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공항으로 하자"…또 표계산에 휘둘리는 가덕도 신공항

중앙일보

입력 2020.11.16 19:26

업데이트 2020.11.16 19:38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7월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부산 신항 개항식에 참석해 레버대를 작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7월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부산 신항 개항식에 참석해 레버대를 작동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용섭 건교부 장관이 이 자리에 와 있다. 이 자리에서 바로 하명하겠다. 지금부터 공식 검토해보도록 합시다.”

#1. 2006년 12월 27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북항 재개발 종합계획 보고회 오찬 자리에서 “남부권 신공항 문제를 공식 검토하겠다”고 했다. 정치적 고향을 찾은 대통령의 약속은 이때까지 3년 넘게 지역 정가를 맴돌던 '신공항 건설' 논의를 단숨에 중앙 정치 무대로 끌어올렸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 위원장을 맡은 박재호 의원이 지난 9월 “가덕도 신공항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업”이라고 밝힌 배경이다.

#2. 노 전 대통령의 공식 검토 지시 이듬해인 2007년 7월. 옛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선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는 대구를 방문해 '남부권'이 아닌 '영남권 신공항' 공약을 내걸었다. 박근혜-이명박 대선주자 경쟁이 치열하던 당시 야권에선 두 주자 모두 TK(대구·경북) 신공항 건설을 약속했다. 하지만 TK와 가까운 경남 밀양이나 부산 해안가인 가덕도 등을 신공항 후보지로 검토하던 이 전 대통령은 2011년 4월 "영남 지역 주민 여러분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신공항 백지화 대국민 사과를 했다.

"다음 정부와 미래 세대가 떠안을 부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유였다. 이 전 대통령에 이어 신공항을 재추진하려던 박근혜 전 대통령도 검토 끝에 "신공항 건설은 무리"(2016년 6월)라며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시절이던 2007년 7월 대구 시당사무실을 방문한 뒤 지방 투어에 쓸 전용버스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선 경선후보 시절이던 2007년 7월 대구 시당사무실을 방문한 뒤 지방 투어에 쓸 전용버스 앞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중앙포토

영남 지역 신공항이 다시 정치적 변수로 급부상했다. 내년 4·7 부산시장 보궐선거를 5개월 앞두고서다. 노 전 대통령의 '남부권 신공항', 이 전 대통령의 '영남권 신공항'을 거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해공항 확장'으로 사실상 신공항 백지화를 발표한 지 4년 5개월 만이다. 그간 부산, 밀양 등을 거쳐 김해공항 확장을 추진하던 정부는 다시 수십조원짜리 사업을 정치권 이해득실에 내맡기게 됐다.

‘노무현 공항’ 만들자는 與

국무총리실 산하 김해 신공항(김해공항 확장) 검증위원회 최종 발표(17일)를 하루 앞둔 16일 민주당 지도부에는 검증위의 건설 부적절 결정을 기정사실로 여겼다. 최인호 수석대변인(부산 사하구갑)은 통화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협의해야 한다는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나왔기 때문에 검증위가 원안(김해공항 확장)을 그대로 추진하자고 결론 내긴 어렵다”며 “이후 최종 계획 폐기 선언은 정부가 관계 장관 협의를 거쳐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 4월 “영남 지역 희망 고문을 끝내야 한다”며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공식화했다. 원내선임부대표를 맡은 전재수 의원(부산 북강서갑)은 이날 “2030년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기 전에 서둘러 가덕도 신공항을 개항해야 한다”며 “단순 추산해도 방문객이 5800만명에 달할 거라고 한다. 국가사업으로 추진하는 2030 엑스포 경쟁력을 위해서도 (가덕도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4일 부산 동구 부산항 북항재개발홍보관을 방문, 북항 재개발 현황을 듣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부산·울산·경남 현장 최고위원회의 및 예산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4일 부산 동구 부산항 북항재개발홍보관을 방문, 북항 재개발 현황을 듣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부산항국제전시컨벤션센터에서 '부산·울산·경남 현장 최고위원회의 및 예산정책협의회'를 열었다. 연합뉴스

특히 민주당에서는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부산·울산·경남(부울경) 지역 싹쓸이엔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이 한몫했다는 자체 평가가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업이라는 명분이 더해지면서 힘을 얻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 일각에서는 “TK와 수도권 반발을 불러올 수 있는 ‘동남권 관문공항’이라는 컨셉 대신, 아예 미국 케네디 공항처럼 ‘노무현 공항’이라고 부르자”(부산시당 관계자)라는 주장도 나온다.

TK 눈치 보는 野…조건부 찬성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5일 부산에서 예산정책협의회를 열고 “정부가 가덕도로 결정한다면 우리도 조속히 사업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이종배 정책위의장)고 밝혔다. 민주당처럼 앞장서지는 않지만, 부산 민심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신공항 이슈를 반대하거나 모른 척 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국민의힘은 지난 4·15 총선 때 PK 의석(40석)의 80%(32석)를 챙기며 선방했다. 내년 4·7 재보궐 선거도 “서울보단 부산이 유리하다”는 자체 분석이지만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수수방관했다가는 부산 선거는 말짱도루묵이 될 것"(국민의힘 관계자)이라는 기류다.

앞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달 16일 부마민주항쟁 기념식 참석 후 부산지역 언론인과 가진 간담회에서 “코로나 19로 요즘 항공 수요가 급감했다. 신공항은 잘 모른다”고 말했다가 지역 여론의 큰 반발을 불러왔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1일 부산을 찾았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찾았던 북항 재개발 사업 홍보관을 국민의힘 지도부도 방문해 지역 의견을 청취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1일 부산을 찾았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찾았던 북항 재개발 사업 홍보관을 국민의힘 지도부도 방문해 지역 의견을 청취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국민의힘으로선 TK의 반발이 부담이다. 국민의힘 소속 권영진 대구시장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에 “대구·경북은 가덕도 신공항에 합의해 준 적이 없다”며 “그동안 정부가 입만 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던 김해 신공항(김해공항 확장)이 갑자기 문제가 생기고 가덕도로 옮기겠다는 천인공노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만약 김해 신공항에 문제가 있어서 이를 변경하려면 당연히 영남권 5개 시·도민들의 의사를 다시 모아 추진해야 한다”고 썼다.

심새롬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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