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 '독박 육아' 주부 "처음으로 죽고싶단 생각 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0.11.12 00:02

업데이트 2020.11.12 10:14

지면보기

종합 10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적 타격과 우울감 호소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욱 심각하다. 여성이 실직 등 위험에 처할 확률과 ‘코로나 블루’를 겪을 가능성이 더욱 크다는 이야기다.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하여 (35)
여성, 남자들보다 감정의 기복 심해
극단적 선택 시도 1년새 15% 급증
5명 중 1명은 코로나에 직간접 영향
극단적 선택 막을 대응책 서둘러야

홍진표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코로나19 같은 국가적 재난이 발생했을 때 남녀의 대처 방식이 다르다”며 “호르몬의 특성상 여성의 감정 기복이 더 심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특히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서 극단적 선택 충동이 남성의 3~4배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자살 시도자는 여성이 훨씬 많다. 보건복지부가 1~8월 전국 65개 응급실에 실려온 자살 시도자를 분석했더니 여성이 9355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 늘었다. 반면에 남성은 5735명으로 1% 증가하는 데 그쳤다. 자살 시도 원인을 분석한 결과 실제 코로나19의 영향이 있던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4~8월 자살 시도자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19.7%가 코로나19의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받았다고 응답했다.

유엔 “여성들이 감염병에 더 취약”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산하 마음건강전화 상담 건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서울시 자살예방센터 산하 마음건강전화 상담 건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관련기사

서울시 자살예방센터가 운영하는 마음건강전화(1577-0199)에도 5월부터 상담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 5월 3800건이던 상담 전화가 올해 5월 5000건을 넘기더니 9월엔 5800건으로 증가했다. 여성의 상담이 남성의 2배에 달한다. 유엔(UN·국제연합)도 최근 코로나19 위협의 하나로 여성이 감염병 같은 재난에 더 취약한 점을 꼽았다. 가중되는 양육부담과 가정폭력 증가, 경제활동 타격 등을 그 이유로 들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녀가 학교에 가지 않고 남편이 재택근무하는 가정이 늘면서 30~40대 주부의 육아·가사 노동 부담이 커졌다. 그 결과 마음건강전화를 노크하는 여성도 크게 늘었다. 전업주부 박희정(38·가명)씨는 코로나19가 터진 3월부터 초등학교 1학년 딸의 개학이 미뤄지면서 ‘독박 육아’가 시작됐다. 남편은 지방에 근무 중이라 주말에만 집에 왔다. 코로나19 불안감이 커 병원에 가는 것 외에는 거의 외출도 하지 않았다. 남편과 육아 문제로 불화가 쌓였다. 박씨는 반년 가까이 아이를 돌보다 고립감이 깊어졌고, 불면증과 역류성식도염이 생겼다. 박씨는 자살예방센터 상담사에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연령별 자살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연령별 자살률.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국은 예전부터 노인과 40·50대 남성의 자살률이 높았다. 그런데 최근 5년간 노인 자살은 크게 줄고 있고, 10·20·30대와 여성의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연령별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명)은 2015년 70대가 62.5명이었는데 2019년에는 46.2명으로 줄었다. 50대도 34.3명에서 33.3명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10대는 4.2명→5.9명, 20대는 16.4명→19.2명으로 각각 올라갔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은 “한국의 자살 취약계층은 빈곤한 70대 이상 노인과 중년 가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최근 들어 젊은층 자살이 급속히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노후를 대비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정부의 노인 자살예방 정책이 효과를 본 반면, 젊은 세대는 여느 때보다 경제성장률은 낮고 좋은 일자리가 줄어든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고 설명했다.

여성 유명인 따라하는 ‘베르테르 효과’

연도별 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연도별 사망자 수.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백 센터장은 특히 최근 3년간 여성 자살률 증가의 원인 중 하나로 유명인의 자살을 따라하는 ‘베르테르 효과’(모방 자살)가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해 설리·구하라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후 젊은 층 여성의 자살이 크게 늘었다. 2019년 20·30대 여성 자살률은 전년보다 각각 25.5%, 9.3% 증가했다. 백 센터장은 “설리의 경우 ‘노브라’ 생활 등 자신만의 주체적 목소리를 냈는데 사회적으로 많은 공격을 받았다. 설리 죽음 이후 젊은 여성들이 한국 사회의 변화가 더딘 점을 한탄하는 상담이 많았다”고 회상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로 인해 젊은층과 여성 자살이 늘어나는 추세가 심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윤호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본부장은 “자살 행동은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일어난다”며 “현재 젊은 세대의 박탈감이 큰 상황에서 코로나19가 대인관계를 줄이고 경제적인 타격을 안겨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의 자살예방 정책도 젊은층에 대해서는 소홀한 측면이 있다”며 “코로나19로 인해 취약해질 수 있는 고위험군을 세분화하고 그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는 2018년과 2019년에 이어 ‘생명, 그 소중함을 위해’ 2020년 기획시리즈를 연재한다. 벼랑 끝에 몰린 자살 고위험군의 실태, 코로나19가 불러온 자살 위험, 정부의 예방 정책의 현주소와 문제점, 제도 개선 대책 등을 다룰 예정이다.

백민정·황수연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중앙일보·안실련·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공동기획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