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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수저 출신, 자식 잃은 슬픔…아픈 기억이 ‘중산층 조’ 만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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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채인택
채인택 기자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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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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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에서 당선인이 결정된 뒤 정치인 조 바이든과 함께 인간 바이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미국에선 아무리 의회가 견제하고 참모진이 보좌해도 백악관 주인의 인성·의지·판단력이 정책과 정치를 좌우할 수 있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중 이런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일종의 학습효과가 생겼다.

공감 잘하고 소탈한 서민친화형 #‘중산층 조’ 자처, 고용안정 힘 써 #아픈 가족사 인간적으로 승화 #고통 받는 사람에 연민과 연대로

미국 ABC방송의 워싱턴DC 지역채널인 WJLA는 지난 3일의 미국 대선을 두고 “트럼프와 바이든의 ‘성품 대결’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바이든이 펼칠 정책과 함께 그의 성격과 인물 됨됨이에 관심이 쏟아진다. 인간 바이든에 대한 궁금증을 선거캠프 공식 홈페이지(joebiden.com)와 미국과 정신분석학·심리학 연구, 그리고 외신 보도를 바탕으로 풀어본다.

2008년 8월 대선 유세 중 버락 오마바 대통령 후보 부부(왼쪽)와 함께한 조 바이든 부통령 후보 부부. [AP=연합뉴스]

2008년 8월 대선 유세 중 버락 오마바 대통령 후보 부부(왼쪽)와 함께한 조 바이든 부통령 후보 부부. [AP=연합뉴스]

바이든의 별명을 보면 인물 됨됨이와 함께 대중에 비친 이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중산층 조’로 부르며 중간계층과 서민의 벗을 자처한다. ‘조 아저씨’라는 별명에선 친숙한 이미지가, ‘다이아몬드 조’라는 별칭에선 딱딱한 인상이 각각 느껴진다. 미국 풍자신문 어니언은 그를 블루칼라 노동자층과 친숙한 ‘보통사람 조’ 또는 ‘둔한 아저씨’로 묘사했다.

정치인의 성격을 탐구하고 분석하는 ‘성격 정치학 연구집단(USPP)’이 바이든을 분석한 결과는 긍정적이다. 그의 성격은 기본적으로 사교적이고 개방적이다. 사람 사귀기를 좋아하고 사람의 말을 경청하며 타인을 돕기를 즐긴다. 융통성이 있고 협조적이다. 무엇보다 타협적이고 외향적이며 이를 바탕으로 사람들 사이의 문제를 조정하고 화합을 이끌 수 있도록 리더십을 발휘하는 유형이다. 거기에 더해 야심적이고 도전적이며 자신만만하고 대담하다.

미국 심리학 잡지인 사이콜로지 투데이에 따르면 심리학자들이 MIDC라는 성격 분류기법으로 바이든의 심리를 분석한 결과, 융통성이 강하고 남의 편의를 잘 봐주는 성격으로 분류됐다. 성격유형 지표인 에니어그램으로 분석했더니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짧고 직설적인 발언보다 길고 깊은 대화를 선호한다. 안전을 추구하고 위협을 회피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바이든의 인간성을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생생한 자료가 성장 과정이다. 그는 한 마디로 자수성가형이다. 숱한 고난을 헤치고 강인하게 살아왔다. 바이든은 194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소도시인 스크랜턴에서 중고차 영업사원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스스로 "바이든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대학에 들어간 건 내가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로 평범한 가정 출신이다.

바이든은 10살 때 실직한 아버지가 일자리를 찾아 이웃 델라웨어 주 윌밍턴으로 이주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2007년에 펴낸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들: 인생과 정치에서』에서 그는 "다니던 학교에 다시는 가지 못하게 됐고 친구들과도 헤어질 수밖에 없어 힘들었다”며 당시의 괴로운 심정을 회고했다.

1972년 여름 델라웨어주 민주당 대회에 셔먼 트리비트 주지사 부부(왼쪽)와 나란히 참석한 바이든 가족의 모습. 오른쪽부터 차남 헌터, 바이든, 장남 보, 첫 부인 닐리아. [AP=연합뉴스]

1972년 여름 델라웨어주 민주당 대회에 셔먼 트리비트 주지사 부부(왼쪽)와 나란히 참석한 바이든 가족의 모습. 오른쪽부터 차남 헌터, 바이든, 장남 보, 첫 부인 닐리아. [AP=연합뉴스]

이런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바이든은 ‘안정적인 직장과 수입을 가진 중산층이 미국의 튼튼한 허리’라고 굳게 믿게 됐다. 중산층이 많아야 미국 경제에 활력을 주고 사회에 안정을 가져온다는 신념이다. 고용 안정을 위한 정책 마련에 노력하며 ‘중산층 조’를 자처한 배경이다.

바이든은 65년 델라웨어대에서 역사학과 정치학을 전공하며 전체 688명 중 506등으로 졸업했다. 베트남전이 한창인 당시 징집 대상자였지만 천식으로 면제를 받았다. 68년 시러큐스대 법대를 85명 중 76등으로 마쳤다. 그 뒤 집이 있는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지역 의원을 거쳐 연방 상원의원이 됐다. 바이든은 36년간 델라웨어주 연방상원의원을, 8년간 부통령을 지냈지만, 엘리트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인간 바이든을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회자하는 것이 ‘슬픔을 가슴에 안고 사는 인물’이라는 말이다. 바이든은 2남 2녀를 뒀지만, 그중 장남과 장녀를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다. 그가 처음으로 연방상원의원에 당선한 직후인 72년 12월 18일 첫 부인 닐리아와 딸 나오미가 교통사고로 숨졌다. 함께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한 장남 보와 차남 헌터를 돌보다 이들의 병실에서 취임 선서를 했다.

바이든은 엄마를 잃은 아들들의 마음을 헤아려 매일 윌밍턴의 집에서 175㎞가 떨어진 워싱턴DC의 의회까지 출퇴근했다.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면 최소 2시간, 기차로 1시간 36분이 걸리는 거리다. 바이든의 세심함을 보여주는 일화다. 바이든은 5년 뒤 질 제이컵스와 재혼하기 전까지 장남 보와 차남 헌터를 직접 키웠으며 질과 사이에 딸 애슐리를 얻었다. 변호사인 장남 보가 2015년 46세의 나이로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에게 애틋할 수밖에 없는 사연들이다.

이처럼 바이든은 인간으로서 견디기 쉽지 않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왔다. 그런 과정에서 고통받는 타인에 대한 연민과 연대감을 보여왔다. 지난 5월 25일 경찰에 체포되는 과정에서 숨진 조지 플로이드의 가족을 6월 8일에 찾아 1시간 동안 함께 있으면서 위로한 사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바이든은 당시 시위와 항의를 부추기는 대신 인간적인 공감 능력을 보여줬다. 개인적인 고통과 불행이 그를 인간적으로 더욱 성숙시켰다.

당시 플로이드 유족 측 변호사인 벤저민 크럼프는 트윗에서 "서로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미국을 치료하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바이든이 미국의 46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가장 먼저 시작할 일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