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스포츠전문채널 ESPN이 한국 프로야구 KBO리그를 중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스포츠 콘텐트가 고갈되자 5월 KBO리그를 긴급 편성했다. ESPN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메이저리그(MLB) 구단에서 프런트로 일했던 대니얼 김 해설위원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김 위원은 국내 전문가 중 유일하게 ESPN과 계약하고 해설가로 활동했다.
ESPN에서는 김 위원에게 KBO로고와 ESPN로고가 박힌 모자, 가방 등을 기념품으로 보내줄 정도로 KBO리그 중계에 공을 들였다. 또 KBO리그 포스트시즌 중계를 앞두고는 MLB 포스트시즌 중계 스태프를 다 투입했다. 한국시리즈를 월드시리즈 급으로 준비하고 있다. ESPN 간판 캐스터 칼 래비치, 에두라도 페레즈 해설위원 등이 중계한다. 원활한 화상 중계를 위해 거액의 운송료를 들여 고성능 중계 장비를 보내왔다. 미국 내 KBO리그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김 위원에게 들어봤다.
ESPN과 공식 계약한 KBO리그 해설위원
-MLB가 지난 7월 개막하면서 KBO리그에 대한 미국 내 관심이 식은 듯했다.
"그렇지 않다. 올 시즌 초반 KBO리그에 매료됐던 미국의 야구팬들은 이탈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MLB보다 KBO리그의 시청률이 높은 적도 있었다. KBO리그가 현지시각으로 새벽 4, 5시에 중계되는 데다, MLB가 개막하고 NFL(미국 프로풋볼) 재개되면서 시청률이 좀 떨어졌다. 그래도 새벽 중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청률이 낮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마니아층이 생겼다. ESPN은 처음부터 높은 시청률보다는 KBO리그 마니아층이 생기길 기대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됐다."
-ESPN 중계진이 이제 KBO리그에 익숙해졌나.
"처음에는 KBO리그가 10개 팀인지도 몰랐다. 유니폼에 이름이 안 적혀 있는 선수는 누구인지도 헷갈렸다. 한국 선수 발음도 처음에는 스페인어처럼 J발음을 H발음으로 했다. 한국어는 그렇지 않다고 전했더니 바로 고치더라. 삼성 라이온즈 홈에서 열린 NC와 올 시즌 개막전에서도 방송 15분 전에 캐스터가 "어디가 홈이야?"라고 물을 정도였다. 그런데 ESPN 중계진은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나와 화상으로 일대일 KBO리그 과외를 했다."
-어떻게 ESPN에서 KBO리그 전속 해설위원이 됐나.
"ESPN이 KBO리그를 중계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KBO리그 개막 일주일 전에 나왔다. ESPN 관계자들은 KBO리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몇 년 전부터 소셜미디어(SNS)에 꾸준히 KBO리그 소식을 영어로 올리고 있었는데, 그들이 나를 팔로워하고 KBO리그에 대해 묻더라. 깜짝 놀랐다. 마치 BTS가 팔로어해주는 기분이었다. 여러 가지 부분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줬더니, 존 샴비, 칼 래비치 등 영향력 있는 캐스터들이 ESPN 부사장에게 나를 채용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그래서 올 시즌 중계 계약을 맺게 됐다."
-처음 ESPN에 중계된다고 했을 때, 일부 야구팬들은 'KBO리그가 수준 이하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그런데 ESPN 중계진은 KBO리그를 굉장히 재미있게 보더라. 홈런치고 빠던하는 모습, 몸에 맞는 볼이 나오면 투수가 모자 벗고 인사하고, 1루에 가면 1루수와 상대 타자가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는 모습 등을 보고 신기해하더라. 그래서 '한국 고교에 전문 야구부가 있는 학교는 50여 개뿐이고 대부분 선후배로 얽혀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공경하는 문화가 있다'고 했더니 흥미로워했다. 유니폼과 야구장도 MLB에 빠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더라."
-미국 야구팬들이 제일 관심 있는 팀은 어디였나.
"미국 현지 팬들이 가장 좋아한 팀은 NC 다이노스였다. 시즌 초반 NC 경기가 많이 중계됐다. 게다가 NC 타자들이 홈런도 많이 치고 성적도 좋았다. 나중에는 ESPN 쪽에서 다른 팀 경기보다 NC 경기 중계를 원하기도 했다. ESPN의 경우 '야구는 매일 열리는 스포츠라서 한 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더라. 무엇보다도 NC 구단이 ESPN 취재 요청에 적극적으로 응했다. 구창모, 나성범 등 간판선수 인터뷰가 성사됐다. NC가 미국 내 팬들을 위한 마케팅도 활발하게 펼쳐 호감도를 높였다."
-특히 NC의 공룡 마스코트 단디, 쎄리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
"맞다. 그래서 NC 마스코트 단디 인형을 구해 중계하는 방에 장식했다. NC는 무관중 때 관중석에 단디가 다니면서 화면에 많이 잡혔다. 그래서 미국 야구팬들에게 친근한 마스코트가 됐다. ESPN 캐스터와 해설위원 모두 "NC가 최고"라고 입을 모은다. NC가 ESPN의 취재에도 적극적으로 응해줬다. 전통의 인기 팀은 LG 트윈스,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 등이라고 설명했는데, 그래도 ESPN은 NC가 최고라고 하더라. 한국시리즈에 NC가 올라가서 ESPN 중계진이 매우 기대하고 있다."
-내년에도 ESPN에서 KBO리그가 중계될까.
"아직 모르겠다. ESPN PD에게 물어보면 '하지 않을까'라고 하더라. ESPN 실무진들 모두 KBO리그가 재미있고 중계할 만한 콘텐트라고 평가하고 있다. KBO리그 한 경기 중계에 약 15명 스태프가 투입된다. 그만큼 중계 질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뜻이다. 포스트시즌을 앞두고는 고도의 중계 장비를 보내줬는데. 운송료만 몇백만 원이라고 하더라. 또 MLB 포스트시즌을 중계했던 스태프가 다 투입돼 KBO리그 포스트시즌을 만들고 있다. ESPN 전체 인원이 1500여 명인데 코로나19로 인해 최근에 300여 명이 구조조정이 됐고, 인력 감축을 더 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런데도 KBO리그 중계를 위해 고도의 중계 장비를 보내고 나를 채용한 건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뜻일 것 같다. 내년에도 ESPN에서 KBO리그를 중계했으면 좋겠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