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7월 도쿄올림픽을 한·일관계는 물론 남북, 북·미 관계를 풀 적기라고 보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정작 주무 부처 수장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또다시 이런 흐름에서 '패싱'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강 장관은 13일 SBS 8 뉴스에서 박지원 국정원장의 최근 방일과 관련, 내년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한·일관계를 풀어가려는 구상 등에 대해 외교부와 협의가 있었는지를 묻자 “외교부나 안보 부처 사이에 충분한 협의가 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박 원장이 귀국 후 언론에 설명한 내용에 대해서도 “정보 당국 수장의 말씀을 평가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만 답했다.
강 장관의 이 같은 설명에 정부가 중요한 외교 모멘텀으로 보는 내년 도쿄올림픽 구상에서 외교부 장관이 제외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평가가 나왔다. 앞서 방일한 박 원장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도쿄올림픽의 성공과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한ㆍ일, 한ㆍ미ㆍ일 공조는 필요하다"는 점을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에게도 전달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이에 앞서 강 장관은 서해 해양수산부 공무원 피격 사건이 일어난 후 9월 23~24일 청와대가 소집한 긴급관계 장관회의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당시에도 회의 참석 요청을 받지 못한 사실을 스스로 공개한 후 이에 항의했다고 이례적으로 밝혔다.
강 장관은 스가 총리가 취임한 지 두 달 가까이 대일 외교와 관련해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반면, 중국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스가 총리 취임 2주 뒤부터 방일을 추진해왔다. 일본 NHK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10월 초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었는데 중국 공산당 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19기 5중전회) 등의 일정 때문에 11월로 조정됐다.
지지통신은 "왕 부장이 이달 24일 또는 25일 방일이 유력하며, 스가 총리와 면담하는 방향으로 일정을 조정 중"이라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한·일 간 소통은 외교부 실무라인에서도 막혀 있다. 지난달 29일 코로나19 사태 이후 8개월 만에 대면 협의로 진행된 한·일 국장급 협의는 각자 입장만 확인한 채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났다.
일본통인 조세영 전 외교부 1차관은 일본 외무성의 실세 차관인 아키바 다케오(秋葉剛男) 사무차관과 직통 라인이 있었지만, 올해 8월 이후론 이마저도 끊겼다. ‘조세영-아키바 라인’은 지난해 지소미아(GSOMIA·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사태 때도 공식, 비공식 협의 채널로 활발히 가동됐다.
8월 중순 취임한 최종건 1차관은 취임 3개월 만인 지난 12일에야 아키바 사무차관과 첫 통화를 했다. 아키바 차관은 스가 신(新)정부의 외교 실세로 급부상했음에도 오히려 외교부는 패싱한 채 청와대와 아키바 차관이 직통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서울=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