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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부산, ‘명탐정 야콥’이 남긴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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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은주 기자 중앙일보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명탐정 셜록 홈스’는 알아도 ‘명탐정 야콥’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 탐정이 최근 활약한 무대는 부산. 얼마 전 부산을 찾았더니 그가 을숙도에서부터 영도는 물론 중앙동 40계단 등 원도심 일대까지 구석구석 휘젓고 다닌 흔적이 또렷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현장을 찾은 자신의 모습을 담아 세 편의 동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도 올렸더군요. 제목이 ‘명탐정 야콥 051’입니다. 051, 언뜻 들으면 무슨 암호 같지만 사실은 부산 지역번호입니다.

‘명탐정 야콥’은 최근 폐막한 2020부산비엔날레의 전시감독 야콥 파브리시우스(49·덴마크 현대미술관 쿤스트할 오르후스 예술감독)의 별명입니다. 셜록 홈스가 범죄사건의 전모를 파헤쳤다면, 야콥은 다른 목적으로 부산이라는 도시를 파헤쳤습니다. 지난 8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에 바치는 오마주”라고 밝힌 그는 올해 비엔날레 관람객들에게 “탐정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했죠. 부산의 역사와 거리·문화·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탐험해달라고요. 그러면서 야콥 자신이 ‘탐험’과 ‘발견’에 앞장섰습니다.

한묵, ‘금색운의 교차’, 1991, 캔버스에 유채, 254x20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부산비엔날레]

한묵, ‘금색운의 교차’, 1991, 캔버스에 유채, 254x20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 부산비엔날레]

이를테면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장 입구를 장식했던 배지민(41) 작가의 초대형 수묵화 ‘광안대교’(290×860㎝)와 ‘덕천534번지’(290×1860㎝)는 야콥 감독이 작가의 스튜디오를 찾았다가 ‘발견’한 작품이었습니다. 부산지역 작가 10여 명의 작업실을 일일이 찾았던 그는 배 작가의 스튜디오 한구석에 돌돌 말려 있던 두 작품(2006년 작)을 펼쳐보고 세상 밖으로 끌어냈죠.

야콥 감독의 ‘탐험하는 눈’은 한국 작가들을 더욱 새롭게 보게 했습니다. 부산 근대미술가 임호(1919~1974)도 그렇게 ‘소환’한 작가 중 한 사람입니다. 그는 또 젊은 작가 김희천(31)과 허찬미(29) 등을 눈여겨보라 했고, 중견 작가 노원희(72)와 서용선(69) 작가의 작품도 새롭게 보라고 했습니다. 통영 누비장인 조성연과 협업해 한국 전통이불을 재해석한 이슬기(48) 작가와 4년 전 작고한 한묵(1914~2016) 작가의 1991년 작 ‘금색운의 교차’를 한 섹션에 풀어놓기도 했습니다.

탐정의 접근은 확실히 달랐습니다. 미술이 문학·음악과 동떨어진 게 아니고, 우리가 감각하는 도시 공간과 냄새, 소리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임을 상기시켰습니다. 또 지역 비엔날레가 어때야 하는지를 원점부터 질문하게 했습니다. 한 부산지역 인사는 “비엔날레 때문에 오랜만에 영도를 걸었다. 그동안 내가 알던 부산이 전부가 아니었다”며 웃었습니다.

야콥 탐정이 남기고 간 메시지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무엇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사실은 눈멀게 된다는 것 말입니다. 탐험과 발견을 즐기는 탐정과 탐정 아닌 사람의 ‘한끗 차이’가 만들어내는 결과, 이것은 비엔날레만의 얘기는 아니겠지요.

이은주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