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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의 배신···김경수 영수증이 김경수 잡았다

중앙일보

입력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9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 6일 댓글을 이용한 불법 여론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도지사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았으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 실형이 선고됐으나 법정에서 구속되지는 않았다. [뉴스1]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9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경남도청으로 출근하고 있다. 지난 6일 댓글을 이용한 불법 여론조작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도지사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선고 받았으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무죄가 선고됐다. 실형이 선고됐으나 법정에서 구속되지는 않았다. [뉴스1]

 김경수(53) 경남도지사의 유ㆍ무죄는 결국 김 지사가 댓글 조작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 시연에 참관했는지를 가리는 데 달려 있었다. 항소심은 2016년 11월 9일 드루킹과 그 일당인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의 아지트 산채에서 김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봤다는 점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결론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2부(함상훈, 김민기, 하태한 부장판사)는 230쪽의 항소심 판결문에서 200쪽이 넘는 분량을 ‘댓글조작 혐의’를 분석하는데 할애했다. 재판부는 네이버 로그 기록을 표로 만들어 판결문에 싣는 등 김지사가 킹크랩 시연을 봤다고 인정할 수 있는지를 매우 세밀하게 따졌다. 또 쟁점이 됐던 김 지사의 ‘닭갈비 저녁 식사’ 여부에 대해서도 “당일 김 지사는 식사하지 않았다”고 결론냈다.

김경수, 드루킹과 닭갈비 아닌 한우 먹었다…날짜 달라

김지사 측은 2016년 11월 9일 킹크랩 시연을 보지 못했다는 근거로 ‘닭갈비 식사’를 항소심에서 주장했다. 김 지사는 당일의 행적에 대해 ①저녁 6시 50분쯤 산채에 도착해 ②7시부터 7시 40분까지 드루킹 및 회원들과 식사를 하고 ③7시 50분부터 9시까지 2층 강의장에서 다른 회원들과 드루킹 브리핑을 들은 뒤 ④2층 강의장에서 드루킹과 독대를 했으며 ⑤9시 15분쯤 산채를 떠났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이날 8시 7분부터 23분까지 16분간 킹크랩 시연이 있었다고 주장해왔다. 김 지사측은 “이 시간엔 식사 후 브리핑을 들었을 시간으로 시연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만약 식사를 안 했다면 8시 23분 킹크랩 구동이 끝난 뒤 김 지사가 산채를 떠나기까지 1시간 정도 공백을 설명할 길이 없다고도 했다. 항소심 공판 중에는 닭갈빗집 사장이 증인으로 나와 “닭갈비 영수증을 보니 포장해 간 것이 맞다”는 증언도 했다. 김 지사측은 이 닭갈빗집 사장 증언이 '김 지사가 산채에서 드루킹 일당이 포장해온 닭갈비로 식사한 근거'라며 함께 식사했다면 도저히 시연할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해왔다.

재판부, “11월 9일 김경수는 닭갈비 안 먹었다”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닭갈빗집 사장 증언 [JTBC 뉴스 캡쳐]

항소심 공판에 출석한 닭갈빗집 사장 증언 [JTBC 뉴스 캡쳐]

하지만 항소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김 지사는 11월 9일 산채에서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결론냈다. 먼저 김 지사 자신의 진술이 하나의 근거가 됐다. 김 지사는 특검 조사와 법정 증언에서 “산채에서 식사했고, 고기를 구워 먹었던 것은 분명히 기억난다”고 했다. 다만 그 식사가 언제였는지, 모두 몇 번 식사가 있었는지 정확히 특정하진 못했다. 김 지사는 11월 9일 이전인 9월 28일에도 산채를 방문했는데 드루킹 일당의 체크카드 사용내역을 조사해보니 9월 28일에는 한우를 산 내역이, 11월 9일에는 닭갈비 15인분을 산 내역이 나왔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기억하는 식사 일은 9월 28일”이라고 정리했다.

오히려 ‘닭갈비 식사’ 주장은 김 지사의 두 번째 방문일인 11월 9일을 특정하는 단서가 됐다. 수사 초기 드루킹 일당은 킹크랩 시연 날짜를 제대로 특정하지 못했다. 그때 특검이 드루킹측에 ‘닭갈비 영수증’을 제시했다. 그러자 이들이 “이날이 김 지사가 두 번째로 산채를 방문한 날”이라며 날짜를 특정한 것이다. 당시 드루킹 일당은 “닭갈비를 포장해 왔을 가능성이 높고, 저희끼리 먼저 식사하고 김경수를 기다린 것 같다”“김경수가 늦게 와서 함께 식사하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이들의 말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 진술이 나올 때는 김 지사의 식사 여부가 쟁점이 되지도 않았던 때였다. 굳이 식사에 대해 허위 진술을 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다. 결국 재판부는 “닭갈비를 김경수와 먹지 않았다”는 경공모 회원들의 진술이 더 믿을만하다고 판단한 셈이다.

11월 9일 킹크랩 시연 당시의 재구성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렇다면 문제가 된 11월 9일 킹크랩 시연은 어떻게 이뤄졌다는 걸까.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드루킹과 개발자 우모씨의 증언, 네이버 로그 내역 등을 종합해 가장 개연성 있는 상황을 재구성했다.

2016년 11월 9일 저녁 8시 7분쯤 우씨는 드루킹 지시에 따라 휴대전화로 킹크랩 프로그램을 실행한 뒤 강의장에 있던 드루킹 및 김지사에게 가져다준다. 이때가 특검이 주장한 8시 7분부터 23분까지 16분간 킹크랩이 시연된 시간이다.

강의장 밖으로 나온 우씨는 시연이 끝나길 기다리며 근처에 있던 컴퓨터로 8시 20분부터 수작업으로 댓글 작업을 한다. 8시 23분쯤 드루킹의 호출을 받고 다시 강의장으로 들어간 우씨는 킹크랩을 시연한 휴대전화를 갖고 나오면서 휴대전화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끈다. 밖으로 나온 우씨는 다시 컴퓨터로 작업을 시작한다.

변호인은 항소심에서 ‘1030 더미데이터’파일의 존재를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네이버 로그 기록으로는 김 지사가 시연을 봤다는 점을 증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더미데이터파일은 프로그램 시뮬레이션 등에 쓰는 파일이다. 이 파일에는 우씨가 3개의 ID를 전제로 프로그램을 개발한 내용이 나온다. 김 지사측은 “김 지사 방문 훨씬 전인 10월 30일에도 3개의 ID를 전제로 개발한 흔적이 나오는 걸 보면 김 지사 방문 직전에 ID 3개로 개발한 건 시연이 목적이 아니라 개발 과정의 일부” 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항소심은 개발자 우씨의 일반적이지 않은 개발 기록에 주목했다. 우씨는 ‘1030 더미데이터’ 파일을 만들고 다른 개발을 하지 않은 채 이 파일이 실제 구현될 수 있는지에만 몰두한다. 11월 4일부터 7일까지는 이를 구현하고, 안정화한 7일 새벽부터는 간간이 프로그램을 한두차례 돌려보기만 한다. 김 지사가 오기로 한 9일 오후 2시와 5시쯤 또 한 번씩 킹크랩을 돌려본 뒤 저녁 8시 7분부터 23분까지 16분간 킹크랩을 돌린다. 김 지사가 떠난 뒤에는 다시 ID 1개로 개발 과정을 이어나갔다.

 재판부는 “변호인이 인정하듯 우씨는 아주 조잡하고 단순해 시연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인 킹크랩 프로토타입을 만드는 데 왜 몰두했을까”라며 “이는 11월 4일부터 우씨가 본래 개발 계획과는 동떨어진 행위를 했다는 강한 반증”이라고 판단했다. 항소심은 “우씨가 11월 4일부터 김 지사 방문까지 한 로그 기록은 ‘시연을 위한다’는 목적을 갖고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판결문에 썼다. 덧붙여 특정 로그가 시연인지 개발 과정인지를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우씨가 사건 초기 로그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았을 때부터 일관되게 "시연을 위해 개발했다"며 개발 과정을 진술해온 점으로 볼 때 우씨 진술이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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