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가 고대하던 소식에 금융 시장도 열광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의 현실화 가능성이 커지며 미국과 유럽 증시가 급등한 것이다.
시장을 달뜨게 한 주인공은 미국 제약사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다. 두 회사가 공동 개발한 백신이 3상 임상 결과에서 90% 효과를 냈다는 뉴스가 전해진 것이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성명에서 “(팬데믹의) 터널 끝에서 마침내 빛을 볼 수 있게 됐다”며 “몇 주 안에 백신 안전성과 효과에 대한 추가 데이터를 공개하겠다”고 말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시장은 열광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말 동안 상승 동력을 비축했던 미국 증시는 지난 9일(현지시간) 개장과 동시에 수직 상승했다. 우량주 클럽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1.2%)과 다우 지수(2.9%)는 모두 상승으로 장을 마쳤다. 유럽 증시도 급등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증시가 백신 뉴스에 춤을 췄다”며 “S&P500은 역사상 두 번째로 높은 종가를 기록했다”고 전했다.
백신에 대한 환호는 바다 건너 유럽 대륙으로도 번졌다. 프랑스 CAC40 지수(7.57%)와 영국 런던의 FTSE 100 지수(4.67%) 등도 이날 큰 폭의 오름세를 기록했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상황에서 백신의 현실화 가능성은 포스트 팬데믹에 대한 신호탄으로 여겨진다. JP모건 투자전략가들은 이날 고객에 보내는 메시지에서 “시장의 해탈(market nirvana)”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S&P 500 지수가 내년 초에 현재보다 11% 가량 오른 4000포인트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번뇌와 미 대선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사라지며 주식 시장에 이제 볕들날이 멀지 않았다는 장밋빛 해석이다. 투자회사 글로볼트의 톰 마틴 전략가는 “삶이 (팬데믹 이전으로) 정상화되는 것을 드디어 상상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포스트 팬데믹 시대로 한발짝 더 다가선 상황은 주식 시장의 새로운 판 짜기의 신호탄으로도 여겨진다. 비대면(언택트) 상황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던 빅테크가 힘을 잃고, 감염병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루저로 전락했던 종목의 약진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백신으로 팬데믹 극복에 대한 희망이 싹트면서 투자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백신 개발의 희소식이 전해졌던 이 날 그동안 하락의 늪에서 허우적댔던 여행ㆍ원유업계 등 종목이 오랫만에 상승 랠리를 펼쳤다. 델타항공은 이날 하루 17%, 석유기업 엑손모빌은 12.6%가 올랐다. 반면 팬데믹 수혜주였던 빅테크 기술주가 포진한 나스닥(NASDAQ)은 울상이다. 전날보다 1.53% 내리며 거래를 마쳤다. 대표주자인 아마존(-5.06%)과 넷플릭스(-8.59%)는 자유낙하했다.
유럽 증시에서도 배달 전문 유통기업인 오케이도(Ocado)는 하락했지만 자동차 기업인 롤스로이스와 철도 관련 기업인 트레인라인, 국제항공그룹(IAG) 등은 상승 흐름을 보였다.
시장이 백신 개발에 열광하는 것과 관련해 신중론도 제기된다. 화이자ㆍ바이오엔테크 백신과 관련한 표본이 94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90%의 효과를 낸 것은 중간 결과로 최종적으론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가 “돌발 변수가 발생하지 않을 경우에만”이라는 단서를 달면서 경고를 한 배경이다.
그러나 팬데믹 국면이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 누적된 피로감에 시장의 기대감은 신중론으로도 억누르긴 역부족이다. 경제 전문 방송 CNBC는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백신에 최소 75% 정도 효과만 있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90%는 꽤 높은 수치”라고 전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