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서소문 포럼

바이든의 미국, 문재인의 한국

중앙일보

입력 2020.11.11 00:34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창규 경제 디렉터

김창규 경제 디렉터

# 2017년 5월. 한국 대통령 선거에서 문재인 당선인의 득표율은 41.08%였다. 2위 후보를 557만951표 차로 따돌려 역대 최다 표차로 당선됐다. 당시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에 실망한 많은 사람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와 ‘이게 나라냐’라고 외쳤다. 문재인 선거 캠프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국민 10명 중 4명만이 그에게 투표했지만 새 대통령에 거는 기대는 컸다. 여론은 새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밀었다. 갤럽이 조사한 역대 대통령 첫 직무수행 평가 중 1위였다. 긍정 평가가 84%로 김영삼(71%), 김대중(71%), 노무현(60%) 전 대통령을 멀찌감치 앞섰다. 긍정 평가한 주요 이유가 소통 잘함(국민 공감 노력)과 인사였다. 국회의원 수는 여당이 과반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다수당이었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얻은 새 대통령이 한국을 한 단계 끌어올릴 좋은 기회였다. 다만 경제가 불안요소였다. 2017년 2분기 경제성장률이 0.7%로 횡보를 했고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21%대에 달했다.

증세, 노조 강화 등 정책 비슷
미국 재계 “환영” 한국은 “불안”
예측성 있는 정책이 판가름

# 2020년 11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인수위원회 사이트 명칭은 ‘Build Back Better(더 나은 재건)’다. 경제정책의 구호에서 따왔다. 미국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역전극을 벌이며 현직 대통령을 꺾었지만 바이든 당선인의 앞에는 가시밭길이 놓여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의 ‘분열의 정치’ 탓에 온 국민이 반으로 나뉘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재확산하며 확진자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경제는 고꾸라졌고 실업률은 대공황 때보다 더 높다. 바이든 정책의 첫 번째 우선순위가 코로나19 확산 막기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코로나19를 통제할 수 있어야 양질의 일자리 창출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여기에 미국 상원은 공화당이 다수당이 될 가능성이 크다. 공화당은 주요 정책마다 바이든 당선인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상황으로 보면 문재인 대통령은 ‘꽃길’을 걸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3년6개월이 지난 지금 한국은 어떤가. 네편, 내편 편가르기에 온 국민이 분열돼 있다.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성장과 1%대 성장을 오가고 있다.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은 이제 25~26%에 달한다. 문 대통령 취임 때는 청년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사실상 일자리가 없었지만 지금은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일자리 없이 방황한다는 뜻이다.

서소문 포럼 11/11

서소문 포럼 11/11

공급 없이 규제만 한 탓에 집값은 다락같이 올랐다. 정부와 여당이 새로운 임대차법을 도입한 뒤엔 전셋값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돈 풀기 이외에는 획기적 규제 완화 등과 같은 제도적 보완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어려움 극복의 최전선에 서야 할 기업은 오히려 여당의 규제법안 탓에 숨죽이고 있다. 한국 경제가 집단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대통령 선거 때 득표율과 비슷한 40%대로 떨어졌다.

바이든 당선인은 ‘규제론자’ ‘빅테크저격수’ 등으로 불린다. 그의 경제정책은 증세와 재정지출 확대로 요약된다. 법인세 인상(최고세율 21%→28%), 독점 규제, 노조 강화 등이 대표적인 공약이다. 그런데도 미국 재계는 그의 당선을 환영했다. 정보기술(IT) 기업이 밀집된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민주당에 낸 선거후원금은 공화당의 9배에 달한다. 제프 베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는 “강한 민주주의를 미국 시민이 다시 증명했다”며 반겼다.

증세, 노조 강화 등 정책의 큰 틀을 보면 바이든 당선자와 문재인 정부의 정책이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기업 입장에서는 불리한 내용이다. 그런데 왜 미국 재계는 새 대통령의 당선을 환영하고 한국 재계는 움츠러든 채 눈치만 보고 있을까.

예측 가능성이다. 미국 재계는 “게임을 하려면 규칙을 알아야 한다”며 “기업인은 바이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한국 재계는 “여당이 21대 국회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뒤로는 다양한 규제법안을 쏟아내고 있다”며 “어떤 법안이 통과될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한다. 임대차 3법처럼 사회적 합의 없이 도입된 정책이 쏟아지는 탓에 개인도 불안해한다. 경제 주체가 예측할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것, 그게 경제를 살리는 첫 번째 순위가 돼야 한다. 1년 6개월. 앞으로 남은 대통령의 시간이다.

김창규 경제디렉터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