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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대한항공에 아시아나 매각 추진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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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산업은행이 아시아나항공을 한진그룹에 매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국내 1위 항공사인 대한항공과 2위 항공사인 아시아나항공을 합쳐 매머드급 대형 항공사로 재탄생시킨다는 방향이다.

산은, 현산의 인수 무산 직후 구상 #한진에 유상증자 방식 수천억 투입 #아시아나 지분 30.77% 사들이게 #정부, 이르면 내주 결론 내기로

12일 정부·산업은행에 따르면 산은은 지난 9월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된 직후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관련 정부부처와 함께 한진그룹 경영진을 접촉하며 이 같은 딜의 밑그림을 그려 왔다.

인천국제공항에 양 항공사의 항공기가 서 있다.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에 양 항공사의 항공기가 서 있다. 연합뉴스

딜 구조는 산은의 자금 지원을 받은 한진그룹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검토된다. 산은이 한진그룹 지배구조 최정점에 있는 한진칼에 제3자 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수천억원을 투입하면 한진칼이 금호산업의 아시아나항공 지분 30.77%를 사들이는 방식이다.

매출 15조 매머드급 항공사 탄생 기대

정부는 이르면 다음주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산경장)를 개최해 이와 같은 방식의 인수 구조를 확정할 예정이다. 두 회사를 합치면 매출 15조원이 넘는 대형 항공사가 탄생한다. 항공기 보유 대수면에서도 글로벌 톱 클래스 반열에 오른다. 대한항공은 현재 173대, 아시아나는 86대를 보유하고 있다. 양사를 합한 259대는 에미레이트항공(267대)에 육박한다.

노딜 선언한 아시아나항공 매각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노딜 선언한 아시아나항공 매각 일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허희영 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는 “항공업은 규모의 경제이고, 글로벌 항공업계의 트렌드는 몸집 키우기”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큰 비행기를 띄우고 운항 빈도를 높이면 단가를 낮추고 탑승률을 올릴 수 있다”며 “유럽 등에서 루프트한자가 오스트리아나 스위스 항공사를 인수하는 등 대형 항공사끼리 결합하는 것은 시너지가 크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독과점이 발생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결합 승인 여부를 결정할 공정거래위원회는 결합한 회사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으면 경쟁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서 4월 공정위가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인수를 승인했을 때의 논리처럼 아시아나항공이 기업결합 외에는 회생할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부 관계자는 “산업은행에서 이런 방안을 포함해 여러 아이디어를 만들어 와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며 “다만 매각 대상자나 딜 구조 등이 확정된 것은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딜이 이대로 성사되면 산업은행은 KCGI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 이어 한진칼의 3대 주주로 올라서게 될 가능성이 크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을 통해 2조4000억원을 투입하며 마지못해 아시아항공을 끌어안고 있는 산은으로선 ‘애물단지’를 민간에 떠넘기면서 동시에 항공업 구조조정이라는 명분까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KCGI-조현아 연합 등에 한진칼 지분의 거의 과반(45.23%)을 내줘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웠던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도 3자 배정 유상증자로 KCGI 측 지분율 희석 효과를 볼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한진칼 경영권 다투는 KCGI 반발이 변수

금융투자업계에선 이번 딜에 단순 항공업 구조조정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고 평가한다. 국책은행인 산은이 사실상 KCGI와 조원태 회장 간 경영권 분쟁에 뛰어들었다는 얘기다. 2018년부터 그레이스홀딩스 등 사모펀드를 통해 한진칼과 대한항공 지분을 꾸준히 매집해 오던 KCGI 입장에선 산은의 ‘참전’이 달가울 리 없는 상황이다.

KCGI 사정을 잘 아는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한진그룹 기존 경영진이 이번 딜 관련 내용에 대해 사전에 KCGI에 단 한마디도 설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며 “한진칼은 제3자 배정 유상증자의 불가피성이 인정될 정도로 부채비율이 높은 상황도 아니고, KCGI 등 기존 주주의 증자 여력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KCGI가 가처분신청 등을 통해 법적으로 이 딜을 문제 삼는다면 산업은행과 한진그룹 측 생각대로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정용환·곽재민·임성빈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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