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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미술계는 ‘부산’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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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빌 비올라의 영상 설치작품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 중 ‘여정(The Voyage)’.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빌 비올라의 영상 설치작품 ‘우리는 날마다 나아간다’ 중 ‘여정(The Voyage)’. [사진 부산시립미술관]

11월 첫 주 내내 부산은 ‘미술’로 분주했다. 해운대에 위치한 부산시립미술관과 벡스코 제2전시장, 그리고 영도와 원도심 일대는 물론 낙동강 하구 을숙도의 부산현대미술관까지 구석구석 방문객이 이어졌다. 이들을 끌어들인 건 2020부산비엔날레와 ‘아트부산&디자인’(이하 아트부산), 그리고 마침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굵직한 두 전시 ‘빌 비올라, 조우’와 ‘중국동시대미술의 3부작-상흔을 넘어’였다.

부산비엔날레·아트부산 성공 #시립미술관 두 전시회도 호평 #본질에 충실, 치밀한 사전준비 #팬데믹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올해 한국 미술계를 정리할 때 ‘부산’은 중요한 키워드로 기록될 전망이다. 부산이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남다른 저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첫째, 지난 9월 5일부터 65일간 열린 비엔날레는 준비부터 마무리까지 참신한 접근으로 완성도 높은 전시를 보여줬다. 둘째, 지난 5~8일 열린 아트부산은 규모는 예년에 비해 크게 줄었지만, 퀄리티를 높여 참여 갤러리와 컬렉터, 일반 관람객의 호평을 받았다. 셋째, 때마침 부산시립미술관의 괜찮은 두 전시가 열렸다. 각기  다른 프로그램이 만든 시너지 효과는 컸다.

2020부산비엔날레에서 소개한 부산 출신 배지민 작가의 ‘광안대교’(2006), 290x860㎝. 이은주 기자

2020부산비엔날레에서 소개한 부산 출신 배지민 작가의 ‘광안대교’(2006), 290x860㎝. 이은주 기자

“전체적인 구성에 이야기가 흘러 좋았다. 미술관 구석까지 공간을 활용한 면도 돋보였고, 지역성을 받아들이되 폭넓게 틀을 짜고 새로운 시각으로 구성한 작품 배치가 탁월했다.” 독립큐레이터 배은아씨가 평가한 올해 부산비엔날레다.

부산비엔날레는 준비과정부터 화제였다. 11명의 문필가가 부산을 테마로 글을 쓰고, 그 문학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예술가와 사운드 아티스트들이 참여하는 독특한 구성이었다. 영도 폐창고와 중앙동 원도심 3개 장소에 작품을 배치하는 등 도시와 부산이라는 공간에 대한 접근도 남달랐다.

전시 내용도 탄탄했다. 덴마크 출신의 야콥 파브리시우스 감독은  ‘부산’이라는 역사가 켜켜이 쌓인 공간에 다양한 한국 작가들과 해외 작가 작품을 배치했다. 온라인 콘텐트를 강화하며 감독이 직접 거리를 걷고 전시장을 돌며 작품 이야기를 전하는 영상 ‘명탐정 야콥 051’도 찍었다. 시민들의 참여도 남달랐다.

2020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장인 김성연 부산현대미술관장은 “무엇보다 부산의 정체성과 비엔날레의 관계를 어떻게 녹여낼지에 대해 고민하며 감독 선임단계에서부터 심혈을 기울인 게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제9회 아트부산&디자인 전시장 풍경. [사진 아트부산&디자인]

제9회 아트부산&디자인 전시장 풍경. [사진 아트부산&디자인]

아트부산은 예년 160개 갤러리 참여에서 올해 60개로 규모를 절반 줄였지만 프리미엄을 앞세우며 돌파구를 찾았다. 첫날 프리뷰에만 VIP 4000명이 몰렸다. 후속 프로그램으로 오는 16일 오후 6시 ‘팬데믹 이후 미술계의 새로운 기회와 도전’ 주제의 온라인 화상 대담도 연다. 해외 유명 미술계 인사들이 참가한다.

올해 처음 참가한 오스트리아의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 6일 게오르그 바셀리츠 대형 회화가 120만 유로(약 15억8000만원)에 팔려나갔다. 국제갤러리는 박서보 화백의 그림이 2억 원대 후반에 팔렸고, 갤러리 현대는 이반 나바로의 억대 대형 작품의 제작을 주문받았다. 가나아트가 출품한 데이비드 호크니의 아이패드 드로잉 판화는 1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독일 페레즈 프로젝트 갤러리의 조은혜 디렉터는 “올해 총 15점의 작품을 판매했고, 폐막한 뒤에도 컬렉터들의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며 “아트부산을 찾은 컬렉터들의 열정과 관심에 큰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손영희 아트부산 대표는 “좋은 갤러리들을 유치하고 지속해서 갤러리들과 소통해온 게 결실을 본 결과지만, 비엔날레가 코로나로 연기되면서 일정이 겹친 점도 시너지를 냈다”고 했다. 그는 “10주년인 내년 개최 시기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부산비엔날레와 아트부산은 폐막했지만,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빌 비올라 전과 중국 현대 작가 3인전이 현재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우환 공간과 미술관 본관 3층 두 공간에서 열리는 ‘빌 비올라, 조우’전(내년 4월 4일까지)은 ‘영상의 구도자’라 불리는 비올라의 주요 작품을 망라했다. 극도로 느리게 흘러가도록 조율한 화면 속에서 인물의 강렬한 표정이나 동작으로 전해지는 작품의 울림이 상당하다.

주진스(66), 쑹둥(54), 류웨이(48) 등 중국 동시대 미술을 대표하는 3인의 작가가 중국 개혁과 개방을 겪은 경험을 풀어낸 ‘중국 동시대 미술 3부작-상흔을 넘어’(내년 2월 28일까지)도 화제다. 제목의 ‘상흔’은 자유·자본·도시의 상흔을 가리키는 것으로, 중국 현대사에 대한 각 작가의 경험과 해석을 담아냈다.

기혜경 부산시립미술관장은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을 다루며 존재론적 성찰을 해온 비올라의 작품과 중국 동시대 미술 거장 3인의 대표 작품을 함께 감상하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라고 소개했다. 이어 “아트부산과,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부산의 잠재력을 확인했다. 앞으로 영화·게임 등 주변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연계해 시너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성연 부산현대미술관장은 “올해 단단해진 미술 부산의 자부심과 활력, 상승한 분위기가 지역 예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더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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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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