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못했던 진짜 현실이다. 출산 과정은 굴욕감마저 사치스러운 ‘짐승의 세계’ 이고, 평화스런 휴양지처럼 보였던 산후조리원은 오직 젖을 위해 먹고 젖을 위해 운동하고 젖을 위해 마시는 ‘젖의 천국’ 이다. 세 시간에 한 번씩 수유하고 유축하고 잠깐 눈 붙일까 하면 또 수유하고…. 젖 먹이기에 지친 초보 엄마는 “난 너무 피곤하다가도 우리 아기 얼굴만 보면 피로가 딱 풀리던데”란 다른 엄마 말이 이상하고 불편하게 느껴진다.
아름답고 위대한 모성으로 포장돼왔던 출산ㆍ육아 과정의 실상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지난 2일부터 방송 중인 tvN 월화드라마 ‘산후조리원’에서다. 예능 프로그램 ‘ 롤러코스터’ ‘SNL 코리아’ 등에서 활동했던 김지수 작가가 자신의 3년 전 출산 경험담을 녹여 각본을 쓴 ‘산후조리원’은 “단 한 번의 출산으로 일상과 일ㆍ관계들이 너무나 달라져버린 여자들의 이야기”를 표방한다. 극중 산후조리원 원장(장혜진)의 대사를 빌리자면 “임신은 고달프고 출산은 잔인하고 회복의 과정은 구차”하다. 그 과정을 르포식 에피소드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산후조리원’은 밀리언셀러 소설『82년생 김지영』을 닮았다. 동시대 여성이 보편적으로 겪음직한 경험의 현장을 주인공의 이야기로 그려낸다.
‘산후조리원’의 주인공은 마흔두 살의 18년 차 직장인 오현진(엄지원). 초고속 승진을 거듭해 드럭스토어 올리블리의 최연소 상무로 승진한 바로 그 날, 임신 사실을 알게된다. 외국인 바이어 앞에서 양수가 터진 순간에도 침착하게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부른 ‘완벽’ 커리어우먼이지만, 진통이 시작되면서부터는 평소의 오현진이 아니었다. 드라마는 관장과 제모, 내진 등 그동안의 대중문화 콘텐트에서 드러내지 않았던 출산의 과정까지 다큐처럼 보여준다. 1기 굴욕기, 2기 짐승기, 3기 무통천국기, 4기 대환장파티기, 5기 반드시기쁨기로 나눠진 출산의 단계마다 오현진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접한다. 관장 후 10분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화장실로 뛰어들어갔고, 3초 들이마시고 8초 내뱉는 호흡법은 흉내조차 낼 수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지나 아들 ‘딱풀’이를 무사히 낳은 이후의 감정도 예상과 너무 달랐다. ‘뭐가 이렇게 빨갛지? 예쁜건가?’ 아이를 처음 본 순간, 오현진의 마음이었다.
출산 후 회복실을 거쳐 입원실로 왔을 때는 어떤가. 기진맥진해 있는 산모를 옆에 두고 시부모는 “순산했다”며 기쁨에 들떠있다.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애기 얼굴 보면 싹 잊혀지는 게 엄마”라는 시어머니에게 친정어머니가 한 마디 한다. “순산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순산이 어디 있어? 내 새끼는 죽다 살아났구만.” 오현진의 눈에 눈물이 핑 도는 순간이고, 시청자들 역시 “겪어본 사람들은 알아들을 만한 내용”이라고 감탄하는 장면이다.
수유 과정의 갈등을 담은 9일 3회 방송에서도 실제 엄마들의 상황이 실감나게 그려졌다. 모유 양이 적어 “이 이상한 젖의 천국에서 난 무능한 젖소”라며 자괴감에 빠진 오현진. “분유를 주면 어떨까…”라고 중얼거리는 그를 산모들의 롤모델인 사랑이엄마(박하선)는 “줄 수 있는 모유를 안 줘서 나중에 애한테 문제가 생기면 평생 후회할 거냐”고 몰아세운다. 이 때 끼어든 미혼모 이루다(최리)의 “분유가 무슨 독약이냐. 요즘 젖소들도 방목해서 행복하게 자란다. 여기 갇혀서 잠도 못자고 스트레스 받는 엄마들의 모유가 더 좋다고 생각하냐”는 반박까지, 현실의 엄마들도 한번쯤 갈등하며 고민해봤을 생각거리다.
총 8부작으로 기획된 ‘산후조리원’은 이제 본격적인 스토리 전개에 들어간다. tvN 측은 “미스터리 요소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갓 엄마가 된 여성들의 성장을 응원하고 공감하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1∼3회 시청률은 3∼4% 선. 화제성에 비해 소소한 수치다. 이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3회 한 회 방송 내내 젖 얘기만 하는 등 기존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낯설게 보일 수 있어서일 것”이라며 “하지만 엄마에게 불안감ㆍ죄책감을 주입해 모성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풍자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신선하고 빼어난 양성평등 콘텐트”라고 평했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