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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도둑질" 지지자들 집회에, 골프장 가던 트럼프 '엄지척'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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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워싱턴DC에 있는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번 대통령 선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워싱턴DC에 있는 대법원 앞에서 집회를 열고 이번 대통령 선거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꺾고 당선을 확정 지은 지 꼭 일주일째인 14일(현지시간). 오전부터 워싱턴DC 백악관 동쪽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 있는 ‘프리덤 플라자(Freedom Plaza)’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트럼프 지지자들 백악관 앞 대규모 집회 #'도둑질을 멈춰라' 트럼프 불복에 동조 #일부 "고생한 대통령께 감사…작별 인사" #트럼프, 지지자앞 지나며 인사 '팬 서비스' #전날 "누가 될지 모르지만 다음 정권…" #바이든 지지자와 충돌…대규모 폭력사태 없어

성조기를 몸에 휘감거나 공화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티셔츠나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를 쓰고, ‘트럼프-펜스 2020’, ‘트럼프를 위한 여성들’ 같은 지지 깃발을 들고 있었다.

대부분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민주당 지지율이 90%가 넘는 워싱턴DC는 야외에서도 마스크를 쓰는 게 상식처럼 돼 있어서 광장에 모인 이들이 타 주(州)에서 온 트럼프 지지자들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은 14일 워싱턴DC에서 집회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승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너엔 '도둑질을 멈춰라'고 적혀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은 14일 워싱턴DC에서 집회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 승리를 빼앗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너엔 '도둑질을 멈춰라'고 적혀 있다. [AFP=연합뉴스]

정오께부터 대규모 집회가 시작됐다. ‘백만 MAGA 행진(Million MAGA March)’, ‘트럼프를 위한 행진(March for Trump)’, ‘도둑질을 멈춰라(Stop the Steal)’ 등 몇몇 단체가 각각 집회를 주최했지만, 트럼프 대통령 패배를 인정할 수 없다는 공통된 주장을 폈다.

MAGA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유세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의 약자다. ‘도둑질을 멈춰라’는 ‘내가 이긴 선거를 민주당에 도둑맞았다’는 트럼프의 주장에서 따온 것이다.

연단에 오른 한 참가자가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를 빼앗겼다. 우리는 싸워야 한다”고 외치자 군중은 “유에스에이(USA)”를 연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워싱턴DC 백악관 옆 프리덤 플라자에 모여 대선 불복 시위를 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워싱턴DC 백악관 옆 프리덤 플라자에 모여 대선 불복 시위를 했다. [AP=연합뉴스]

다른 참가자는 “모든 합법적인 투표를 세야 한다. 불법적인 투표를 제외해야 한다”고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일주일간 트위터와 대국민 회견을 통해 한 주장을 그대로 반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배경음악으로 쓰는 컨트리 뮤직 '갓 블레스 USA"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트럼프 없는 트럼프 유세 현장이었다.

오후에 시위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를 따라 대법원을 향해 2.4㎞를 행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일 다음 날 선거 결과를 “아마도 최고법원에서 판단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도널드 트럼프대통령 지지 집회가 열린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참가자들 앞으로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워싱턴DC에서 도널드 트럼프대통령 지지 집회가 열린 14일 트럼프 대통령이 참가자들 앞으로 지나가면서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어쩌면 집회에 잠깐 들러 인사할 수도 있다”고 예고해 지지자들에게 집회 참여를 독려했다. 실제로 이날 집회 시작 2시간쯤 전인 오전 10시께 트럼프 대통령이 탄 차량 행렬이 프리덤 플라자 앞을 천천히 지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차 안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지지자들은 환호했고, 차를 따라가거나 휴대폰에 대통령 차량 행렬 모습을 담느라 분주한 모습이 방송 카메라 화면에 잡혔다.

트럼프 대통령 차량 행렬은 유턴해 반대편 지지자들에게도 다가갔다. 지지자들에게 ‘팬 서비스’를 한 트럼프 대통령은 군중을 뚫고 버지니아주에 있는 자신 소유 골프클럽으로 향했다. 골프를 친 뒤 오후에 백악관에 복귀할 때도 백악관 앞을 지키는 지지자들로부터 다시 한번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집회에는 백인들이 대체로 많았지만, 유색 인종도 적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집회에는 백인들이 대체로 많았지만, 유색 인종도 적지 않았다. [로이터=연합뉴스]

집회에 나온 사람들의 배경은 다양했다.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즈와 음모론을 주장하는 큐어논 등 논란의 중심인 단체들이 대거 참가했지만, 자녀와 반려동물을 데리고 나온 가족, ‘아이 러브 트럼프(I love Trump)’라고 쓴 커플 티셔츠를 입은 노부부 등 가족ㆍ개인 단위 참가자도 많았다.

백인이 많았지만, 인종적 배경도 다양했다. ‘트럼프를 위한 에콰도르’ 깃발을 들고 참가한 단체처럼 라틴계 미국인, 아시아계 미국인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워싱턴DC에서 집회를 열었다.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즈 등도 참여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워싱턴DC에서 집회를 열었다.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즈 등도 참여했다. [AFP=연합뉴스]

필리핀 이민자 출신 한 여성은 미 공영 NPR 인터뷰에서 “현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본 사람들은 너무 흥분됐다. 우리는 트럼프를 사랑한다. 진심으로 그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행사 주최 측과 일부 극우 단체들은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지만,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그런 생각으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버지니아주에서 온 30대 여성 파멜라는 “지난 4년간 우리를 위해 고생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나왔다"면서 "일단 작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승복에 가까운 말을 하면서 지지자들 심경에도 일부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관련 발표 도중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간에, 어느 정권이 될지 모르지만, 시간이 말해줄 것"이라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행정부는 락다운(Lock down·봉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주일 째 바이든 당선인에게 승복하지 않고 있다. 전날 미 언론사들은 조지아주 개표 완료 결과 바이든이 승리해 모두 3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워싱턴DC에서 집회를 열고 이번 대통령 선거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14일 워싱턴DC에서 집회를 열고 이번 대통령 선거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폈다. [AFP=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ㆍAP통신 등은 이날 집회에 수천 명이 참가했다고 전했다. 보수성향 매체인 폭스뉴스는 수만 명으로 추산했다. 워싱턴 DC 당국은 시위 참가 인원을 1만 명으로 봤다. NPR은 “어떤 기준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도둑맞았다고 공개적으로 의사표시를 한 사람 수가 예상보다 많다”고 전했다. 주최 측은 행사 전 백만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자신을 지지하는 시위대 앞을 지나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일 자신을 지지하는 시위대 앞을 지나며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트럼프 지지자들과 바이든 지지자들 간 국지적 충돌은 있었으나, 대규모 폭력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일부 지역에서 양측 지지자 간 말싸움과 주먹다짐, 물병 던지기 같은 대치 상황이 발생해 경찰이 출동해 시위대 일부를 해산시켰다.

CNN은 이날 밤늦게 시위대 간 칼부림이 있어 중상자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충돌을 막기 위해 워싱턴DC에는 대규모 경찰병력이 배치됐으며, 지난여름 흑인 사망 인권시위 때보다 차량 통제와 이동제한 반경이 확대됐다.

주최 측은 이날 뉴욕, 보스턴, 로스앤젤레스, 애틀랜타 등 미 전역 주요 도시 51곳에서 집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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