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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최고금리 20%로 인하…시장에선 "제2의 임대차법"

중앙일보

입력

내년 하반기부터 법정 최고금리가 현행 연24%에서 연20%로 내려간다. 서민들의 이자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인데, 정작 업계와 학계에서는 저신용자가 아예 대출을 받지 못하는 ‘대출절벽’에 내몰릴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24%에서 20%로 내리기로 했다. 셔터스톡

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24%에서 20%로 내리기로 했다. 셔터스톡

문 대통령 공약대로 20%로…"최고금리 24%, 시대착오적"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16일 당정 협의를 열고 내년 하반기부터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낮추기로 했다. 법정 최고금리를 20%로 내리는 건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정부는 지난 2018년 2월 최고금리를 27.8%에서 24%로 인하했다. 정부는 조만간 대부업법 등의 시행령을 바꾼 후 내년 하반기부터 인하된 최고금리를 적용하기로 했다. 현재 기대출자의 경우 소급적용은 받지 않는다.

꾸준히 인하된 법정최고금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꾸준히 인하된 법정최고금리.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융위원회가 밝힌 최고금리 인하 이유는 저금리 기조와 서민들의 부담 경감이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저금리 시대가 지속되고 있지만, 최고금리를 24%로 두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0.5%로 내려가는 등 금융권의 조달비용이 줄었으니, 대출 이자도 내려야 한다는 논리다. 정부는 대출금리가 내려가면 연간 4830억원의 이자경감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도 "3만9000명 불법사금융 이용할 수도"

정부는 최고금리 인하의 선한 목적을 강조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저신용자가 더이상 제도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하고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몰릴 수 있다. 대출에는 연체를 감안한 대손비용 등이 포함되는데, 최고 금리가 낮아지면 대부업체 입장에선 연체 가능성이 큰 저신용자한테 나가는 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 실제 서민금융연구원에 따르면 대부업체의 대출승인율은 2017년 16.1%에서 최고금리가 24%로 인하된 후인 2019년에는 11.8%로 떨어졌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 교수는 “이자경감 효과는 3000억~4000억원이지만, 저신용자가 대출을 받지 못하는 금액은 수조원 대에 달할 수 있다”며 "공급 측면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의사 결정"이라고 말했다. 주거 안정을 위해 추진한 임대차보호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이 전세 공급을 줄여 전세값 상승을 초래한 것 같은 정책의 역설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부도 이 같은 우려는 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고금리가 20%로 내려가면, 올해 3월 말 기준 20% 초과금리 대출을 이용하던 239만명 중 31만6000명은 다시 대출을 받기가 힘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대출탈락자 중 3만9000명은 불법사금융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지난 2018년 2월 최고금리가 27.9%에서 24%로 내려갈 때도 26만1000명이 대출만기 후 제도권에서 대출을 받지 못했고, 이중 4만7000명이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유입됐다.

최고금리 20% 인하 효과 전망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최고금리 20% 인하 효과 전망치.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민간부문 공급 더 줄면, 피해 더 커진다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정책서민금융 공급 확대다. 정부는 햇살론 등 정책서민금융을 연간 2700억원 이상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불법사금융 시장으로 넘어가는 수요 등을 모두 고려해 책정한 금액이다. 이명순 금융위 금융소비자국장은 “민간대출 이용 감축되는 수요만큼 정책서민금융을 추가로 공급할 계획”이라며 “필요시 추가로 확대 공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 대책보다 대부업체와 저축은행 등의 대출 공급이 더 많이 줄어들 때다. 대부업 관계자는 "대부업계를 이용하는 저신용자는 연체율이 높아 대손비용률이 10% 이상인 만큼 대출 이자가 20% 아래로 내려가면 밑지는 장사를 하게 된다"며 "향후 사업을 철수하거나 신규 대출을 중단하는 업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은행도 사정은 비슷하다. 저축은행 업계 관계자는 “현재 저축은행 평균 금리가 연 16%인데, 여기서 금리를 더 내릴 경우 신용등급은 4등급 이하의 저신용자는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가 대부업계의 공급축소를 감안해 추산한 결과 최고금리가 20%로 인하될 경우 57만명의 대출 초과 수요가 발생한다. 이 중 상당수는 불법사금융 시장 등으로 내몰릴 수 있다. 최 교수는 “대부업계의 대출 중단이 이어질 경우 대출의 기회조차 박탈되는 저신용자가 정부 추산보다 훨씬 많아질 것"이라며 “인위적인 최고금리 인하 대신 저신용자 맞춤형 신용평가 모델을 대부업체에 제공하는 방법 등을 통해 서민들의 금리 부담을 낮추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저신용 서민에게 신용대출을 공급하는 업체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민간 부문의 공급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안효성·홍지유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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