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멀루니, 선거서 참패…조세 저항에 민감한 정치권

중앙선데이

입력 2020.11.14 00:31

업데이트 2020.11.14 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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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호 05면

증세 논쟁 

브라이언 멀루니

브라이언 멀루니

2005년 10월 30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북악산 산행을 마친 후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브라이언 멀루니(사진) 전 캐나다 총리를 언급했다. 1984년 캐나다의 진보보수당 대표였던 멀루니는 이듬해 선거에서 169석이라는 압도적인 승리로 총리가 됐다. 이후 각종 개혁 입법을 주도했던 멀루니는 1991년 연방부가세(MST) 도입이 핵심인 조세개혁 법안을 밀어붙였고, 국회는 이를 통과시켰다.

캐나다는 이전까지 제조업에 대해서만 부가가치세를 매겼는데, 멀루니는 모든 업종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확대했다. 캐나다 국민 80%가 연방부가세 도입을 반대했지만,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멀루니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하지만 세제 개혁 역풍으로 169석이던 진보보수당은 1993년 총선에서 단 2석만 남기고 전멸했다. 진보보수당과 경쟁하던 자유당은 연방부가세 철폐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9년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다.

멀루니가 선거에서 진 이유는 한두 가지는 아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연방부가세 도입으로 민심을 잃었던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봤다. 멀루니의 실패를 잘 알고 있던 노 전 대통령이었지만,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자 2005년 종합부동산세를 전격 도입했다. 집 가진 사람을 향한 ‘징벌적 세금’이라는 비판이 이어졌고, 노무현 정부는 2005년 상반기 재·보궐 선거,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참패했다.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선 정권까지 내줘야 했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회고록 『영원한 권력은 없다』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세금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친 건 1978년 치러진 제10대 총선이다. 박정희 정부는 1977년 7월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고, 곧바로 9월 말 예정신고를 실시했다. 벼락처럼 떨어진 세금에 국민은 반발했고, 이듬해 치러진 10대 총선에서 여당인 공화당은 참패했다. 야당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가 ‘부가가치세 철폐’였다.

문재인 정부가 증세를 하고도 계속 ‘증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배경에 기인한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웠던 ‘증세 없는 복지’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증세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6월 한길리서치가 증세를 주제로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1029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53.8%가 증세에 반대했다. 찬성한다고 답한 사람은 35.2%에 불과했다.

세금을 올려 박수를 받은 사례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증세 이후 꼭 정권이 바뀌거나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하락하는 건 아니다. 일본은 지난해 10월 소비세(부가가치세에 해당)를 10%로 종전보다 2%포인트 인상했지만, 아베 당시 총리의 지지도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소비세 인상에 일본 국민 절반 이상이 ‘납득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 언론은 “서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식료품 세율은 올리지 않고 동결한 것이 주요했다”고 평가했다.

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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