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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차법 탓 아니라더니…전세난 부작용 알고도 강행한 여당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30.1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6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수급지수는 130.1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의 모습. [연합뉴스]

 주택임대차보호법(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을 사흘 만에 벼락 통과·시행한 더불어민주당이 부작용을 알고서도 법 개정을 강행한 것으로 10일 드러났다. 관련 문건이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홈페이지에 게시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알고도 강행했다니…고통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무능이 아니라 사악” 등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이 문건은 더불어민주당이 법 개정 한달 전인 6월 30일 개최한 ‘민생공정경제 연속세미나(주거분야)’의 발제문이다. 여당의 민생연석회의·을지로위원회·민주연구원이 주최했고, 주제는 ‘주택 임대차 안정화 정책’이었다. 주제 발표는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 교수가 맡았고, 윤관석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등 민주당 의원 10여명이 참석했다.

‘전셋값 급등’ 지적에도 보완책 외면

 [사진 세미나 발제문 캡쳐 ]

[사진 세미나 발제문 캡쳐 ]

세미나에서는 임대차법 도입시 쟁점들이 상세히 거론됐다. ▶한국시장에만 있는 전세제도의 특수성▶제도도입 초기에 전세가격이 일시적으로 급등할 것▶장기적으로 임대주택 공급이 위축될 것▶의무계약기간 장기화, 고정화의 문제 등이다.

특히 임 교수는 “향후 전세가격 상승만큼 충분히 인상하지 못할 것을 우려하는 임대인이 계약 초기에 손실을 만회하기 위해 전세가격을 크게 올릴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임대료 규제로 임대주택의 관리 소홀과 품질 저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임대주택 공급이 위축되고 재고도 줄어들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이를 막기 위한 예외를 두거나 임대인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해외 사례도 상세히 소개됐다.
임 교수는 “임대차법의 파급력이 큰 만큼 전격 시행되기 전에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며 “문제점에 대한 복안과 대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미나에 참석한 의원들 사이에선 “연구할 것이 많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임대차법은 아무런 보완책 없이 7월31일 시행됐다.

"법사위에서 곧바로 통과시켜야"조언도 

문건에는 임대차법 졸속 처리의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내용도 있었다. 이날 세미나에 보조 발제자 겸 토론자로 나선 참여연대 이강훈 변호사는 개정안 처리와 관련해 “논의가 정리되면 법제사법위원회로 가져와 곧바로 통과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법사위에 논의를 맡기면 20대 국회 같이 쟁점 법안이라고 계속 소위로 가서 논의가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할 뿐더러 법사위 의원들은 이런 논의에 익숙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세균 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정세균 총리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뉴스1]

문제를 알고도 강행한 대가는 크다. 전세 품귀로 전셋집을 보기위해 줄을 서고 제비뽑는 일이 발생했다. 가격이 너무 올라 기존 전세 계약을 갱신하는 경우와 신규 계약을 하는 경우 전셋값 격차가 2배까지 벌어졌다. 국토교통부 실거래 정보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의 전용면적 76.79㎡는 지난달 31일 보증금 8억3000만원(9층)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2주 전인 지난달 16일 보증금 4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된 것의 두 배다. 이 거래는 2년 전 4억원에 맺었던 전세 거래를 5% 갱신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여전히 정부와 여당은 시장의 혼란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전세 시장 제도 변경에 따른 일시적 영향은 감내하고 참아줘야 한다”(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거나 “전세난, 임대차3법 때문이라 말하기 어렵다”(김현미 국토부 장관)는 식이다.

이와 관련해 윤희숙 국민의 힘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정책 실패를 인정하기 싫어 천연덕스럽게 무식을 가장하는 것”이라며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 물량이 급감했고 전세 품귀와 맞물려 월세 급증까지 나타나고 있다. 이 고통은 고스란히 별 자산이 없는 서민의 몫”이라고 지적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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