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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 경제권 RCEP…일본과 첫 FTA, 인도 불참은 한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세계 경제의 30%를 아우르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출범한다. 한국ㆍ중국ㆍ일본ㆍ호주ㆍ뉴질랜드와 아세안 10개국(베트남ㆍ태국ㆍ싱가포르ㆍ필리핀ㆍ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 등)이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다. RCEP를 통해 일본과는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게 됐다.

RCEP으로 묶이는 15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기준 26조3000억 달러(약 2경9000조원)다. 전 세계 30%를 차지한다. 전 세계 무역에서 이들 국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28.7%, 인구로 따져도 29.9%에 이른다.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과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2배가 넘는 규모(무역 기준)다.

한국을 비롯한 RCEP 참여국 정부가 15일 서명을 했지만, 각국 의회 비준 절차가 남았다. 아세안 10개국 중 6개국, 그외 5개국 중 3개국 이상에서 비준을 해야 RCEP이 발효된다. 물론 효력은 비준을 마친 국가에 한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서명식에서 의장국인 베트남 응우옌 쑤언 푹 총리의 마무리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정문 서명식에서 의장국인 베트남 응우옌 쑤언 푹 총리의 마무리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기존 양자 FTA ‘업그레이드’ 

RCEP는 2012년 협상 시작 이후 8년에 걸친 줄다리기 끝에 탄생한 ‘메가 FTA’다. 하지만 한국 입장에서 수출입 시장 전체를 뒤바꿀만한 거대 변수는 아니다. RCEP 참여국 대부분과 이미 1대 1로 FTA를 맺고 있어서다. 기존 FTA를 ‘업그레이드’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다.

RCEP 출범으로 아세안 10개국의 상품 품목별 관세 철폐 수준은 현재의 79.1~89.4%에서 91.9~94.5%까지 높아진다. 교역 품목 가운데 91.9~94.5%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없앤다는 의미다. 아세안 국가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는 국내 기업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국가별로 10~40%에 이르는 화물자동차와 승용차, 자동차 엔진, 자동차 부품 등의 관세를 단계적으로 철폐해나가기로 했다. 철강제품(최대 5%), 철강관(20%), 도금강판(10%) 등 관세도 철폐 대상이다. 일부 국가에서 현재 25~30%에 이르는 냉장고ㆍ세탁기ㆍ에어컨의 관세도 철폐될 예정이다.

중국ㆍ호주ㆍ뉴질랜드와의 관세 철폐는 이미 90% 이상인 양자 FTA 수준으로 정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2차 한-메콩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해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13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제2차 한-메콩 화상 정상회의에 참석해 회의 준비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일본과 첫 FTA…국내 소재ㆍ부품ㆍ장비 도전 과제

한국과 일본은 RCEP를 통해 처음으로 FTA를 맺게 됐다. 두 나라 모두 83% 품목의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다. 다만 한국은 일본에 대해 자동차와 기계 등 민감 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개방하는 품목 역시 10~20년 장기로 관세를 철폐하거나, 일정 기간 현행 관세를 유지하다 이후 단계적으로 관세를 없애는(비선형 철폐) 방식을 적용하기로 했다.

김영만 산업통상자원부 자유무역협정상품과장은 “일본과 (협상에서) 주안점은 개방 수준과 산업 경쟁력, 일본 수출 규제 대응 대책 등 종합적으로 고려해 시장을 보호하고 일본에서 중간재를 조달하는 데 부담을 더는 쪽에 뒀다"고 강조했다.

RCEP 출범으로 향후 아세안 등지에서 수입하는 열대과일과 맥주 가격도 싸질 전망이다. 두리안ㆍ파파야ㆍ구아바ㆍ망고 등에 붙는 관세(30~45%)를 10년에 걸쳐 철폐할 예정이다. 맥주에 붙는 관세(30%)도 15~20년에 걸쳐 철폐한다. 당장은 아니지만 국내 유통되는 열대과일과 맥주 가격이 싸질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핵심 민감 농산물인 쌀ㆍ마늘ㆍ양파ㆍ고추 등 품목은 양허 대상에서 제외했다. 새우ㆍ오징어ㆍ돔ㆍ방어 등 수입이 많은 민감 품목도 양허 대상에서 뺐다.

RCEP을 통해 15개국을 아우르는 통일된 원산지 규범이 만들어졌고 증명ㆍ신고 절차도 간소화된다. 한류 콘텐트 불법 복제 등의 문제를 해결할 기반도 마련됐다. 저작권ㆍ특허ㆍ상표ㆍ디자인 등 지식재산권 전반에 대한 보호 규범과 침해 시 민ㆍ형사 절차 등 구제 수단도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다른 경제권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과 다른 경제권 비교.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낮은 협정 수준, 인도 불참은 한계  

RCEP로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유무역지대가 탄생하게 됐지만 한계도 있다. 선진국에 비해 제조업 경쟁력이 낮은 개발도상국이 대거 참여하는 만큼 품목별 개방 수위가 선진국 중심의 다른 FTA보다 낮다. 관세 철폐 기간도 10~20년으로 길다. 당장 국내 산업에 영향을 주는 구도는 아니다.

박태호 법무법인 광장 국제통상연구원장(전 통상교섭본부장)은 “세계 무역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15개국이 합의해 서명을 이뤄냈다는 의미가 있지만 한계점도 있다”며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CPTPP와 비교해 자유화나 국제 규범에서 매우 낮은 수준으로 (협정이) 이뤄진 데다 인도가 빠지면서 의미가 퇴색됐다”고 설명했다.

인도는 RCEP 협상 초기엔 참석했지만, 진행 과정에서 불참을 선언했다. 시장 규모에 비해 제조업 경쟁력이 높지 않은 인도는 RCEP 초기 무역 개방에 대한 불만이 컸다. 대 중국 무역적자 확대를 불참의 이유로 내세웠지만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불참에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RCEP을 주도한 중국과의 정치ㆍ외교적 갈등이 깊어지면서 인도는 결국 탈퇴를 결정했다.

이날 RCEP 서명식에 참석한 정상들은 “인도에 개방돼 있다”는 내용의 공동 선언문을 냈지만, 인도의 참여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바이든 당선에 CPTPP와 경쟁 구도 불가피

‘메가 FTA’ RCEP 등장으로 국제 무역 지형도는 좀 더 복잡해지게 됐다. 조 바이든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재추진 동력을 얻은 CPTPP와의 경쟁 구도가 불가피해서다.

CPTPP의 뿌리는 버락 오바마 정부와 민주당이 주도했던 TPP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TPP 일방 탈퇴를 결정하면서 일본 주도의 CPTPP로 변형됐다.

때문에 바이든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며 미국의 CPTPP 참여는 시간 문제란 분석이 나온다. 중국 주도의 경제공동체 RCEP가 본격 출범하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해 CPTPP 복귀를 서두를 수밖에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한국은 CPTPP에 참여하지 않은 데다, 이와 관련한 분명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김정회 산업부 통상교섭실장은 “미 대선의 영향을 전반적으로 보고 여러 시나리오를 지켜보는 단계며, 어떤 전략을 가져갈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을 아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가 중국 주도의 RCEP이냐, 일본 또는 미국 주도의 CPTPP냐를 놓고 양자택일을 고민하기보다는 양자 모두를 선택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야한다고 강조한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인 한국이 지역자유무역협정에서 빠지는 것은 결국 손해”라며 “일본이나 베트남 등 다른 RCEP 국가처럼 한국도 CPTPP에 중복으로 참여하며 무역 규범에서 ‘보험’을 하나 더 들어두는 게 맞다”고 말했다.

세종=조현숙ㆍ하남현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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