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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자기부죄(自己負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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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1963년 멕시코계 미국인 에르네스토 미란다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의 한 은행을 턴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미란다는 18세 소녀를 성폭행했다는 다른 죄도 자백했다. 미란다 측 변호인은 “조사에 변호사가 입회하지 않았고, 피의자가 법적 권리를 충분히 고지받지 못했다. 그런 상태의 자백은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2심까지 유죄였던 미란다에 대해 1966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아도 될 권리(미국 수정헌법 5조)와 변호사 조력을 받을 권리(6조)를 침해당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후 다른 목격자 증언으로 다시 기소된 미란다는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 술집 시비로 피살됐다.)

미국 경찰은 피의자 체포 때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다. 당신은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다. … 이 권리가 있음을 인지했는가”라고. ‘미란다 원칙’ 고지다. ‘묵비권’과 ‘법정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는 발언의 자제’를 알려주는 거다. 자기부죄(自己負罪, 자기 스스로 범죄 책임을 묻는 것) 금지의 핵심 조항이다. 우리 헌법에도 12조, 그중 2항에 ‘…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7항에 ‘피고인의 자백이 … 자의로 진술된 것이 아니라고 인정될 때 … 이를 유죄의 증거로 삼거나 이를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라고 나온다.

피의자에게 불리한 내용이 저장됐을지 모를 휴대전화가 있다. 수사기관이 잠금 해제를 못 할 경우, 피의자에게 비밀번호 ‘진술’을 ‘강요’하겠다고 한다. 처벌 운운하며 법무부가 팔을 걷어붙였다. 추미애 법무장관이 앞장선 이른바 ‘휴대전화 잠금 해제법’이다. 법률가 대부분이 우려를 표한다. 영국 ‘권리청원’ 초안을 작성한 에드워드 코크(1552~1634)는 ‘Nemo iudex in causa sua’(그 누구도 자기 사건의 재판관이 될 수 없다)는 라틴어 법 격언을 남겼다. 그 시절 함께 쓰인 격언이 또 있다. ‘Nemo tenetur se ipsum accusare’(그 누구도 자신을 고발할 수 없다). 자기부죄 금지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인권 보호를 위한 기나긴 노력의 결과물이다.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