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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0년째 아버지 침대에 깔아드린 삼베 이불의 비밀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33·끝) 

수년간 바라던 고향 여행을 다녀오신 아버지에게 불청객이 찾아왔다. 피로로 인한 몸살도 독감도 아닌 극심한 가려움증. 여행을 함께 한 언니도, 같이 살고 같은 음식을 먹는 나도 괜찮은데 유독 아버지만 가려웠다. 주말 지나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대뜸 물으신다.

“산에 다녀오셨어요?”

할머니 산소에 가셨을 때 무언가에 물리신 듯했다. 아버지는 산소에 꽤 오래 머무르셨고, 어머니 품에 안긴 듯 풀 위에 한참 앉아계셨다고 한다. 아마 그때 벌레가 바지 속으로 침입해 온몸을 신나게 휘젓고 다닌 모양이다. 아버지는 독한 약을 바르고 먹고 며칠 더 고생하셨다.

가려움증이 사라진 어느 날 아침, 모처럼 푹 자고 일어난 아버지가 한 말씀 하셨다.

“병이 아니라 벌이다.”

‘테스형’을 닮은 선문답에 영문 몰라 바라보니, 설명인즉슨 차디찬 바닷속을 누비며 물질(할머니는 해녀였다)을 해서 고생 고생해 키운 아들이 산소에도 안 찾아오니 얼마나 괘씸했겠느냐며, 이번 가려움증은 할머니가 주신 벌이라는 말씀이다.

뉘우침과 같은 말씀에 바로 앞에서 고개 끄덕일 순 없었지만, 나도 비슷하게 깊은 곳이 찔렸다. 코로나19를 핑계로 엄마 모신 곳에 1년째 못 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 고향 보길도처럼 먼 곳도 아닌데, 교회에서 진행해 오던 추모예배가 중단되었다는 이유로 봄, 가을 벌써 두 번이나 그냥 넘겼다. 다행히 언니가 이번에 아버지 모시고 시골 다녀오는 길에 가족 대표로 다녀와 그것으로 죄책감을 겨우 면하는 중이었다.

60년 역사가 스며있는 삼베이불. [사진 푸르미]

60년 역사가 스며있는 삼베이불. [사진 푸르미]

아버지는 꿈속에서 그리운 이들을 만나신다. 할머니가 그렇고 어머니가 그렇다. 아침에 일어나 내게 하시는 말씀 대부분은 지난밤 꿈 이야기다. 지난여름 어느 날엔 시원하게 주무시라고 삼베이불을 침대에 깔아드렸더니, 엄마를 꿈에서 만나셨다 했다. 나에게 “이 삼베 이불이 뭔지 너는 알고 여기에 깔았니?” 물으시더니 걷어서 잘 보관하라 하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삼베는 무려 60년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이 입었던 수의였다 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에 대해서는 말씀을 잘 안 하신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가족을 전혀 돌보지 않았고 할머니가 온전히 물질해 키우셨기 때문인 듯하다. 목포 형님댁에서 눈칫밥 먹으며 고등학교 다닐 때 할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치료차 목포에 오셨고,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업고 병원에 다니셨는데,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 몸을 접하셨다 한다. 그 전까지는 머리 쓰다듬어 주셨던 적도, 밤에 잠을 함께 잔 적도 없었단다. 돌아가시기 전 몇 개월간 업고 다닌 그 기억이 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이라 들었다.

다시 삼베이불로 돌아가면,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는 그것을 자신이 죽었을 때 또 쓰라고 엄마에게 남기셨다. 엄마는 또 무슨 연유에서인지 할머니 상을 치른 뒤에도 그것을 태우지 않고 서울로 가져와 이불로 만들어 간직해 오셨다.

나는 그런 역사는 까맣게 모른 채 질 좋은 삼베이불이 있기에 시원하겠다 싶어 매년 여름이면 아버지 침대에 깔아드렸고, 10년이 지난 지금에야 아버지가 그 비밀을 말씀해 주신 것이다. 그간 아버지가 꿈에서 엄마를 만난 것이 이 삼베이불 덕분인가 싶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려움증이 발발되고 열흘쯤 지났을까? 아버지가 모처럼 환한 얼굴로 웃으며 말씀하셨다.

“이제 용서받았다. 착하게 살아야지.”
“또 꿈에 할머니 만나셨어요?”
“그래도 아직 흔적은 있다. 할머니가 잊지 말라는 모양이다.”

가려움은 사라졌지만 흔적은 남은 아버지의 발. [사진 푸르미]

가려움은 사라졌지만 흔적은 남은 아버지의 발. [사진 푸르미]

사무실에 출근해 분주하게 일하던 중 뜻밖의 메시지를 받았다. 항공사에서 보낸 제주도행 비행기 예약 문자였다. 올해 말이면 마일리지가 사라진다는 말에 아무 날짜나 예약해 놓고 까맣게 잊고 있었다. 출발일은 바로 내일! 첫 비행기로 출발해 마지막 비행기로 돌아오는 하루 일정이라 급히 휴가를 냈다. 아버지는 그러잖아도 제주도 사는 조카 집에 가보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며 흔쾌히 함께 다녀오자 하셨다.

제주도행 비행기 예약 문자.

제주도행 비행기 예약 문자.

비록 코로나19 때문에 음료수 한 잔도 서비스받지 못했지만 처음 타보는 비즈니스 좌석을 신기해하셨고, 말썽 많던 조카가 정원이 멋진 집을 잘 가꾸고 사는 것을 보고 그렇게 행복해하실 수 없었다. 마치 내 정원이라도 되는 듯 구석구석 다니며 감탄하시느라 제주도 관광은 뒷전이었다.

정원 속 풍경이 된 아버지. [사진 푸르미]

정원 속 풍경이 된 아버지. [사진 푸르미]

지난 5월 갑작스러운 뇌졸중 발병 후 6개월여,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쉼 없이 반복되었다. 아찔한 일이 연이어 닥치는 동안 우리 가족은 위기를 이겨내고자 지혜를 모았고 그저 살아내기에 바빠 표현 못 했던 속마음도 표현하게 되었다. 이달 말 폐암 양성자 치료 경과에 대한 검사가 예정되어 있지만,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기에 우리 마음은 평온하다.

아버지는 지난 여름 크루즈 열차 여행부터 보길도, 그리고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틈틈이 다녀온 여행이 좋으셨는지 사진을 모두 뽑아 달라 하시곤 직접 설명을 붙여가며 앨범을 만드셨다. 그리고 바삐 출근하는 내게 ‘여한이 없다’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으니 예쁘게 만들어 인쇄해 오라 지시까지 하셨다. “앞으로도 좋은 일,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여한이 없어요?”라고 이의를 제기하긴 했지만, ‘여한 없다’는 말의 의미가 무겁게 다가왔다.

아버지 생각과 마음을 내가 다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를 대단히 많이 이루어서도, 바랄 것 없이 다 가져서도 아닐 것이다. 만족의 수위와 크기를 스스로 정했을 뿐. 이제 더 이상 큰 욕심도 더한 바람도 갖지 않겠다는 마지막 결심 같아 따뜻하면서도 헛헛했다.

‘여한이 없다’는 말, 나도 아버지 나이쯤 담담하게 할 수 있을까?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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