을 맺어 선복을 확보하지만, 이런 장기계약 자체가 요즘은 무의미해졌다는 게 수출업계의 설명이다.

수출업체 “장기 계약도 무의미” 

익명을 요구한 국내 자동차 부품사 관계자는 “선사들이 원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채 웃돈을 주는 단기 물량 중심으로 선복을 배정한다. 장기 계약한 대기업은 선사가 매일 ‘스팟’으로 제시하는 선복을 기다리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국내 유일의 국적 선사인 HMM은 최근 중소 수출기업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임시 선박을 운항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부산항에서 출발을 준비하는 'HMM 프레스티지'호의 모습. 사진 HMM

국내 유일의 국적 선사인 HMM은 최근 중소 수출기업 물량을 소화하기 위해 임시 선박을 운항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부산항에서 출발을 준비하는 'HMM 프레스티지'호의 모습. 사진 HMM

해운 대란을 예상한 건 아니지만 TSR이 유럽행 수출 운송의 대안으로 떠오르면서 판토스에 철도 운송 문의를 하거나 의뢰하는 기업들이 크게 늘었다. 수십 년 간 유럽 완성차 공장에 해운으로 타이어를 공급했던 금호타이어는 최근 사상 처음으로 철도 운송을 시작했다.

중국 공장에서 생산한 타이어를 배로 실어 나를 수 없게 되면서 판토스의 TSR을 통해 유럽으로 보내는 것이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쇼티지(공급 실패)가 나면 막대한 배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활로를 뚫은 것”이라고 말했다.

판토스에 따르면 TSR 운송을 문의하는 기업은 대·중소기업,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타이어처럼 유럽 수출 물량을 배로 실어 나르던 전자부품·디스플레이·배터리는 물론 의류·섬유·포장재·e커머스 제품까지 판토스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판토스 관계자는 “고객 정보는 절대로 공개할 수 없다”면서도 “과거엔 절대 철도 운송을 하지 않던 기업과 업종에서 두루 의뢰가 들어오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제 물류 네트워크 결실 

지난 1월 서울 광화문 판토스 본사에서 이용호 판토스 부사장(왼쪽)과 사라예프 트랜스컨테이너 대표가 TSR 철도운송 서비스 독점계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판토스

지난 1월 서울 광화문 판토스 본사에서 이용호 판토스 부사장(왼쪽)과 사라예프 트랜스컨테이너 대표가 TSR 철도운송 서비스 독점계약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후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사진 판토스

익명을 요구한 물류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계열 물류회사들도 (제때 납기를 맞추기 힘든) 비상 상황”이라며 “이렇다보니 대기업 계열 물류 업체들도 판토스에 TSR를 이용할 수 있는지 문의를 하는 걸로 안다”고 말했다.

판토스는 실적에서도 ‘어닝 서프라이즈’를 기록하며 몸값을 올리고 있다. 3분기에 482억원의 영업이익을 내 시장 컨센서스(전망치)를 크게 웃돌았다. 물류 업계에선 최소 내년 춘제(春節·중국 설 연휴)까지는 해운 대란이 정상화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한다. 판토스 관계자는 “국제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뜻밖의 해운 대란과 만나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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