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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창·의병 ‘포퓰리즘’ 한계…한·일 ‘시시포스 바위’ 깨뜨려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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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호 10면

바이든 시대 - 한·미·일 공조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에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30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에 강제동원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조 바이든 시대 미국의 외교정책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와는 여러모로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4년 동안 국제관계를 비즈니스의 시각으로 보는 트럼프 때문에 외교의 예측 가능성은 실종됐고, 미국의 전통적 동맹국들은 등을 돌렸다. 특히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의 방위비 협상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다행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이런 문제로 동맹을 ‘갈취’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한·미 관계는 지금보다 안정적으로 운용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최악 한·일 관계 극복이 먼저 #바이든 “동맹 방위비 갈취 안 해” #한·미 관계는 안정적 흐름 예상 #한·일, 징용 배상 등 걸림돌 여전 #토착왜구론 등 시대착오·반지성적 #경제·통상 문제 감정적 접근 안 돼 #국익 극대화 실용적 외교 나설 때

한국이 한·미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일 관계를 복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북핵 문제의 해결과 동북아의 안정을 위해서는 한·미·일 3국의 협조가 절대 필요한데 지금까지 현 정부의 대일정책은 정확하게 그 반대로 진행됐다. 위안부 합의의 파기와 강제징용 배상 판결로 한·일 관계는 더 이상 나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이다.

왜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태가 됐을까. 정치권이 만들어 낸 반일 프레임에 국민들이 너무 쉽게 현혹됐기 때문이다. 토착왜구와 죽창, 의병이라는 키워드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와 여당은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이용해 정치적 이익을 챙겨 왔다. 그러나 이런 비정상적인 한·일 관계를 이대로 계속 가져갈 수는 없다. 한·미·일 동맹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미·일 공조는 굳건히 다져야 한다. 최악의 한·일 관계를 상징하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잘못된 한·일 관계의 현주소와 그 개선책을 살펴보자.

일본 유학파 애국지사도 토착왜구?

조정래 작가는 지난 10월 12일 기자간담회에서 “토착왜구라고 부르는…, 일본 유학을 다녀오면 무조건 다 친일파가 된다. 민족 반역자가 된다”는 폭탄 발언을 했다. 그래서 150만 친일파를 단죄하지 않으면, 이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의 과격한 주장은 엄청난 반발을 일으켰다. 일본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 무조건 민족 반역자라면, 일제에 항거한 순국선열이나 애국지사로 일본에 유학했던 분들도 비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토착왜구를 처벌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단순한 반일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넘어서는, 시대착오적이고 반지성적인 논리다. 황당한 발언의 후폭풍이 커지자, 그는 문법을 모르는 기자들의 무지를 핑계로 자신의 진의가 왜곡됐다고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토착왜구를 처벌해야 한다는 소신은 변함없다고 다시 주장했다. 선동적인 소설가의 비대해진 자의식은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을 그대로 투영한다.

죽창이 정치적으로 주목받게 된 사정도 비슷하다. 일본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항하여, 지난해 7월 1일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라는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그러자 정치인들은 일본의 경제보복에 죽창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동학농민운동이나 임진왜란에 등장하는 죽창의 상징성을 이용하여, 일본에 대한 강도 높은 보복조치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달 30일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열린 일본 시민단체의 배상 촉구 시위.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도쿄 미쓰비시중공업 앞에서 열린 일본 시민단체의 배상 촉구 시위. [연합뉴스]

물론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자유무역이나 공정무역이라는 국제통상 규범의 원칙에 반한다. 일본의 조치는 불과 그 며칠 전 오사카에서 열렸던 G20 정상회의의 선언에도 어긋났다.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에 대한 규제는 우리 국민의 분노를 사고도 남았다. 결국 한국 정부는 9월 11일 이 문제를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일본의 조치가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규정된 일반적 최혜국 대우(1조), 무역규칙의 공표 및 시행(10조), 수량제한의 일반적 폐지(11조)의 의무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보복이 아무리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에 대해 비이성적으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중대한 이해가 걸린 경제나 통상 문제는 감정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다. 그래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조치가 가져올 득실을 냉정하게 평가해 일본에 대해 보복이든 대항이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우리는 특히 정치인들의 심사숙고하지 않은, 포퓰리즘 주장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조국 전 장관이나 최재성 전 의원처럼 선동적이고 즉흥적인 주장을 하는 정치인이 그런 경우다. 당시 조국 민정수석은 7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올린 것을 비롯해 여러 차례 일본을 비판했다. 최재성 전 의원은 7일 일본의 경제보복을 경제침략이라고 규정하며, 의병을 일으켜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의병과 죽창이 난무하는 정치적 주장에 정부도 대일 강경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위안부 문제를 다시 꺼냈으며,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파기까지 언급했다.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WTO에 일본과의 분쟁을 회부하면서, 한국이 반드시 승소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국민들의 반일감정은 하늘을 찔렀고, 한·일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렇지만 우리가 과거사나 현재의 현안에 대한 사과와 양보를 계속 일본에 요구한다면, 결국 양국 관계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1965년 청구권협정과 2015년 위안부합의로 식민지 지배와 위안부에 대한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과거사 문제도 30차례 이상 사과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사과에 진정성이 없다고 주장한다. 사과에 대한 양국의 공방은 헛된 일을 반복하는 ‘시시포스의 바위’나 다름없다.

집단최면 빠진 한국, 국익 눈떠야

경제적인 손실도 엄청나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에게 좋은 교역 파트너이지만, 일본의 통상보복 때문에 무역규모는 계속 축소되고 있다. 무역전쟁으로 번진 강제징용 문제는 아직 출구를 못 찾고 있다. 일본 여행 취소와 일본 상품 불매운동의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의 근로자에게 돌아오지만, 사정은 바뀌지 않고 있다. 일본은 한국보다 경제규모가 세 배는 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가 크지 않다.

친일에 대한 우리 사회의 비난과 매도는 구조적이다. 학생들은 교실에서부터 철저하게 반일 교육을 받고, 국민들은 쉽게 반일 정서에 매몰되어버린다. 그렇게 뿌리내린 반일 정서는 건강하지 못하고 그 폐해는 심각하다. 그것은 정상적인 양국의 교류를 방해해 건설적인 국가관계의 성립을 가로막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은 WTO 사무총장 경선에서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을 지지하지 않았다. 한·미·일 공조가 튼튼했다면, 유 본부장이 결선투표에서 이렇게 참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외교적 실패는 결국 국민의 반일 정서에 편승한 정치권의 잘못된 행태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반일 프레임이라는 집단 최면에 빠져 버렸다. 이를 고치지 않으면, 합리적인 한·일 관계의 정립은 요원하다. 곧 출범할 바이든 행정부는 한·미·일 공조와 협력을 원하는데, 반일 프레임이 지속되면 협력의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2015년 위안부 합의 당시 바이든 부통령이 한·일 양국의 막후에서 한 역할은 익히 알려져 있다. 이제는 국익을 위해서라도 시대착오적인 반일 프레임은 버려야 한다. 미국의 정권 교체는 한·일 양국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할 좋은 기회가 된다.

이제 우리는 일본의 현실적인 사과를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상식이 아니다. 정치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반일 프레임에 더 이상 휩쓸리지 않도록 하자. 국익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인의 즉흥적인 주장은 주목할 필요도 없다.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국제사회에는 오직 영원한 국익이 있을 뿐이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외교보다 더 절실한 것은 없다.

토착왜구

이 용어가 우리 사회에 처음 등장한 건 일제 강점기였다. 일제가 한국을 병합한 1910년을 전후하여 여러 언론과 문집에서 ‘토왜(土倭)’라는 표현을 쓴 것이 그 기원이라고 한다. 당시 일제의 침략에 대한 반발로 친일 부역자들을 그렇게 불렀고, 그 표현이 21세기에 토착왜구라는 용어로 부활한 것이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대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게이오대학 대학원에서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제해양법학회와 해양법포럼 회장을 역임했다. 국제법과 국제정치의 융복합적 시각에서, 해양과 핵문제의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다. 저서 『북핵 앞에 선 우리의 선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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