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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망치든 악동처럼 파괴" 美 가장 위험한 72일 시작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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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워싱턴에서 열린 '스피릿 오브 아메리카' 박람회 행사 도중 전시된 야구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전 세계는 그의 나홀로 선거 불복 움직임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워싱턴에서 열린 '스피릿 오브 아메리카' 박람회 행사 도중 전시된 야구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전 세계는 그의 나홀로 선거 불복 움직임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도둑맞은 선거"라며 닷새째 대선 불복을 이어가고 있지만,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으로서 '레임덕(lame duck)'은 가속화하고 있다. 당장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당선인은 9일 자체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하는 등 국정 인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틀째 골프치며 "선거 도둑맞았다" '나 홀로 불복' #사위 쿠슈너에 이어 부인 멜라니아는 "승복하라" #펜스·매코널도 바이든 당선 확정후 거리두기 #바이든 정권 인수 박차에 레임덕만 가속화 #임기 만료까진 행정특권…'셀프 사면' 가능 #"비리 드러날 문서 파기, 안보 위험 우려도"

트럼프 레임덕 시작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는 트럼프의 출구 없는 불복 소송전에 러닝메이트인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공화당 최고 지도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가 거리를 두고 공개 지지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모두 미 언론이 바이든의 46대 대통령 당선을 보도한 이래 트럼프의 불복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에 이어 8일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이틀 연속 골프를 쳤다. 이후 백악관에 돌아와선 자정까지 "이번 대선은 도둑맞은 선거"라며 자신의 우편투표 및 개표 부정 소송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이 출연한 폭스뉴스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에 이어 8일 버지니아주 스털링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이틀 연속 골프를 쳤다. 이후 백악관에 돌아와선 자정까지 "이번 대선은 도둑맞은 선거"라며 자신의 우편투표 및 개표 부정 소송을 옹호하는 전문가들이 출연한 폭스뉴스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다. [AP=연합뉴스]

펜스 부통령은 특히 개표 초반 앞서 나가던 지난 4일 새벽 2시(현지시간) 트럼프의 대국민 연설에 함께 한 뒤 공개 석상에선 모습을 감췄다. 트위터에도 공화당 의원 당선 축하 메시지 외엔 트럼프가 주장한 우편투표 사기나 개표 부정 관련 글을 일절 올리지 않았다. 참다못해 한 고위 트럼프 캠프 관리는 8일 오후 "도대체 펜스는 어디에 있나(Where the hell is Mike Pence?)"라는 문자 메시지를 돌렸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트럼프 권력의 한 축인 공화당의 지지가 썰물처럼 빠지고 있는 셈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 내에서도 사위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에 이어 부인 멜라니아 여사까지 "선거 패배를 승복할 시간이 왔다"고 '아름다운 승복'을 권유하고 있다고 CNN 방송은 9일 보도했다.

이틀째 골프를 치고 있는 트럼프 본인만 '나 홀로 불복'을 계속해도 9일부터 내년 1월 20일 정오 임기를 마칠 때까지 72일간 임기 말 '식물 대통령' 전락은 불가피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 등 참모들은 '대통령직인수법(1963)'에 따라 질서 있고 평화로운 정권 이양에 협력할 수밖에 없다.

공화당 출신인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4일 새벽 개표 초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 곁에 선 뒤 나흘째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우편투표 사기 및 개표 부정 소송에 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AFP=연합뉴스]

공화당 출신인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4일 새벽 개표 초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대국민 연설에 곁에 선 뒤 나흘째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건 물론 트럼프 대통령의 우편투표 사기 및 개표 부정 소송에 관해 일절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바이든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 연설을 하기 직전까지 '레임덕 대통령' 트럼프가 여전히 군 최고사령관의 권한과 사면권을 포함한 각종 행정특권을 갖는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미 전문가와 언론은 트럼프의 레임덕 72일이 미 역사상 가장 위험한 기간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선 트럼프는 레임덕 동안 가족·기업의 거래 및 탈세 관련 수사, 성폭행을 포함한 각종 형사소송과 관련해 이른바 '백지 사면(blanket pardon)'을 할 수 있다. 워터게이트 도청 사건으로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대통령직을 승계한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1974년 '닉슨이 재임 중 저질렀거나,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연방 범죄 일체'를 사임한 전례가 있다. 당시 닉슨은 검찰에 어떤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았는데 포드는 선제적으로 사면한 것이었다.

트럼프뿐만 아니라 다른 임기 말 대통령도 레임덕 기간 측근 인사를 포함해 대규모 사면을 몰아서 하기도 했다. 민주당 대통령의 경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65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300건 등이다. 다만, 차이점은 트럼프가 본인·가족을 사면한다면 '셀프 사면'이란 새로운 기록을 만든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대해 쓴소리를 해 온 앤서니 파우치 국립 알레르기·전염병 연구소장을 해고하는 '몽니'를 부리거나, 다수당인 상원을 활용해 연방 판사를 대거 임명하는 등 '말뚝박기 인사'도 할 수도 있다. 레임덕 기간 법관 인사 알박기는 2대 존 애덤스 대통령(연방당)이 1801년 토머스 제퍼슨 3대 대통령(민주공화당) 취임 전 수십명의 법관 인사를 한 게 최초 사례다.

대통령직 수행과 관련한 중요한 문건을 파기하고, 비밀을 해제해 공개하는 등 바이든 당선인의 정권 인수를 방해할 수도 있다. 미국이 아무리 법으로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규정하고 있다고 해도 수천 명의 고위 정무직이 뒤바뀌는 정권교체 과정이 순탄할 수만 없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도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에 이어 대통령에게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받아들이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사진은 4일 대국민 연설 도중 트럼프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는 멜라니아.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도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에 이어 대통령에게 "바이든 당선인의 승리를 받아들이라고 조언하고 있다"고 CNN 방송이 보도했다. 사진은 4일 대국민 연설 도중 트럼프 대통령을 쳐다보고 있는 멜라니아. [로이터=연합뉴스]

윌리엄 애들러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교수는 8일(현지시간) NBC 방송 기고를 통해 28년 전 빌 클린턴(민주당)→조지 W 부시(공화당) 정권으로 교체 당시 새로 입주한 부시 측 직원들은 백악관 컴퓨터 키보드에 'W' 자판만 사라진 걸 발견하고 불평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부시 대통령의 중간 이름 이니셜 'W'를 일부러 빼간 것인데 이번 정권 교체기엔 이 정도 애교 수준이 아닐 수도 있다.

린지 체르빈스키 국제 제퍼슨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CNN 방송 기고문을 통해 "트럼프는 2017년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에 비밀 정보를 공유한 것처럼 마지막 두 달 동안 정치적 목적으로 고도로 민감한 정보를 비밀 해제를 하거나 정보 출처도 공개할 수 있다"며 "이는 미국은 물론 동맹국의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가안보와 관련해선 2020년 1월 3일 의회 승인 없이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 사령관을 무인기로 폭사한 것처럼 미국을 전쟁의 위험에 빠뜨리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전 세계 국가가 트럼프의 승복 가능성과 조속한 시일 내 미국 민주주의의 복원을 예의주시하는 이유도 이런 연유다.

그는 또 "참모들에 자신의 비리 증거가 될 가능성 있는 중요한 문서를 파기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레임덕 대통령에게 가장 우려되는 상황 중 하나는 자신의 선거 불복을 위해 충성파 지지자를 부추겨 전국적 소요 사태를 선동해 미국을 국가적 위기로 몰아넣는 것이라고 애들러 교수는 경고했다.

남부 주들의 노예제 옹호를 지지하던 15대 제임스 뷰캐넌 대통령이 1960년 노예제 폐지론자인 에이브러햄 링컨(공화당) 대통령이 당선하자 군대 파견 등의 권고를 거부한 채 남부 주의 연방 탈퇴를 방치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이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피해인 100만명 이상이 숨지는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을 "앙심과 두려움을 품은 레임덕에 빠진 현직자"라고 표현하면서 "조 바이든 당선인의 취임식인 내년 1월 20일까지 11주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험한 기간이 될 수 있다는 말이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작가이자 안보전문가인 맬컴 낸스는 대선 결과가 나오기 전 가디언에 "트럼프는 권력을 잃고 도자기 가게에서 대형 망치를 들고 온 악동처럼 미국을 망치는 데 마지막 나날을 보낼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정효식 기자 jjp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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