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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현상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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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윤석열

‘○○○ 현상’. 장외의 해결자를 갈구하곤 하는 건 한국민주주의적 특성이었다. 한때 ‘노무현’이었고 한때 ‘이회창’ ‘안철수’ 또는 ‘정몽준’이기도 했다.

검찰총장이 대선주자 지지도 1위 #문 정부 불만 여론에 반사이익 #대안인물 못 내세운 야당도 한몫 #추미애 “총장 사퇴하고 정치하라”

11일 여의도는 거기에 ‘윤석열’을 대입하기 시작했다. 여야를 아울러 ‘차기’를 묻는 질문에 윤 총장이 1위를 차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여론조사업체인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7~9일 18세 이상 유권자 1022명에게 “여야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여권에선 ‘이낙연·이재명·심상정’, 야권에선 ‘윤석열·홍준표·안철수’ 등 6명을 제시했다. 윤 총장을 지지한다는 비율이 24.7%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22.2%) 대표와 이재명(18.4%) 경기지사를 앞섰다. 오차 범위 안팎을 넘나드는 결과지만 차기 지지도 조사에서 윤 총장이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아가 현직 검찰총장이 지지율 1위에 오른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다. (※오차 범위 95% 신뢰 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윤 총장은 여권의 핵심 지지층이랄 수 있는 30·40대, 호남 그리고 이념적으로 진보층에서만 뒤졌을 뿐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50.9%) 중 절반(46.3%)이 윤 총장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연령대별론 60대 이상(31.8%), 18~29세(25.5%)에서, 지역별론 충청(33.8%)과 PK(부산·울산·경남, 30.4%), 정당별론 국민의힘(62%)과 무당층(23.7%), 이념적으론 보수(34.7%)와 중도(27.3%)에서 강세였다. 유권자들이 현 정권에 맞설 인사로 윤 총장을 인식한다는 의미다.

현 정권의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이끌었던, 현 정권에서 승승장구한 검사로선 아이러니한 행로다. ‘살아 있는 권력’에 손을 대면서 사실상 여권의 융단폭격이 이어지고 윤 총장 스스로 “식물총장”이라 할 정도로 내몰리면서 벌어진 일이다.

20대·무당층 윤석열 지지도 높아, 호남 뺀 대부분 지역 강세

“눈만 뜨면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이 대립한다”(홍준표 무소속 의원)고 할 정도로 오랫동안 이어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라인은 윤 총장을 ‘차기로서의 정치인’으로 올려놓았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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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번 조사가 윤 총장 지지가 더 나온, 좀 튄 조사일 수 있다”고 말한다.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와 3강 구도이지, 윤 총장이 앞서 나간다고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나 윤 총장이 ‘변수’가 됐다는 데 공감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전문가는 “지금까지 여권은 상대가 없는 게임을 했는데 현실에서 상대가 생겼다”고 말했다.

윤 총장이 이렇게까지 끌어올려진 것에 대해선 “윤석열 대망론을 키워준 쪽은 문재인 정권이고, 날개를 달아준 쪽은 지리멸렬한 야권”(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이란 게 대체적 견해다. “이게 다 추미애 덕”(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대안 인물을 내세우지 못하는 야권의 무력함을 적나라하게 보여드려 송구하다”(김기현 국민의힘 의원)란 반응이 나오는 까닭이다.

이제 정국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일방독주하던 국면에서 상대를 의식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바뀌었다. 문 대통령과 여당은 내년 7월까지인 윤 총장의 임기를 보장할 것이냐, 보장하지 않는다면 윤 총장을 어떻게 내보낼 것이냐에 대한 고도의 전략적 계산을 해야 하게 됐다. 법무부나 서울중앙지검이 똑 떨어지는 사유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오히려 정권에 부담일 수 있다. 여권에선 "충격적 결과”라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핵심 당직자는 "갑자기 (윤석열) 지지율이 왜 이렇게 폭등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얘기가 많지만, 하여튼 민주당에 악재인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날도 추 장관은 이날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윤 총장에 대해 “대권 후보 1위로 등극했으니 차라리 사퇴하고 정치를 하라”고 촉구했다. 노웅래 민주당 의원도 “정의의 탈을 쓰고 검찰이라는 칼을 휘둘러 자기 정치를 한 결과”라고 날을 세웠다. 이에 비해 정세균 총리는 이날 취임 300일 기자간담회에서 “윤 총장은 자숙하고 추 장관은 직무 수행 과정에서 더 점잖고 냉정하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야권도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과거 민주당은 안철수 현상을 끌어안으며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이어진 보수 정권을 끝낼 불씨를 살려갔다. 현재로선 지금의 국민의힘이 더 폐쇄적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내부에선 “당 소속 인사가 아닌 윤 총장이 야권 대표주자로 떠오른 것이 자칫 당의 구심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영남권 등 국민의힘 주변에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수사한 윤 총장에 대한 반감도 있다.

권호·현일훈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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