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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에게 마케팅 배운다" 패션업계 관계자들이 넷플릭스에 빠져드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주인공 에밀리 역의 릴리 콜린스. 사진 넷플릭스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주인공 에밀리 역의 릴리 콜린스. 사진 넷플릭스

"아직도 안 봤어?"
며칠 전 있었던 패션업계 관계자들과의 모임 자리에서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를 두고 나온 말이다. 최근 패션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이 드라마가 화제다. 미국인 에밀리가 프랑스 파리의 홍보마케팅 회사에 1년간 파견을 가 벌어지는 이야기로, 드라마·영화 '섹스 앤 더 시티',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이후 오랜만에 나온 패션 드라마라는 사실에 흥미를 끌었다.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아 넷플릭스의 영상 콘텐츠 순위를 보여주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지난 10월 초 한국을 포함해 세계 190개국에 공개된 뒤 40일이 지난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영상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내에선 '스타트업' '사생활' '퀸스 갬빗'에 이어 드라마 순위 4위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넷플릭스 내 랭킹. 11월 10일 2위를 차지했다. 자료 플릭스패트롤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넷플릭스 내 랭킹. 11월 10일 2위를 차지했다. 자료 플릭스패트롤

국내에선 현재 드라마 부분 4위다. 자료 플릭스패트롤

국내에선 현재 드라마 부분 4위다. 자료 플릭스패트롤

드라마에서 주인공 에밀리가 보여주는 화려한 패션도 볼거리지만, 유독 패션업계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이와 함께 지금 패션업계의 이슈와 톡톡 튀는 마케팅 기법들이 줄줄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본 관계자들은 "패션 마케터라면 눈을 뗄 수 없다" "다 적어놨다가 우리 브랜드 마케팅할 때 쓰면 좋겠다"는 평을 내놓을 정도다. 이들이 '에밀리, 파리에 가다'에 빠져드는 관심 요인을 분석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인기 요인 분석

에펠탑이 보이는 레스토랑에 서 있는 에밀리. SNS에선 에밀리가 갔던 장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진 넷플릭스

에펠탑이 보이는 레스토랑에 서 있는 에밀리. SNS에선 에밀리가 갔던 장소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생겼다. 사진 넷플릭스

◇패피의 '파리 살이' 대리 경험=이 드라마는 패션 드라마의 역사를 시작한 미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제작자인 대런 스타가 제작하고,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스타덤에 오른 패션 스타일리스트 패트리샤 필드가 의상을 맡았다. 그만큼 샤넬·디올·구찌·끌로에 등 명품으로 무장한 화려한 패션을 보여주는데, 패션피플들이 드라마에 빠지는 이유는 사실 따로 있다. 바로 '패션의 도시'인 파리를 대리 경험한다는 것. 이름을 밝히기 꺼린 대기업 소속의 한 패션 디자이너는 "한 해에만 세네 차례씩 파리에 다녀오곤 했는데, 코로나19로 길이 막히니 파리 곳곳의 모습을 살펴보고 그곳만이 가진 낭만을 즐기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내 경험이 떠올라 흐뭇해진다"고 말했다. 홍보회사를 운영하는 박지은 대표도 "30대에 뉴욕에 6개월을 살았다. 이후 기회가 되면 파리에도 1달 정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는데, 에밀리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지금 사는 곳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살아보는 '한달살이'를 원하는 요즘 사람들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는 얘기다.

SNS마케터면서 인플루언서로 거듭난 에밀리가 한 화장품 브랜드 회사 임원에게 SNS 마케팅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SNS마케터면서 인플루언서로 거듭난 에밀리가 한 화장품 브랜드 회사 임원에게 SNS 마케팅을 제안하고 있다. 사진 넷플릭스

◇48명으로 시작해 인플루언서가 되는 SNS 마케팅 기법=드라마는 최근 몇 년간 패션업계에서 집중하고 있는 SNS 마케팅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에밀리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미비했던 인스타그램 계정 팔로워 수와 파리 생활을 하면서 올리는 피드에 따라 쭉쭉 올라가는 팔로워 수 변화를 다이내믹하게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서다. 최현진 LF 홍보실 대리는 "집 앞 빵집부터 프랑스어에 담긴 성차별에 대한 불만 등 자신의 생활과 생각을 SNS에 여과 없이 드러내면서도 유쾌하고 발랄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에밀리가 SNS 마케팅용으로 활용하는 톡톡 튀는 아이디어도 볼거리다. 침대 브랜드의 신제품을 갤러리 같은 폐쇄된 공간이 아닌 파리의 주택가 골목에 설치해 사람들이 직접 누워보는 등 쉽게 경험하거나, 젊은 디자이너에게 망신을 당한 노익장 디자이너에게 오히려 그들과 협업한 후드 티셔츠를 만들라는 등 대중이 호응하고 자발적으로 자신의 SNS에 사진을 올려 전파하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누드로 향수 광고를 찍는 여성 모델과 함께있는 에밀리. 사진 넷플릭스

누드로 향수 광고를 찍는 여성 모델과 함께있는 에밀리. 사진 넷플릭스

◇여성 성 상품화에 대한 비판=최근 패션업계를 이끄는 큰 트렌드 중 하나는 성을 구분하지 않는 '젠더리스'다. 그런데도 여전히 프랑스 패션·향수업계에 남아있는 여성의 성 상품화에 대해 에밀리는 거침없이 꼬집는다. 그는 여성 모델이 옷을 벗은 상태로 거리를 걷는 광고를 보고 향수 브랜드 오너에게 "이건 섹시한 게 아니라 섹시스트(sexist·성차별주의자)"라고 말한다. 이를 본 패션업계 관계자들은 "유럽의 뿌리 깊은 성 상품화를 반대하는 당찬 모습이 통쾌하다"고 입을 모았다. 자신의 패션 브랜드를 운영하는 김지선 디자이너는 "극에서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가 '질은 남성형이 아니다'(※프랑스어로 여성의 질이 남성형 명사인 걸 보고 화가 나서 쓴 말)라고 쓴 에밀리의 인스타 피드를 자신의 트위터에 올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며 "당연시해왔던 성 상품화에 맞서는 모습과 이것이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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