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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면전에 "바이러스!" 화풀이…불안한 佛 현지 교민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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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호씨가 봉쇄령에 대비해 한인마트에서 일주일치 먹거리로 산 음식. 문씨 제공

문준호씨가 봉쇄령에 대비해 한인마트에서 일주일치 먹거리로 산 음식. 문씨 제공

"일주일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갔습니다."

프랑스 파리에 4년째 살고있는 유학생 문준호(30)씨 얘기다. 7일(현지시간) 기준 프랑스의 하루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확진자 수는 8만6852명을 기록했다. 같은 날 이탈리아(확진자 3만9811명), 독일 (2만3399명) 등 유럽 주요국 확진자가 급증하자 지난봄 1차 유행보다 더 심각하다는 진단이 나왔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전국 봉쇄 조치를 내렸다. 봉쇄 기간 동안 필수 업무나 병원 진료를 제외한 외출을 금지했다. 술집, 음식점 등 비(非)필수 업종은 문을 닫도록 했다. 문씨는 프랑스 전역에 '2차 봉쇄령'이 내려진 뒤 외출을 최대한 자제해 왔다. 봉쇄령에 발묶인 현지 교민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면전에 "바이러스!" 외치는 사람들

트위터에 올라온 '동양인 혐오' 게시글. '친구들과 모여 거리에 지나가는 중국인들을 공격할 것'이라거나 '히틀러는 유대인이 아니라 중국인을 죽였어야 했다'는 내용이다. 트위터 캡처

트위터에 올라온 '동양인 혐오' 게시글. '친구들과 모여 거리에 지나가는 중국인들을 공격할 것'이라거나 '히틀러는 유대인이 아니라 중국인을 죽였어야 했다'는 내용이다. 트위터 캡처

문씨는 일주일 전 장을 보기 위해 한인 마트를 방문한 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코로나 19 사태 초반이던 3월 중순 '1차 봉쇄' 때보다 확산 속도가 빠르고, 체감상 동양인에 대한 '인종차별'도 강해져서다.

문씨는 "동네 마트에만 가도 면전에서 'Le Virus(바이러스)!'라는 말을 듣는 건 흔하다"며 "'중국에서 온 바이러스'라는 인식 때문에 동양인에 대한 반감이 커져 화풀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씨는 특히 SNS상에서 '친구들과 특정 거리에 모여 지나가는 중국인들을 공격할 것'이라거나 '히틀러는 유대인이 아니라 중국인을 죽였어야 했다'는 등의 글이 널리 퍼지는 등 동양인 혐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고 전했다. 프랑스에 한국 문화를 전하는 한 유튜버도 최근 '프랑스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파리의 바에서 남성 15명에게 폭행당한 일화를 밝혔다. 해당 영상은 한국인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조회 수 55만회를 넘었다.

韓 방역 방침에 "그게 가능하냐"

문씨는 재학 중인 파리정치대 경영학과 석사과정 위기관리 관련 수업(Reputation means business)에서 한국의 코로나 19 방역 체계에 대해 발표했다가 양국 간 문화 차이를 실감했다고 한다.

프랑스 학생들은 코로나 19 발생 이후 한국 정부가 방역 방침에 따라 시행한 신용카드 사용 내역 및 GPS(위성항법장치)를 통한 동선 추적, 출입 명부 작성 등에 대해 "전체주의 아니냐" "한국인들은 자유권 침해에 대해 반발을 하지 않는 거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문씨는 "한국에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인식이 있는 반면ㅡ 프랑스에선 '왜 우리가 정부의 통제를 받아야 하냐'는 인식이 크다"며 "토론에서는 집단과 공동체 문화를 중시하는 한국과 개인을 우선시하는 프랑스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났다"고 말했다.

한 반에 확진자 3명 나와야 등교 중지

학교 내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다며 프랑스 교사 노조 SNS에 올라온 사진(왼쪽)과 파리 루이지 아만드 고등학교 앞 학생들의 시위 장면. 트위터 캡처

학교 내 거리두기가 지켜지지 않는다며 프랑스 교사 노조 SNS에 올라온 사진(왼쪽)과 파리 루이지 아만드 고등학교 앞 학생들의 시위 장면. 트위터 캡처

1차 봉쇄 때와 가장 큰 차이점은 초·중·고교 학생들의 '정상 등교'다. 파리 에펠탑 근처에 살고 있는 백상아(48)씨는 고등학교 2학년·3학년 자녀들을 등교시키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크다.

백씨는 "한 반에서 확진자 3명이 나와야 반 전체 등교를 중지한다"며 "고2인 둘째의 반에서 확진자가 1명 나왔는데, 확진자와 친한 친구만 코로나 19 검사를 받게 하고 나머지는 정상 등교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학교에서 급식을 주고는 있지만, 다수가 함께 밥을 먹는 환경이 부담스러운 학생은 도시락을 싸 간다"며 "코로나 19 감염이 두렵다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않으면 결석처리 한다. 아이들에게 매일 아침 도시락을 들려 등교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백씨의 고2 아들은 지난 8일 오전 조금 일찍 하교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정부가 무리하게 등교를 시켜 학생들을 위험한 상황으로 내몬다는 지적이 나와서다. 학생들은 "우리는 총알받이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쓰레기통을 불태우기도 했다.

지난 2일 개학 첫날부터 프랑스 일부 고등학교에서는 산발적인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교사 노조는 등교하는 학생 숫자를 조절해 분반 수업을 진행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교직원을 추가로 채용하고, 학생들에게 무료로 마스크를 보급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SNS에는 현재 정부가 정한 보건 수칙을 지키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학교 내부 사진과 동영상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권혜림 기자 kwon.hye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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