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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뮤비·영화·국악을 품 안에…‘블랙홀’된 게임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게임의 진격

마인크래프트로 구현한 랜선 어린이궁중문화축전의 ‘마크로 만나는 궁’.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마인크래프트로 구현한 랜선 어린이궁중문화축전의 ‘마크로 만나는 궁’. [사진 한국문화재재단]

지난주 경기아트센터에서는 희한한 공연이 열렸다.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오후까지 밤을 새워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메타 퍼포먼스: 미래극장’이 12차례 이어졌는데,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를 통해 실시간 온라인 생중계됐다. ‘온라인 공연’만은 아니었다. 오프라인 관객들이 사계절을 암시하는 4개의 공간에서 중계 카메라를 짊어지고 온라인 관객의 선택에 따라 움직이며 공연 깊숙이 들어가고, 온라인 관객은 소리꾼 둘이 벌이는 만담 형식 해설을 즐기며 게임 방송 보듯 공연을 관람했다. 연주와 동시에 대형 스크린으로 ‘극장 살해하기’라는 슈팅게임도 펼쳐졌다.

가상현실 소셜 플랫폼으로 진화 #게임 산업 규모, 이미 영화 추월 #포트나이트, 3억5000만 명 즐겨 #넷플릭스 CEO “최대 경쟁 상대” #공연+게임 스트리밍 신개념 공연도

팬데믹 직전 공연계 트렌드였던 ‘장소특정형’ 공연과 게임 스트리밍을 결합한 신개념 공연의 등장이다. 늘 온라인 상태에 있는 젊은 세대를 국악 공연 관객으로 유인하기 위해 ‘게임 방송’이라는 플랫폼을 활용한 것이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원일 예술감독은 “팬데믹으로 공연을 못 하게 되니 새로운 발명이 필요했다. 공연예술이 과거의 것이 안 되려면 현재 우리가 가장 즐기는 것을 끌어들여야 하는데, 게임이 산업 규모에서 이미 영화를 추월했다는 점에 착안했다”고 밝혔다.

포트나이트 안에서 공개된 BTS 뮤직비디오. [사진 유튜브 캡처]

포트나이트 안에서 공개된 BTS 뮤직비디오. [사진 유튜브 캡처]

지금 ‘게임’이 콘텐트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넷플릭스의 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지난해 실적 발표회에서 “디즈니·아마존·HBO보다 더 큰 경쟁자는 포트나이트”라고 했고, 지난 9월 BTS도 ‘다이너마이트’의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를 포트나이트 안에서 최초로 공개해 화제가 됐다.

포트나이트는 북미와 유럽 시장 점유율 1위인 배틀로얄 장르의 슈팅게임으로, 이용자 수가 3억5000만명이 넘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게임이다. 넷플릭스 가입자 수가 2억명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포트나이트만 그런 건 아니다. 최근 게임 산업의 성장은 눈부시다. 게임 시장 분석 업체 뉴주(Newzoo)에 따르면, 2017년 6억5000만 달러 규모였던 글로벌 게임 시장 매출이 2019년 11억 달러 수준으로 치솟았고, 2022년엔 18억 달러로 예상된다. 매출의 80% 이상을 광고와 스폰서십이 차지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동시대 가장 핫한 콘텐트로서 게임의 경쟁력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MZ세대가 머무는 가상세계

게임은 그 자체로 즐기는 콘텐트인 동시에 사람들이 모이는 가상현실 세계라는 점에 경쟁력이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보고서(2019)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10세~17세 청소년의 40%가 매주 한 번 이상 포트나이트에 접속해 전체 여가시간의 25%를 보낸다. 영화 ‘레디플레이어 원’에서 사람들이 암울한 현실을 잊기 위해 게임 속 가상 세계인 오아시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슈팅게임이라고 총싸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친구나 다른 플레이어들과 함께 콘서트와 영화를 관람하거나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셜’ 공간도 있다.

2018년 마인크래프트가 게임 속에서 유명 EDM 페스티벌인 코첼라 페스티벌을 패러디한 ‘콜첼라 페스티벌’을, DJ 마시멜로가 포트나이트 속에서 콘서트를 여는 등 가상현실 속 라이브 이벤트는 원래 있었지만, 팬데믹으로 가속화됐다. 올해 전 세계에서 모두 중단된 록페스티벌은 마인크래프트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 6월 개최된 ‘일렉트릭 블록카루’ 페스티벌은 4일간 40개가 넘는 스테이지에 디플로 등 300명의 DJ와 아티스트가 출연했다.

트래비스 스콧 콘서트. [사진 유튜브 캡처]

트래비스 스콧 콘서트. [사진 유튜브 캡처]

포트나이트 제작사 에픽게임즈는 아예 소셜 전용인 ‘파티 로열’ 모드를 만들었다. 지난 4월 유명 래퍼 트래비스 스콧이 포트나이트 속에서 개최한 신보 이벤트는 1230만명이 동시에 접속하며 화제가 됐다. 이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 예고편, BTS의 ‘다이너마이트’ 안무 버전 뮤직비디오도 여기서 최초로 공개됐다. 지난 8월엔 포트나이트 안에 라디오방송국이 오픈해 게임 안에서 차를 타고 다니며 에드 시런 등 세계적인 가수들의 음원을 들을 수 있게 됐다. 음원 콘텐트가 게임을 스트리밍 플랫폼 삼아 둥지를 튼 것이다.

게임은 기업의 홍보마케팅 수단으로도 부상했다. 나이키 에어 조던, 미국프로풋볼(NFL) 유니폼 등이 게임 속에서 판매되고, 마블·스타워즈 등 유명 IP도 게임 속에서 프로모션을 한다. 발렌티노와 마크제이콥스 등 명품브랜드도 지난 5월 닌텐도 스위치 게임 ‘동물의 숲’에서 캐릭터 아이템으로 신상품을 공개했다.

전통 콘텐트도 게임으로 홍보

게임을 활용한 사회운동도 가능하다. 언론 자유 수호를 위해 설립된 글로벌 단체 ‘국경없는 기자회’는 지난 3월 마인크래프트 내부에 게임맵 ‘검열없는 도서관’을 구현했다. 이집트·멕시코·러시아·사우디아라비아·베트남에서 검열된 기사와 정보를 모아놓은 가상도서관이다. 정보에 제한을 받는 나라의 청년들도 게임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검열과 삭제를 무력화한 셈이다.

국내에서는 공공이 앞장섰다. 지난 5월 청와대가 어린이날 오프라인 행사가 불가능해지자 마인크래프트를 활용해 ‘청와대 맵’을 만들어 다양한 가상 액티비티 공간을 제공했다. 최근 막 내린 궁중문화축전도 게임을 활용했다. 다양한 행사 중 특히 인기가 많은 ‘어린이 궁중문화축전’을 ‘랜선’으로 진행한 것이다. 마인크래프트 안에 세밀하게 구현된 궁에 모여 게임 캐릭터로 과거 시험을 보고, 경회루 짓기 공모전을 벌인 ‘마크로 만나는 궁’은 약 2만명의 유저가 참여했다.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진입 금지인 건축물 내부까지 탐험할 수 있게 하고, 코아 TV·말이야와친구들 등 유명 스트리머가 직접 게임을 즐기는 모습을 라이브로 선보이자 25만뷰를 넘어섰다.

궁중문화축전을 주관한 한국문화재재단 진옥섭 이사장은 “코로나로 인해 다양한 루트로 가상현실 속에 머물고 있는 MZ세대들에게 전통 콘텐트를 현장감 있게 전하려면 기존의 유튜브나 SNS를 넘어서는 새롭고 흥미로운 컨택트 수단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네이버 제페토 속의 블랙핑크 아바타. [사진 네이버]

네이버 제페토 속의 블랙핑크 아바타. [사진 네이버]

게임을 넘어 독립적인 가상현실 플랫폼도 생겼다. 글로벌 AR 아바타 서비스인 네이버 제페토는 AR 카메라로 얼굴을 찍어 만든 아바타가 블랙핑크·트와이스 같은 아이돌 그룹과 만날 수 있는 가상의 놀이 공간이다. 전 세계적으로 가입자가 1억8000만 명을 돌파했다. 최근 빅히트·YG·JYP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투자를 확보해 각사가 보유한 글로벌 IP와 협업을 확대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제페토 내에서 다양한 IP를 활용해 제작한 2차 콘텐츠도 9억 건 이상이다. 제페토 제작사인 네이버제트 김대욱 대표는 “사용자들이 제페토 내에서 제공되는 다양한 IP를 활용한 2차 창작 활동에 매우 적극적”이라며 “글로벌 IP 사업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확대해 가상세계를 더욱 풍성하게 채워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드라마도 ‘소통 플랫폼’ 게임에 러브콜

게임이 젊은 세대를 모으는 도구가 되자 드라마도 게임을 끌어들였다. 넷플릭스는 2018년 오리지널 시리즈 ‘블랙미러’의 특별판 ‘밴더스내치’를 시청자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시뮬레이션 게임 형식의 드라마로 만든 것을 시작으로, 게임과의 크로스오버를 적극 시도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 5와 엑스박스 XSX에서 넷플릭스 스트리밍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1억5500만장 이상 팔린 게임 ‘어쌔신 크리드’를 비롯해 전설적 게임 ‘바이오하자드’‘드래곤즈 도그마’ 등도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중이다.

게임 블로거의 실화를 드라마로 만든 일본의 ‘빛의 아버지’(2017)도 흥미롭다. 사회 초년생인 주인공이 퇴직한 아버지에게 게임 ‘파이널판타지’를 선물하고, 정체를 숨긴 채 게임 속 캐릭터로 만나 아버지와 소통한다는 내용이다. 게임 속 가상세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 드라마는 큰 인기를 끌어 지난해 영화로도 나왔다. 아버지를 게임 세계로 끌어들이는 구도지만, 오히려 아버지로부터 조직생활의 노하우 등을 전수받아 사회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게임 콘텐트를 소재 삼아 TV를 떠난 젊은 세대를 다시 끌어들이면서, 그 자체로 신구세대 소통의 플랫폼이 됐기 때문이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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