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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회의 시대…배경화면·카메라 각도로 권위 높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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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호 26면

도시와 건축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주목효과’라는 것이 있다. 눈으로 정보를 처리할 때 변화가 없는 정보는 지워 버리고 변화가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현상이다. 예를 들어서 호숫가 풍경 속을 새가 날아간다면 뇌는 배경이 되는 변화가 없는 풍경은 지우고 움직이는 새에만 집중한다. 변화가 없이 똑같은 풍경의 정보를 1초에 수백장씩 연산하는 것은 뇌의 낭비이기 때문이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의 70% 정도가 가려지고 남는 것은 머리카락과 눈밖에 없다. 사람을 보더라도 대부분의 모습에서 변화가 없기 때문에 마치 변화가 없는 호수 풍경처럼 기억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화상회의 ‘우리끼리’ 공감 없지만 #평등한 자리 배치·발언권 장점 #술집보다 대성당 배경, 권위 있어 #왕·회장은 높은 자리서 내려다봐 #권력이 있게 보이는 카메라 앵글 #얼짱각도와 달리 아래서 위로 찍어

인간은 얼굴을 인식할 때 측두엽을 사용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한다. 그만큼 얼굴이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다. 식당에서 마스크를 쓰고 서빙을 하는 사람은 이전과는 달리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스크를 쓰면 얼굴이 사라져서 하나의 인격체로 느껴지기보다는 배경의 일부가 되어서일 것이다.

얼굴을 보고 소통하고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은 지난 수십만 년간 갈고닦은 인간이 다른 동물을 압도한 비법이다. 그런데 얼굴의 3분의 2가량이 가려진 상태에서 만들어 가는 인간관계는 기존의 인간관계보다 느슨한 연결망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사회생활은 개인의 자유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동시에 개인의 파편화와 고립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스크, 소통 막고 개인의 파편화 불러

얼마 전의 경험이다. 전자제품 인터넷 광고영상을 찍기 위해서 8시간 동안 촬영했다. 그 자리에는 광고기획사 관계자, 헤어 메이크업팀, 작가, 촬영팀, 조명팀, 감독 등 15명가량의 사람이 모여서 일을 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출연자인 나만 마스크를 벗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촬영에 임했다. 긴 시간 함께 일을 했음에도 마치고 나서 기억에 남는 얼굴이 하나도 없었다. 회의부터 촬영까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알기 위해서는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카톡 프로필 사진을 확인해야만 한다. 마스크시대의 사회생활은 업무만 남고 인간은 사라지는 생활이 되기 쉽다. 기성세대는 이미 어느 정도 사회적 관계망이 구축된 사람들이다. 그에 비해 청년세대는 자신들만의 사회관계망을 구축하기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어려서부터 마스크를 쓰는 세대를 M세대라고 부른다. M세대가 느끼는 학교와 회사는 사뭇 다를 것이다.

최근 많이 하는 화상회의는 사내에서 일하는 관계에 변화를 가져왔다. 화상회의의 장점은 언제 어느 때나 쉽게 모일 수 있다는 것과 잡담 없이 필요한 말만 하고 로그아웃하여 회의시간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간결한 회의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기존 회의에서는 옆자리 사람과 회의 전에 흔한 안부나 드라마에 대한 잡담을 통해 인간적 유대관계를 쌓는다. 화상회의에는 이런 일상적 대화가 없다. 은밀하게 둘만 할 수 없고 모든 말은 회의 참석자 모두에게 크게 들리기 때문이다. 화상회의에서는 소수의 ‘우리끼리’라는 공감대가 안 만들어진다. 또 다른 단점은 여러 민감한 표정이나 분위기 파악이 어려워 이야기할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는 점이다.

하지만 화상회의의 큰 장점도 있다. 자리 배치의 공간구조가 주는 권력이 없어지기 때문에 회의 참여자들이 평등한 상태에서 발언권이 생긴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긴 테이블에서 좁은 쪽에 회장이 앉는다. 좁은 쪽에 우두머리가 앉게 되면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그가 하는 말을 경청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받는다.

얼마나 편하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느냐에 따라 권력의 위계가 결정 난다. 회의테이블의 좁은 변에 앉은 사람은 고개만 들어도 긴 변에 앉은 참석자의 옆모습을 볼 수 있지만, 반대로 긴 변에 앉은 사람은 좁은 변에 있는 사람을 볼 때 고개를 90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편하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더 가진다. 화상회의를 하게 되면 모든 사람이 평평한 모니터에 같은 크기의 사진으로 위계 없이 동등하게 표현된다. 모두 편하게 다른 사람의 정면 얼굴을 볼 수 있다. 화상회의에서는 실제 회의장에서처럼 나만 옆모습을 노출시키는 경우는 없다. 이는 구성원들 간의 권력의 위계를 없애 주고 이는 곧 편안한 발언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상회의에서 권력의 위계를 만드는 방법이 두 가지 있다. 배경화면과 카메라 각도다.

화상회의 삽화

화상회의 삽화

화상회의에서는 나의 배경화면을 다른 사진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때 배경화면은 나를 다르게 포장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휴대폰에 카메라가 장착되면서 나타난 현상은 공간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내가 어느 곳에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소유한 물건이 중요했다.

지금은 내가 시간을 보내는 공간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면 명품백이나 옷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나를 표현할 수 있다. 불경기에도 분위기 좋은 카페나 비싼 펜션이 변함없이 인기가 있는 이유다. 이때 사진 속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간은 나를 과시하는 수단이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과 철학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슬로건이나 그림이 프린트된 티셔츠를 입고 다니기도 한다. 티셔츠에 프린트된 글자나 그림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다. 마찬가지로 화상회의 속 나의 배경화면은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 된다. 해변가 사진을 배경화면으로 하고 있는 사람과 고시원 방을 배경화면으로 하고 있는 사람은 달라 보인다.

일반적으로 한 사람의 권력은 그 사람이 누리는 공간의 체적과 비례한다. 대성당 돔 아래 서 있는 추기경과 술집 구석에 앉아 있는 아저씨가 달라 보이는 데는 배경도 한몫한다. 따라서 화상회의를 할 때 배경화면으로 멋지고 큰 공간을 설정하는 것이 고시원을 배경화면으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나를 돋보이게 한다. 이는 내가 하는 말의 권위를 높여 주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화상회의에서 나의 권위를 높여 주는 두 번째 방법은 카메라를 아래에 두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의 유명한 뮤직비디오 ‘빗 잇(Beat It)’은 두 조폭 집단의 대결 스토리다. 클라이맥스 장면에서 키가 작은 조폭 두목은 선글라스를 끼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상대편 두목을 쳐다본다. 이 장면은 두 개의 중요한 원리를 보여준다.

랩톱카메라 높이 올리면 겸손하게 보여

첫째, 나를 숨기고 남을 훔쳐보면 권력이 커진다는 원리다. 일종의 관음증이다. 선글라스는 나의 눈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훔쳐볼 수 있게 해 준다.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시각적으로 권력의 우위를 가지게 된다.

둘째, 내려다보는 사람이 권력을 가진다는 원리다. 건축에서 권력이 있는 사람은 모두 높은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을 내려다본다. 경복궁 근정전에서 왕은 계단 위 높은 자리에서 마당에 서 있는 신하를 내려다본다. 뮤직비디오에서 나오는 키가 작은 두목은 상대방을 올려다보지 않기 위해서 고개를 뒤로 젖힌다. 그래야만 상대방을 아래로 깔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내려다보는 시점을 만들 수 있고 이는 곧 자신이 더 강하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폭 두목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뒤로 젖히고 부하들은 목을 빼고 고개를 떨구고 조심스럽게 올려다본다.

이런 특징은 침팬지나 고릴라 같은 다른 유인원에서도 나타나는 동물적 본능이다. 얼짱 각도는 카메라가 위에서 내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찍는 것이다. 그래야 턱이 갸름하고 눈이 크게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력을 만드는 카메라 각도는 반대로 아래에서 위로 올려서 찍는 것이다. 보통 책상 위에 놓인 랩톱컴퓨터에 달린 카메라로 찍으면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보며 촬영된다. 이럴 때 나의 모습은 못생겨 보이지만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시선이 된다. 의도치 않게 권력자의 거만한 표정이 된다. 겸손하게 보이고 싶다면 책을 쌓아 놓고 그 위에 랩톱컴퓨터를 올려놓고 화상회의를 할 것을 추천한다.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
하버드·MIT에서 건축 공부를 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를 익혔다. 30여 개의 국내외 건축가상을 수상했고 『어디서 살 것인가』 『공간이 만든 공간』 등 저술활동도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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