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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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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박성훈 기자 중앙일보 베이징특파원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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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게 기억한다. 시위가 거셌던 작년 8월 홍콩 침례대 캠퍼스에서 학생회장을 만났다. 왜 시위를 하는가. 침묵하면 진다고 했다.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시민들이 움직이고 있다. 내년에 선거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주 얘기를 꺼냈다. 한국의 민주화 경험을 배우고 싶다면서. 당시만 해도 희망이 있었다. 1년 뒤 홍콩이 이렇게 바뀔 줄 그땐 누구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중국 정부의 전략은 치밀했다. 그해 11월 한정 중국 부총리가 선전을 전격 방문한 뒤 시위 진압 강도는 전례없이 세졌다. 힘으로 누른다는 게 확실했다. 시위대는 다쳤고, 밀렸다. 도심엔 불길이 치솟았다.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대학마저 봉쇄한 뒤 시위대를 결국 해산시켰다. 봄은 오지 않았다. 코로나19는 중국으로서도 재앙이었지만 역설적으로 홍콩을 장악할 기회였다. 시위를 재개할 수 없었다. 5월 열린 양회는 기다렸다는 듯 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사법 체계가 중국의 손에 들어갔다.

글로벌 아이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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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자치를, 독립을, 외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은 모두 붙잡히게 됐다. 보안법이 통과된 날, 홍콩 사람들은 거리에서 백지를 들었다. 구호 대신 피리가 등장했다. ‘우린 그렇게 두렵다. 고개를 들고 구호를 외친다. 자유가 다시 오길...’(‘홍콩에 영광을’ 가사) 외칠 수 없는 홍콩인들은 피리를 불었다.

끝이 아니었다. 홍콩 의회는 70명의 의원이 있다. 4년에 한 번 뽑는다. 35명은 직무 대표, 지역에서 35명을 뽑는데 이 중 19명이 범민주파 계열이다. 과반도 안 되는 이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의원 4명이 7월 미국을 찾아가 홍콩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시민들의 손으로 뽑은 의원도 ‘국가안보’란 서슬 퍼런 ‘잣대’ 앞에 살아남을 수 없었다. 나머지 15명도 사퇴했다.

미국에 이은 경제 대국이란 자신감 때문일까. 홍콩을 다루는 방식에서 중국의 변화가 읽힌다. 국제사회의 비난에 위축됐던 중국은 더 이상 없다. 시진핑 주석은 2035년 장기 개발 청사진을 제시하며 미국을 넘어서기 위해 내부 단합을 강조하고 있다. 연임은 사실상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불씨는 홍콩을 넘어 이제 대만에 옮겨붙고 있다. 중국은 차이잉원 정부가 전쟁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며 연일 비난을 쏟아낸다. 중국군은 대만 침공을 가상한 상륙 작전 훈련에 열을 올린다. 신해혁명 110주년이 되는 내년, 베이징에선 이를 어떻게 기념할지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미·중 관계가 변수지만 중국에 대만 통일은 ‘상수’인 셈이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