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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됐는데 뭐꼬, 죽으라 놔두나” 이재민, 아직 텐트 생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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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호 16면

상흔 아물지 않은 포항 지진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은 2017년 포항 지진 발생 이후 임시 대피소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는 아직 이재민 20여 세대가 남아있다. 김나윤 기자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은 2017년 포항 지진 발생 이후 임시 대피소로 쓰이고 있다. 이곳에는 아직 이재민 20여 세대가 남아있다. 김나윤 기자

“3년이 다 됐는데 이게 뭐꼬. 우리는 그냥 죽으라고 내버려 두는 거랑 똑같은기다.”

체육관 대피소에 20가구 남아 #200만원 지원, 집수리 어림없어 #피해구제 최소 1년 더 기다려야 #대피소 떠난 이도 트라우마 고통 #정신적 피해 커 일상 복귀 못 해 #“도시 재건보다 치료 손길 먼저”

8일 포항시 흥해읍 흥해실내체육관 안에서 만난 정현자(85)씨가 한숨 쉬며 내뱉은 말이다. 체육관은 3년 전 지진 발생 후 줄곧 임시 대피소로 쓰이고 있다. 정씨는 올해 이곳에서 4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체육관에 들어서자 시설 로비에서는 막 점심을 마친 주민들이 식기 정리에 분주하다. 체육관 내 취사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주민들은 로비에 모여 다 함께 식사하곤 한다. 음식은 끼니때마다 인근 식당가 배달을 이용한다. 시 지원으로 평일에는 아침과 저녁, 주말엔 점심이 제공된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체육관 안은 빛바랜 분홍색 텐트 200여개가 줄 맞춰 설치돼있다. 하지만 현재 텐트에 남아 있는 이재민은 20여 가구. 가족 없이 혼자 사는 70~80대 노인이 다수다. 이날 만난 또 다른 이재민 최우득(81)씨는 “서울서 총리가 왔으면 여기도 당연히 들러보고 가야지 뭐가 바쁘다고 휘리릭 가뿌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전날 정세균 국무총리가 포항 지진 발생 3년을 앞두고 흥해읍 대성아파트 등 피해 현장을 방문했지만 흥해실내체육관은 찾지 않았다.

총 234세대 임시 거처 머물러

 이재민 최우득씨는 3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텐트에서 4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김나윤 기자

이재민 최우득씨는 3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텐트에서 4번째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김나윤 기자

2017년 11월 15일 규모 5.4 지진이 포항시 흥해읍 일대를 강타했다. 당시 포항에서만 부상자 92명, 2000여명 안팎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시설물 피해 2만7317건 등 피해액만 약 672억원으로 조사됐다. 포항시와 국토교통부는 이재민 주거 안정 지원 대책으로 시설 복구 비용을 지원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국민임대아파트와 주거형 컨테이너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포항시에 따르면 현재 LH 국민임대아파트에는 72세대, 전세임대주택엔 134세대, 주거용 컨테이너가 모여있는 ‘희망보금자리 이주단지’ 내엔 11세대와 기타 개별 컨테이너에 17세대 등 총 234세대가 임시 거처에 머물고 있다.

정부의 각종 주거 지원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에 남은 이들은 왜 이곳을 떠나지 않는 걸까. 텐트 생활을 하는 이재민들은 ‘한미장관맨션’ 등 거주자로 ‘소파(小波)’ 피해 판정을 받았다. 포항시는 지진 발생 후 재난안전법에 따라 정밀안전점검을 실시했고 피해 건축물을 전파(全破), 반파(半破), 소파로 분류했다. 주택 기준 전파는 900만원, 반파는 450만원, 소파는 100만원씩 정부 지원금이 지급됐고, 이에 따라 의연금(국민 성금) 역시 세대별 각각 500만원, 250만원, 100만원씩 총 6만 708세대에게 지급됐다.

문제는 정부가 책정한 정부 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하단 점이다. 전파와 반파는 사실상 복구비 개념으로 정부는 2004년 표준건축비를 근거로 지원금 단가를 책정했다. 소파는 침수 피해에 따른 수리비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 규정에 따라 지원금은 15년 동안 개정 없이 동결돼왔다. 그사이 표준건축비와 수리비는 50% 이상 상승했다. 정씨, 최씨 등 체육관에 남은 주민들이 “천장이 무너지고 벽이 갈라졌는데 200만원으로 어떻게 고쳐서 살라는 거냐”며 반발하는 이유다.

체육관에서의 임시 생활이 장기화하면서 이재민들의 살림살이도 늘어나고 있다. 김나윤 기자

체육관에서의 임시 생활이 장기화하면서 이재민들의 살림살이도 늘어나고 있다. 김나윤 기자

남은 이들의 기대는 정부의 피해구제 지원금에 쏠리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포항지진특별법이 지난해 국회 문턱을 어렵게 넘으면서 정부는 올해 9월부터 공식적으로 피해구제 접수를 받고 있다. 하지만 내년 8월 말까지 신청을 받고 이후 피해 심사만 6개월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직접적인 피해 구제가 있기까지 최소 1년은 더 기다려야 하는 셈이다.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주택을 수리할 수 없는 경우 최대 1억 2000만원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피해 심사가 기존에 판정받은 피해 규모와 지원금을 참고해 조사가 이뤄지기 때문에 세대별 지원금이 어느 정도 지급될지 쉽사리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포항시는 지난해 말부터 체육관 이재민들 중심으로 임대아파트 등으로 이주 의사를 묻고 있다. 원칙상 전파, 반파 피해 대상자들에게만 임시 주택을 제공했지만, 장기간 대피소 운영과 고령인 이재민들의 건강을 고려해 남은 이들에게도 주거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타 지역으로 이주 고민” 19.7%

철거를 앞둔 흥해읍 대성아파트 모습. 김나윤 기자

철거를 앞둔 흥해읍 대성아파트 모습. 김나윤 기자

포항시 주거안정과 관계자는 “2년 계약된 집이긴 하지만 시와 LH가 18만원 안팎의 임대료를 지원한다”며 “하지만 30년 넘게 한동네에서 살아온 지역 주민 정서상 새로운 곳을 꺼려 이주를 설득하는 데 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체육관은 떠났지만 일상으로 복귀 못 하는 주민들도 상당하다. 당시 지진 피해가 트라우마로 남으면서 지역 주민들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최호연(41)씨 역시 3년째 정신과 치료 약을 복용 중이다.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공황장애 증상 때문에 하고 있던 일도 그만둬야 했다. 날로 신경이 예민해지면서 가족과 불화도 끊이질 않았다. 최씨는 “가족과 함께 살려고 돈 모아 장만한 아파트가 지진으로 전파돼 하루아침에 사라졌다”며 “그래도 집은 보상도 받을 수 있고 새로 장만하면 되지만 트라우마는 보상은커녕 언제 완치가 될지 알 수 없다”고 토로했다.

현행법상 사회재해에 따른 정신적 피해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STD)로 인한 장해등급(14등급) 판정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모두 장해 판정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실질적 지원 대상자에서는 배제되기 일쑤다.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가 지난 8월~9월 포항시민 55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진 이후 정신건강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212명(39.1%)이었다. 또 정신적 피해로 인해 타 지역으로 이주할 의향을 고민하는 이들도 108명(19.7%)을 차지했다.

이영렬 포항지진트라우마센터장은 “재난으로 심리 치료가 필요한 사람들은 혼자 버티며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재발 방지, 도시 재건 등 ‘미래’ 이야기도 중요하지만 국가는 당장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 갖고 치료의 손길을 내미는 게 급선무”라고 설명했다.

도시 재건이 화두…떠나간 주민들 다시 껴안아야

양만재 11.15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 부단장

양만재 11.15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 부단장

11.15지진 지열발전 공동연구단(공동연구단)은 2017년 포항 지진의 원인을 규명하는 정부조사단과 별개로 지역사회 중심으로 구성된 민간조직이다. 2018년 5월 한동대 교수진을 중심으로 법률, 복지, 지진과학 분야 등 전문가 20여 명이 모여 만들었다. 특히 공동연구단은 포항지진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포항 심부지열발전소(EGS) 사업에 대해 집중 조사하면서 관련 연구자의 비윤리적 행위를 밝히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양만재(사진) 공동연구단 부단장은 “올해의 공동연구단 화두는 도시재건”이라면서 “단순히 새롭고 높은 건물을 짓는게 아니라 지진 피해를 경험한 도시를 앞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떠나간 지역 주민을 어떻게 다시 끌어들일지가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공동연구단은 포항지진 3년, 연구단 활동 2년을 맞이해 지난 11일 ‘2020 포항지진 3주년 국제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올해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 있나.
“새로운 사실보단 앞으로 집중 부각해야 하는 분야가 있다. 2016년 경주지진과 이듬해 포항지진이 발생했지만, 원자력발전과 지열발전의 연관성, 또 이게 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적다. 올해 4월 감사원이 산업통상자원부의 허술한 지열발전 관리를 지적하지 않았나. 산자부가 원전도 관리·감독하는데 원전은 안전하겠냐는 생각이 들더라.”
촉발 지진을 두고 학계에선 아직 논쟁거리인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지질발전사업을 추진해왔다. 포항지진과 지열발전이 상관없다면 연구자답게 논문과 자료로 반박해야 한다. 하지만 3년 동안 말로만 ‘상관없다’고 할 뿐 이렇다 할 논문 한 편 내놓지 못하고 있다. 비겁하고 우습다.”
하향식으로 진행되는 국책사업의 한계인 것 같다.
“에너지발전이라는 게 경제적 이득도 있겠지만, 지역사회에 끼치는 위험(리스크)도 분명 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연구자라면 분명 리스크에 대해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당장 사업을 유치할 땐 정부 눈치 보느라 장밋빛 미래만 이야기했다. 그래놓고 지진 발생하니 사과는커녕 인정도 안 한다. 비윤리적 연구자들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이 피해를 겪었다.”
국무조정실 산하 진상조사위원회가 있는데 연구단을 계속 유지하는 이유는.
“정부를 감시하는 역할은 늘 필요하다. 지난 3월 정부조사단에서도 사실상 인재라고는 했으나 ‘그래서 누가 잘못했다’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걸 조사하고 밝히는 게 우리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특별법 제정에 따른 후속 대책에 대해 평가하자면.
“국가 혹은 지역 단위로 지진 이후에 대한 평가 지표가 마련돼야 한다. 건물 대피 매뉴얼이 얼마만큼 개선됐는지 모니터링 해야 한다. 주택 피해 구제 신청에만 관심이 쏠려 있어 아쉽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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