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일본, 코로나 와중에 ‘고 투 트래블·이트’ 권하는 까닭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711호 25면

전 아사히신문 기자의 ‘일본 뚫어보기’

마스크를 쓴 일본 시민들이 지난 9월 20일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쇼핑몰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일본에선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1000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여행과 외식이 장려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스크를 쓴 일본 시민들이 지난 9월 20일 도쿄 아사쿠사에 있는 쇼핑몰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일본에선 최근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에 1000명을 넘어서고 있지만 여행과 외식이 장려되고 있다. [AP=연합뉴스]

비자 만료로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아주 어렵게 일산에 있는 집으로 다시 왔다. 겨우 비자를 받고 약 3개월 만에 한국에 입국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을 위한 2주 격리는 집에서 못 하고 시설에서 하게 됐다. 한국에 없는 사이에도 계속 집세를 냈던 집이 있는데도 1박 12만원씩 168만원을 내고 호텔에서 지내야 했다.

하루 확진 1000명 넘는데도 #여행·외식 장려 정책 무리수 #영화관도 꽉 차 한국과 대비 #일 정부 ‘위드 코로나’ 부추겨 #내년 도쿄올림픽 의식한 듯 #느슨한 방역 일상화할까 걱정

지난 4월에 격리를 했을 땐 집에서 했는데 이번엔 단기 비자이기 때문에 집에서는 안 된다고 한다. 1달밖에 비자가 안 나와서 2주 격리 후 2주 있다가 다시 한국에서 나가야 하고 일본에 가면 또다시 2주 격리를 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엔 비자가 없어도 3개월 지낼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에 들어오는 것도, 계속 있는 것도 정말 어려워졌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한국 지인들 중엔 “한국이 방역을 잘하고 있는 증거”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3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와 보니 확실히 한국은 일본보다 더 철저하게 방역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식당에 들어갈 때마다 전화번호를 쓰거나 영화관에 들어갈 때 발열 체크를 한다. 일본에 3개월 있는 동안에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30년 내 도쿄 직하 지진 가능성 70%”

일본은 방역은 제대로 안 하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많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7월 말에 일본에 돌아갔을 때는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도 있었지만 9월 이후엔 코로나 이전과 비슷할 정도로 많이 활동하는 것 같다.

10월 중순 구로사와 기요시(黒沢清) 감독 영화 ‘스파이의 아내’를 도쿄에서 봤을 땐 만석이었다. 거리두기로 좌석을 한 칸씩 띄워서 앉는 것도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전 좌석에 관객이 앉는 풍경은 오랜만에 봤다. ‘스파이의 아내’는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화제작이다.

주인공 부부 역은 아오이 유(蒼井優)와 다카하시 잇세이(高橋一生)가 맡았다. ‘731부대’에 대해 알게 된 부부가 세계에 그 실태를 고발하는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731부대는 태평양전쟁 전부터 일본 육군 소속으로 생체실험 등을 통해 생물학 무기의 연구개발을 했다고 전해지는 기관이다. 최근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전쟁범죄를 다룬 영화다.

그런데 ‘스파이의 아내’가 지금 일본에서 가장 인기 많은 영화는 아니다. 원래 일본에선 애니메이션영화의 관객이 많은 편이다.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이 지금 가장 인기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다.

10월 16일 개봉 이후 17일 만에 158억엔(약 1715억원)의 흥행 수익을 올렸고 관객수는 1189만 명을 기록했다. 벌써 역대 흥행 수익 순위(해외 작품 포함) 10위 안에 들었다고 하는데 이대로 가면 역대 1위인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감독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308억엔)을 넘을 수도 있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뒤 몇 번 극장에서 영화를 봤지만 관객수 랭킹 상위 작품인데도 관객수는 적었다. 평일 오후엔 관객이 나밖에 없었던 적도 있었다. 코로나19 확진자는 한국보다 일본이 많은데 한국 극장 관객은 코로나19 이전보다 줄어든 듯하다.

소비 진작을 위해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 투 트래블’ 로고.

소비 진작을 위해 일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 투 트래블’ 로고.

일본 신규 확진자를 보면 9월 이후도 하루에 500명을 넘는 날이 자주 있었고 11월에 들어서 다시 1000명을 넘는 날도 나왔다. 하루에 100명만 넘어도 “또 세자릿수”라고 보도되는 한국에 비하면 인구가 2배 이상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일본 확진자가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한국처럼 접촉자에 대한 검사도 철저하게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사람들이 긴장감 없이 돌아다니는 건 왜일까?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고 투 트래블(Go To Travel)’이나 ‘고 투 이트(Go To Eat)’의 영향인 듯하다.

7월에 시작한 ‘고 투 트래블’은 국내 여행을 장려하는 목적으로 숙박비를 할인해 주거나 여행지에서 쓸 수 있는 쿠폰을 주는 등 정부가 여행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많으면 여행 비용의 50%를 지원받을 수 있다. 확진자가 많은 도쿄 발착 여행은 처음엔 제외됐었지만 10월 이후엔 대상에 포함됐다. 내 주변에도 “휴가 때마다 한국에 갔었는데 이번엔 오랜만에 오키나와로 간다”라거나 “최근 몇 년은 해외 여행객이 너무 많아서 교토는 피했었는데 올해는 교토에 단풍 보러 간다”며 국내 여행을 계획 중인 사람이 많다. 싸게 갈 수 있을 때 가려고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되지만, 8월 15일 전후 오봉(お盆) 휴가 때 지방에 귀성하는 건 자제하자고 했던 분위기는 사라졌다. 짧은 기간에 이렇게 바뀐 건 정부가 밀어준다는 심리적인 부분이 큰 것 같다.

‘고 투 이트’ 사업의 안내 로고.

‘고 투 이트’ 사업의 안내 로고.

‘고 투 이트’도 마찬가지다. 지역별로 식사권을 싸게 구입할 수 있고 또 등록된 음식점에 예약해서 먹으면 다음에 쓸 수 있는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 외식을 자제했던 사람들이 포인트를 받으려고 적극적으로 외식하기 시작했다.

나는 개인적으로 방역을 위해 의료에 더 예산을 쓰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고 투 트래블’도 ‘고 투 이트’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한 번도 이용한 적이 없다. 나처럼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지만 관광업이나 음식업 관계자들을 살린 면도 적지 않아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호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는 6개월 대기 상태가 계속되면서 “조만간 잘리겠다”고 거의 포기하고 있었는데 10월부터 다시 출근하게 됐고 지금은 “고 투 이용객들이 많아 엄청 바쁘다”고 한다.

그런데 원래 성향으로 보면 일본사람이 더 신중한 편이고 한국사람은 “괜찮아” 하고 너그럽게 행동하는 이미지가 있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그것과 반대로 보이는 건 왜일까? 하나는 일본사람들은 지진이나 태풍 등 재해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고 투 트래블’ ‘고 투 이트’ 사업이 시작하면서 자주 듣게 된 말은 ‘위드(with) 코로나’다.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코로나19와 함께 사는 새로운 생활을 지향하자는 것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쓰기 시작하면서 유행하는 말이다.

지진 등 자연재해와 코로나는 달라

언제 어디서 지진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본에서는 사는 것 자체가 리스크와 함께 살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앞으로 30년 사이에 도쿄에서 수도 직하 지진이 일어날 확률은 70%라고 한다. 최악의 경우 사망자수는 2만3000명을 예상하고 있다. 그런 숫자를 들어도 대부분 사람은 계속 도쿄에 살고 있다.

지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겁먹고 살아 봤자 달라질 건 없다. 일어날 확률이 높은 것을 알면서도 안 일어날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에 대한 생각 방식도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 감염될 리스크가 있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감염되지 않을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내년 도쿄올림픽을 위해서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올림픽이 일본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직접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올림픽을 위해 행동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일본 정부가 올림픽을 추진하기 위해 여론 형성을 생각해서 ‘고 투 트래블’이나 ‘고 투 이트’를 통해 ‘위드 코로나’의 사고방식을 국민에게 심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재해와 코로나19는 사실은 다르다. 할 수 있는 방역을 제대로 안 하면서 막을 수 없는 재해처럼 받아들이게끔 하는 건 역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어느 정도 정부의 의도대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을 보면 1000명을 넘은 일본 확진자수가 일상화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成川彩) 2008~2017년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주로 문화부 기자로 활동한 후,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석사과정에 유학. 한국영화에 빠져서 한국에서 영화를 배우면서 프리랜서로 일본(아사히신문 GLOBE+ 등)의 여러 매체에 영화 관련 칼럼을 집필 중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