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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힘차게 달린다, 그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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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장혜수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에디터
장혜수 스포츠팀장

장혜수 스포츠팀장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은 남성만의 잔치였다. 올림픽이 여성에게 처음 문을 연 건 1900년 제2회 파리 대회다. 당시 여성 종목은 테니스 하나뿐이었다. 올림픽 육상 종목에 여성이 출전한 건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대회부터다. 남성은 100m부터 마라톤까지 달리기와 뛰기(도약), 던지기(투척) 등 세부종목이 22개였다. 반면 여성은 고작 5개였다. 여성에게 허락된 달리기 최장거리는 800m였다.

여성이 ‘올림픽의 꽃’ 마라톤에서 달리기까지는 그로부터 또 60년 가까이 걸렸다.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 대회가 여자 마라톤이 열린 첫 대회였다.

바이든과 전화 통화하는 해리스. [사진 트위터]

바이든과 전화 통화하는 해리스. [사진 트위터]

여자 마라톤 역사는 양성평등 발전의 역사다. 올림픽 마라톤을 향한 여성의 도전은 제1회 대회부터였다. 그리스 여성 스타마타 레비티(1866~?)는 남자 마라톤 경기 다음 날 같은 코스에서 혼자서 달렸다. 5시간30분 걸려 완주했고, 그 소식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알려졌다. 아쉽게도 레비티의 이후 생애는 알려진 게 없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인정한 여자 마라톤 첫 세계 최고기록은 영국의 바이올렛 피어시(1889~1972)가 1926년 세운 3시간40분22초다. 올림픽 여자 마라톤 첫 금메달리스트는 미국의 조안 베누아로, 2시간24분52초에 완주했다.

여자 마라톤 하면 보스턴 마라톤 대회를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여성 로베르타 깁은 보스턴 마라톤 출전을 목표로 2년간 훈련했다. 1966년 대회에 출전을 신청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깁은 일단 뛰기로 했다. 대회 당일 출발선 부근에 숨어 있다가 달리기 시작했고, 완주했다. 깁의 이야기를 접한 20살 여대생 캐스린 스위처는 이듬해인 1967년 대회 출전을 결심한다. 여성이란 걸 숨기려고 이름도 이니셜(KV 스위처)로 등록했다. 261번 번호표를 가슴팍에 단 스위처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달렸다. 남성 사이에서 뛰던 여성을 발견한 조크 셈플 대회 조직위원장은 스위처를 주로에서 끌어내려 했다. 이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라이프’지가 게재했고, 역사의 상징적 한 장면이 됐다. 스위처는 4시간20분에 완주했다. 보스턴 마라톤은 결국 1973년 여성에 문을 열었다.

여성의 달리기에 관해 긴 서설을 푼 건 지난주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동영상을 얘기하고 싶어서다. 일명 ‘조, 해냈어(We did it, Joe)’ 영상이다. 당선이 사실상 확정된 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 당선인의 통화 영상이다. 운동복 차림의 해리스는 달리던 중이었다. 인종(자메이카와 인도의 혼혈 흑인), 성별(여성) 모두 마이너리티인 해리스는 차별을 뚫고 힘차게 달렸다. 당선 소식을 접한 그 순간에도 달리고 있었다. 힘차게 달린다, 그녀. 힘차게 달리자, 모두.

장혜수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