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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1100선 무너지나?…수출 비상등 다시 켜졌다

중앙일보

입력

가파른 원화값 상승세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전날 2018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1110원까지 상승했던 원화값은 12일 약 5원 하락해 일단 흐름을 끊었다. 그러나 원화가치가 약 한 달 새 달러당 40원 가까이 오르면서 수출물가가 큰 폭으로 내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오랜만에 회복 조짐을 보이던 수출 전선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이날 원달러환율은 4.8원 오른 1114.8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뉴스1

1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이날 원달러환율은 4.8원 오른 1114.8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뉴스1

1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달러당 4.8원 내린(환율은 상승) 1114.8원에 마감했다. 전날 장중 한때 1109.3원까지 떨어지며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지만 이날은 장 초반부터 하락에 무게가 실렸다. 백석현 신한은행 연구원은 “조 바이든 후보의 당선과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 등으로 강한 진전이 있고 나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근 상승 폭을 되돌리려는 일종의 반작용이 나타났다는 의미다. 미국과 유럽에서 코로나19 재확산 우려가 다시 부각된 것도 달러 강세에 힘을 실었다.

반등은 했지만, 시장에선 당분간 달러 약세 기조가 이어지리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일단 바이든의 당선으로 ‘달러 풀기’ 즉, 강도 높은 경기 부양책을 시행할 가능성이 커졌다. 트럼프 때와 달리 예측 가능한 무역 질서 회복에 나설 것이란 기대도 달러 약세에 힘을 보탠다. 강재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달러 가치는 미국 경상수지와 재정수지 적자가 확대되면 시차를 두고 약세를 보이다 적자가 줄면 강세로 전환하는 모습을 보였다”며 “이미 올해 경기부양책으로 적자가 많이 늘어난 데다 내년에도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추세적으로 달러는 하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파른 달러 약세... 1000원대로 가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가파른 달러 약세... 1000원대로 가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단기적으로는 미국 대선 최종 결과와 백신 효과 등을 관측하며 횡보할 가능성도 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국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을 점할 가능성이 커서 향후 새로운 행정부의 시장 영향력을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며 “백신의 빠른 보급은 코로나19로 인한 미국 경기 둔화 우려를 줄이고, 통화완화 강도를 낮춘다는 점에서 달러 강세 요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에 증시는 뜨겁다. 외국인 입장에선 투자 환경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원화값이 약 40원 상승한 지난달 8일부터 이달 11일까지 코스피는 3.92% 상승했다. 하지만 마냥 반길 수 없다. 수출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3분기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성장률(1.9%)을 기록한 건 코로나19 여파로 급격히 줄었던 수출이 회복한 덕분이다. 이런 흐름은 4분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10월 코로나19 확산 이후 처음으로 일평균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증가(5.6%)로 돌아섰고, 이달 들어서도 1~10일 수출액이 20.1% 증가했다.

수출 늘어도 단가 하락하면 효과 희석  

그런데 급격한 원화 강세는 이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실제로 원화값이 빠르게 상승하면서 10월 수출물가가 큰 폭으로 내렸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물가지수는 92.51(2015=100)로 전달보다 2.6% 하락했다. 2018년 12월(-2.8%)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내렸다. 전년 동월 대비로는 6.4% 내리며 17개월째 하락세다.

수출물가지수는 수출 계약가격을 원화로 환산해 작성한 지표다. 이 지수가 하락했다는 건 한국 기업이 해외에 수출하는 품목의 원화 환산 가격이 내려갔다는 의미다. 한은 관계자는 “원·달러 환율 하락이 10월 수출물가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이라며 “이달에도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원화 강세에 수출 물가는 대폭 하락.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원화 강세에 수출 물가는 대폭 하락.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원화 강세 땐 같은 양을 수출해도 원화 환산 수익이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기업 채산성에 나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수출품 가격을 올리면 수출 물량이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 이런 환율 영향은 중소기업이 더 크게 받는다. 대기업은 환율 변동에 따르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환 헤지 기법을 동원하지만, 중소기업은 유동성 문제 때문에 최대한 빨리 원화로 바꿔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달러 약세가 장기화하면 수출 회복 효과가 더욱 희석될 여지가 있다. 이날 골드만삭스는 12개월 뒤(내년 11월) 원화가치가 달러당 1070원까지 상승할 것이란 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심상렬 광운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환율 효과는 어느 정도 시차를 두고 나타나는데 달러 약세가 길어지면 코로나19를 딛고 반등해야 할 내년에 더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며 “바이든 정부 출범으로 완화적 통화정책이 이어질 것으로 본다면 중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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