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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여권에 불리하면 “가짜뉴스”…청와대·여당의 선택적 발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최근 여권에서 “가짜 뉴스”를 언급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일부 언론 보도나 논란 등을 단호하게 부인하면서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해서다. 그런데, 해당 내용 중엔 허위로 보기 어려운 사실들도 적지 않아서 일각에선 “의도적으로 가짜뉴스 프레임을 짜는 것”이라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노영민 “국민에 살인자라 안했다” #속기록에 적혀있는 발언도 부정 #전문가 “의도적 진영정치” 분석

논란의 중심에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있다. 지난 13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국민에게 (살인자라고) 하지 않았다. 어디서 가짜뉴스가 나오나 했더니 여기서 나온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노 실장이 8·15 집회 주동자들을 ‘살인자’라고 지칭했다”고 말한 데 대한 답변이었다. 노 실장은 “허위로 물으면 안 된다. 속기록을 보라”며 언성을 높였지만, 지난 4일 청와대 국정감사 속기록엔 노 실장의 ‘살인자’ 발언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당시 “도둑놈이 아니라 살인자입니다, 살인자, 이 집회의 주동자들은”(속기록 64쪽)이라고 말했다.

與, 불리하면 ’가짜뉴스“...확인해 보니.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與, 불리하면 ’가짜뉴스“...확인해 보니.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노 실장은 청와대 국감에서 ‘강기정 전 청와대 정무수석의 라임 측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 청와대가 검찰에 출입기록 제공을 거부했다’는 취지의 언론보도(10월 13일)에 대해서도 “가짜뉴스다. (기록을) 이미 제출했다”고 했다가 정정했다. “수사에 적극 협조하라”는 문 대통령 지시가 보도 다음날(10월 14일) 나왔고, 해당 언론사는 노 실장의 발언을 ‘가짜답변’이라고 지적했다. 노 실장은 뒤늦게 “확인을 해 보니 제출 시점이 보도한 이후였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 바로잡는다”고 했다.

지난 8월 10일에는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과 김조원 청와대 민정수석이 청와대 고위 참모들의 2주택 처분 문제로 언성을 높여 싸웠다’는 보도에 대해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이 다음날 “한 마디로 가짜뉴스”라고 공식 논평을 했다. 하지만, 보름 뒤(8월 25일) 열린 국회 운영위에서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은 “2주택 처분 때문에 싸운 게 맞느냐”는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 질문에 한동안 망설이다 “언쟁을 한 적은 있지만 싸운 적은 없다”고 답했다. ‘가짜뉴스’라는 청와대 논평이 무색해지는 증언이었다.

지난 6월 인천국제공항공사(인국공) 정규직 전환 논란 당시 청와대는 “논란을 가짜뉴스가 촉발한 측면이 있다”고도 했다. 일부 언론이 ‘로또 채용’이라고 과장해서 논란이 커졌다는 취지였지만, 이에 대해선 더불어민주당에서도 “청년들의 분노는 ‘나의 일자리’ 문제를 넘어 불공정에 대한 문제 제기다. 정부 노동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원욱 의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이른바 ‘가짜뉴스 프레임’에 대해 김형준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팩트에 기반한 비판에 반박하기 힘들 때 여권이 손쉽게 꺼내 드는 카드”라고 지적했다. “일단 가짜뉴스로 규정하면 여당 지지자들끼리 SNS 등을 통해 정보가 공유돼 일단 위기를 넘길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정치컨설팅그룹 ‘민’의 박성민 대표는 최근 미국 대선을 예로 들며 “장기적으로 여권에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 대표는 “기존 지지층인 저학력 백인 노동자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고도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에서 패한 건 코로나 대응에 대한 언론의 비판을 ‘가짜뉴스’로만 치부한 탓에 피로감을 느낀 중도층이 부분적으로 이탈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영익·하준호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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