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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바왕' 유상봉의 비참한 말로…돈 빼돌린 아들과도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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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6월 17일 ‘함바왕’ 유상봉(74)씨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6월 17일 ‘함바왕’ 유상봉(74)씨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함바. 건설현장의 간이 식당을 부르는 일본 말이다. 함바 운영권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릴 만큼 막대한 이권으로 꼽힌다. 공사가 진행되는 수개월에서 수년간 노동자 수백 명 이상의 세 끼니를 독점으로 공급하기 때문이다. 함바를 따내기 위한 로비 사건이 끊이지 않는 배경이다.

유씨, "로비하며 뇌물로 500억 이상 써" 

함바 업계의 대표적인 로비스트가 유상봉(74)씨다. 그는 공사 발주처와 시공사, 지방자치단체, 정치인, 수사당국에 전방위 로비를 하며 전국의 함바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업계에선 ‘함바왕’으로 불렸다. 하지만 2010년 검찰 수사망에 걸렸고, ‘함바 게이트’가 터졌다. 특히 경찰청장을 포함한 경찰 수뇌부가 유씨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줄줄이 구속되면서 경찰이 큰 타격을 받기도 했다.

”전국의 경찰서에는 정보관들이 있습니다. 정보관은 지자체와 건설현장 등의 동향 보고를 경찰서장에게 올려요. 그래서 경찰이 지자체장 등의 약점을 많이 잡고 있습니다. 경찰청장 등을 통해 경찰서장을 소개받고, 경찰서장을 통해 지자체장 등을 소개받아 함바 운영권을 땄습니다.”(6월 17일 유상봉씨 인터뷰)

함바 게이트 이후 유씨는 업계에서 살아남기가 어려워졌다.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정·관계 인사들이 그를 만나기조차 꺼렸다. 함바 운영권 발주 절차도 점차 투명해졌다. 유씨는 자신에게 투자한 동료 함바 업자로부터 사기 혐의로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유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2011년 1월 10일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했다.

강희락 전 경찰청장이 유씨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2011년 1월 10일 서울동부지검에 출석했다.

고위층 안 만나주자 ‘칼’ 들이대기 시작

유씨는 함바업계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과거 알고 지내던 고위층에 ‘칼’을 들이대기 시작했다. 옥중에서 수십 명에게 협박성 편지 100통가량을 보내 “돈만 받고 아무런 도움을 안 줬으니 함바를 수주하게 해주든지 돈을 돌려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2015년 드러났다. 지난해까지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경찰 고위직들을 뇌물수수 혐의로 진정·고소하기도 했다. 유씨는 “그동안 뇌물로 쓴 돈이 500억원을 넘는다”고 주장한다.

2020년, 윤상현 의원과 선거 공작 혐의

유씨는 올해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와 윤상현 무소속 의원이 연루된 사건이 불거지면서다. 인천지검은 6일 유씨를 윤 의원과 공모해 올해 국회의원 선거(인천 동구·미추홀을)에서 윤 의원의 경쟁 후보였던 안상수 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의원을 허위 사실로 고소한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또 유씨는 고소 대가로 함바 운영권 등의 이권을 윤 의원 측으로부터 받았다고 설명했다. 재판에 넘겨진 사람은 유씨와 윤 의원을 포함해 11명에 달한다. 1차 수사를 맡은 경찰 관계자는 “윤 의원이 왜 하필 위험인물인 유씨와 어울렸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6월 15일 윤상현 무소속 의원. 연합뉴스

6월 15일 윤상현 무소속 의원. 연합뉴스

“감옥서 생 마칠 수도…비참한 말로” 

유씨는 뇌물공여범에서 시작해 사기, 무고, 명예훼손, 선거 공작 범죄자로 전락한 것이다. 검찰 기소대로 법원이 인정한다면 유씨는 전과가 많은 데다 누범 기간에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중형이 불가피해 보인다. 고령에 지병(녹내장 등)도 앓고 있어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다”고 수사당국은 예측한다.

유씨에 대한 ‘악몽’을 기억하는 경찰이 유씨를 특별 단속하고 있는 점도 불리한 조건이다. 이번 선거 공작 사건도 경찰청 범죄정보과의 저인망식 첩보 수집을 통해 불거졌다. 최근에는 서울 송파경찰서가 유씨에 대한 9억원 규모의 사기 혐의 고소장을 접수하자마자 바로 수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유씨는 혈육과도 멀어지고 있다. 선거 공작 수사를 받던 도중 아들과 심한 욕설을 주고받으며 인연을 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의원 측의 도움을 받아 함바 등을 수주하는 과정에서 그 일부를 아들이 아버지 몰래 빼돌린 탓이라고 경찰은 설명했다. 최측근인 함바 업자 박모씨와도 최근 고소장을 주고받으며 척을 졌다. 한 함바 업계 관계자는 “자업자득”이라며 “오직 돈만을 위해 살다 비참한 말로를 겪고 있다"고 냉정히 평가했다.

김민중 기자 kim.minjo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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