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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갭투자' 2주택자, 세금 걱정 0···임대차법에 해운대 웃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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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박 모(41) 씨는 지난달 같은 해운대구의 소형 아파트를 아내 명의로 샀다. 전용면적 41㎡인 이 아파트 매매가격은 1억5000만원이지만, 박씨가 실제로 마련한 자금은 3000만원이다. 세입자가 1억2000만원에 전세를 살고 있어서다. 이른바 '갭투자'다.

2주택자가 됐지만 박씨는 대출 제한도 세금 걱정도 하지 않는다. 부산은 2주택까지는 대출 규제나 취득세와 보유세 중과가 없는 비규제지역이기 때문이다. 아파트 매입자금 3000만원은 현재 사는 아파트를 담보로 추가 대출을 받아서 마련했다. 부산은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 최대 70%라 대출 한도가 넉넉하다.

박씨는 “전셋값이 많이 올라서 아파트를 한 채를 더 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사실상 월 8만원 수준의 금융 이자와 재산세 정도”라며 “시세차익이 훨씬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7월 이후 3개월간 부산 해운대구 아파트값은 8% 넘게 올랐다.

아파트가 즐비한 부산 동래구 사직동 일대. [중앙포토]

아파트가 즐비한 부산 동래구 사직동 일대. [중앙포토]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아파트 실거래가)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현재(15일 기준)까지 3개월여간 전국에서 갭투자가 가장 많이 이뤄진 지역은 부산 해운대구(95건)다. 경기도 김포시(94건), 경기도 파주시(88건), 충남 천안시 서북구(83건)가 뒤를 이었다. 갭투자는 아파트를 매입한 뒤 직접 거주하지 않고 임대목적으로 전·월세를 놓은 계약을 기준으로 따졌다.

갭투자가 많은 이들 지역의 공통점은 집값 대비 전셋값이 높고, 대출 등 각종 규제가 상대적으로 헐거운 비규제 지역이라는 데 있다. 정부의 '핀셋 규제'로 인해 규제가 느슨한 다른 지역의 주택시장이 들썩이는 '풍선효과'가 나타난 데다 ‘임대차2법’(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이 전셋값을 끌어올리며 갭투자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전세가율 오르며 갭투자 수월 

국회 상정 3일 만에 시행된 임대차2법은 정부가 임차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그런데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며 기존 전세물건이 시장으로 나오지 않는 데다 보유세 부담이 커진 집주인이 당장 현금을 마련할 수 있는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셋값이 오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임대차 2법이 7월 31일 시행된 후 3개월간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2.75% 올랐다. 전셋값이 오르면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아져 전세를 끼고 집을 살 때 필요한 자금이 줄어든다. 갭투자가 수월해진다는 의미다.

갭투자가 활발한 지역의 전세가율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부산 아파트 전세가율(10월 말 기준, 중위가격)은 71.6%다. 경기도 파주시(80.0%), 충남 천안시 서북구(79.7%)도 전세가율이 높다. 전국 아파트 전세가율은 임대차 2법이 시행된 지난 7월 70.9%에서 3개월 만에 71.3%로 올랐다. 서울 등 수도권은 같은 기간 66%에서 66.6%로 상승했다.

전국에서 ‘갭투자’ 많은 지역 톱5.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전국에서 ‘갭투자’ 많은 지역 톱5.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비규제 지역 집값 상승 

규제의 빈틈도 갭투자를 부추기고 있다. 갭투자가 많은 지역은 모두 비규제 지역이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최대 70%인 데다 2주택자도 취득세가 중과세되지 않아 최대 3%다. 보유세 중과세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

시장에선 정부의 핀셋 규제가 만든 부작용이라고 본다. 대표적인 지역이 김포·파주시다. 정부는 지난 6‧17대책을 통해 수도권 대부분 지역을 규제지역으로 묶였다. 다만 김포·파주시는 접경지역(비무장지대 인근)이라는 이유로 규제에서 빠졌고 당시 반발이 컸다.

김포시엔 수도권 2기 신도시인 한강신도시와 걸포지구, 향산지구 등이 있고 파주시에도 운정신도시, 금촌지구 등 택지지구가 있다. 이들 지역이 규제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파트값이 뛰었다. 김포시는 지난 3개월간 아파트값이 6% 넘게 올랐다. 당시에는 적어도 김포‧파주시에 있는 신도시만이라도 규제 대상에 포함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임채우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접경지역이더라도 집값을 주도하는 신도시 등 대규모 개발지역이 빠지고 양주에선 신도시(옥정) 이외 읍면도 포함돼 형평성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에 따른 풍선 효과 등이 부작용이 이어지며 전세난 등 서민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잦은 규제로 시장이 많이 왜곡됐고 중장기적으로 서민에게 대재앙인 상황”이라며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서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호 방안을 고심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는 빠르면 오는 18일 전세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전세난으로 인한 논란과 서민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 입장에선 뭐라도 내놔야 한다는 압박이 있지 않겠나”며 “임대주택 공급 물량 확대와 시기 조율 정도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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