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억원 '즉시연금 폭탄' 터지나…법원 "미지급금 전액 지급"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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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연금 미지급금 반환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보험 소비자 승소 판결이 나왔다. 서울동부지방법원은 10일 미래에셋생명에 연금 미지급액과 지연이자를 합친 약 200만원을 보험가입자인 원고 2인에게 각각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보험사가 연금월액 산출법을 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는 게 판결의 골자다.

미래에셋생명 빌딩. 중앙포토

미래에셋생명 빌딩. 중앙포토

“설명 충분하지 않아…차감 금액 돌려줘야”

금융소비자연맹과 함께 소송을 제기한 원고 2인은 지난 2012년 4월 미래에셋생명 즉시연금보험(10년만기환급형)에 가입해 각각 보험료 4900만원을 일시납하고 매달 연금 약 17만원을 수령해왔다. 만기환급형 즉시연금은 만기에 보험료 원금 전액을 그대로 돌려주는 상품이다. 보험료로 4900만원을 냈다면 10년 후 4900만원을 고스란히 돌려받을 수 있다. 4900만원을 굴려서 나온 이자는 연금처럼 다달이 받는다.

문제는 ‘연금액=순보험료에 공시이율을 적용한 금액’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원금(보험료)을 만기에 그대로 돌려주는 상품이지만, 실제로는 보험가입자가 낸 4900만원을 10년 동안 묵혔다가 고스란히 돌려주는 것이 아니고, 돈을 운용해주는 대가로 사업비 등을 차감한다. 그렇게 발생한 원금 손실을 메꾸기 위해 매달 가입자에게 주는 이자(연금)의 일부를 빼서 만기에 돌려줄 돈으로 적립하는 것이 이 상품의 구조다.

이를 두고 미래에셋생명은 보험 약관에 “매달 연금을 지급함에 있어 만기환급금을 고려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고 원고들에게 연금수령예시표를 보여주며 금액을 설명했기 때문에 연금액 산정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만기환급금이 없는 종신형 즉시연금보다 연금액이 적은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보험가입자들은 “연금 중 일부가 만기환급금 재원 마련을 위해 따로 적립된다는 설명은 없었다”며 순보험료(납입보험료-사업비·위험보험료)에 공시이율을 적용한 금액을 모두 연금으로 지급하라고 맞섰다.

법원은 보험 소비자의 손을 들어줬다. ‘만기환급금을 고려한’이라는 약관 문구가 연금 산정방식을 충분히 설명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판결 이유다. 법원은 보험사가 연금에서 차감했던 미지급금 전액과 지연이자를 모두 소비자에게 지급하고, 소송비용도 보험사가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삼성·한화 줄소송…미래에셋 패소 영향 받나

앞서 올해 9월 같은 사안을 다룬 수원지법의 판결에서는 원고인 보험가입자들이 농협생명에 패소했다. 다만 농협생명은 다른 생보사와 달리 만기환급금 적립을 위해 연금액을 차감한다는 설명이 약관에 담겨있었다. 약관 문구의 차이 덕분에 판결이 달라진 경우다.

삼성생명 사옥.

삼성생명 사옥.

삼성생명도 즉시연금 미지급금 반환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소송은 내년 상반기에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한다. 이 사건 역시 매월 지급되는 연금에서 만기환급금 재원을 공제한다는 설명이 충분히 이뤄졌는지 아닌지가 쟁점이다.

금감원이 2018년에 파악한 즉시연금 미지급 분쟁 규모는 16만명에 8000억원이다. 이 가운데 삼성생명이 5만5000명에 4300억원으로 가장 많다. 한화생명과 교보생명은 각각 850억원과 700억원의 규모다. 당시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는 일부 보험사에 즉시연금 과소지급분을 가입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했지만,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등 일부 보험사들이 이를 거부하면서 줄소송으로 이어졌다.

가장 먼저 패소 판결을 받아 든 미래에셋생명은 항소 여부에 대해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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