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꺼낸 ‘신당 창당론’이 국민의힘 내부에 균열을 만들어 내고 있다. 총선 전 보수 통합 과정에서 묻어 놨던 탄핵 문제까지 다시 거론됐다.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언제부터 국민의힘의 주인이 되셨느냐”며 같은 당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을 저격했다. 장 의원의 날 선 비판은 지 원장이 전날 안 대표를 겨냥해 올린 글 때문이다.
최근 안 대표는 “비호감인국민의힘 대신, 새 혁신 플랫폼을 중심으로 야권을 재편하자”고 제안했다. 사실상 헤쳐모여 당을 새로 만들자는 것인데, 지 원장은 그런 안 대표를 향해 “반문연대 해서 주인이 되겠다는 생각만 하는데, 이제 그만하라”며 “(안 대표는) 정치 입문 9년 만에 5번 창당했다. 혁신, 혁신 많이 들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건지 아직도 국민은 이해를 못 한다”라고 비판했다.
두 사람은 야권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데, 지 원장이 자신보다 정치적 체급이 높은 안 대표를 겨냥한 측면도 있다. 그러자 장제원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새누리당을 탈당해 바른정당과 바른미래당, 새보수당 등을 거친 뒤 미래통합당(국민의힘의 전신)에 다시 합류한 지 원장의 과거를 소환해 “그토록 적폐라 몰아붙였던 자유한국당과는 왜 통합했냐”고 쏘아붙였다. 장 의원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정치 이력을 들춰내면 야권 인사 중 정치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라며 “대통령을 끌어내린 탄핵에서 문재인 정권에 깨춤 추다 이제야 깨닫고 넘어온 분들까지, 모두 죄인들”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분열의 출발점이 된 탄핵 문제를 언급하며, 안 대표를 옹호한 것이다.
당내에선 장 의원이 금기어에 가까운 탄핵이란 단어까지 꺼내 들며 지 원장을 거칠게 비판한 것에 대해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 지 원장을 임명한 이가 바로 김종인 비대위원장인 까닭에 '안철수·장제원 Vs. 김종인·지상욱'의 대립구도까지 거론되기 때문이다. 당 사정에 밝은 관계자는 “장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과 대립하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김 위원장 중심의 판을 흔들고 게임메이커가 되려면 안 대표의 제안을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장 의원은 안 대표를 자신이 주도하는 '미래혁신포럼'에 불러 국민의힘 의원들과 만나게 한 적도 있다.
이런 모양새에 대해 한 중진 의원은 “탄핵의 강을 건너자며 보수세력이 뭉쳤지만, 총선이 코앞이니 덮어 둔 것일 뿐이다. 당 분열의 뇌관이 될 수 있는 문제까지 거론하면서 서로 비난하면 당이 온전할 수 없다”고 우려했지만, 또 다른 관계자는 “정치인이 자기 정치 하는 걸 뭐로 막겠나. 대선까지 치열한 싸움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 야권 곳곳에선 며칠째 신당론을 둘러싼 백가쟁명식 훈수가 쏟아지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서울ㆍ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자유ㆍ보수ㆍ중도ㆍ우국(憂國) 진영을 통합해 반문연대를 출범시키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며 안 대표 제안에 호응했다.
반면 같은 당 박수영 의원은 혁신 플랫폼에 대해 “신당 창당이라면 시기적으로 맞지 않고,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뜻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늘 그랬듯 모호한 얘기만 던져서는 과거의 안 대표와 달라진 게 없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부정적 반응을 내놨다.
게다가 제안에 반응한 의원들도 이후 해법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필요성엔 공감하지만, 안 대표가 중심이 되는 것에는 거부감도 많다. 장 의원 역시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국민의힘 지도부가 배제된 채 안 대표가 주도하는 야권 재편이라면 거기엔 반대한다"며 "만약 혁신 플랫폼이 국민의힘 내부를 갈라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 내가 먼저 제동을 걸 것"이라고 말했다.
고민이 깊을 국민의힘 지도부는 일절 대응하지 않고 있다. 김 위원장은 앞서 “관심 없으니 혼자 하라”고 일축했고,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 103명이 다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