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예현·김태균·조유민·심여진(왼쪽부터) 학생기자가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을 찾아 민화 전시회 ‘정원의 풍경: 인물·산수·화조’를 관람한 뒤, 전시작품 중 하나인 ‘곽분양행락도’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했다.
소중 친구들은 오만원권을 자세히 살펴본 적 있나요? 오만원권의 주인공은 조선시대 대표 여류 문인이자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이죠. 신사임당 옆으로 그려진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세요. 비단 바탕에 세 송이의 포도와 줄기, 잎사귀 등을 그린 묵포도도(墨葡萄圖)와, 화초와 곤충을 수놓은 8폭의 자수병풍 중 7번째 가지 그림인 초충도수병(草蟲圖繡屛)이 보일 겁니다. 모두 신사임당이 그린 것으로 알려진 작품으로, 넓게 보자면 민화의 범주에 속합니다.
민화란 서민들을 위해 제작되고 팔리던 그림을 말해요. 조선 초기에는 도화서(圖畫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아)를 중심으로 주로 왕실과 사대부가 그림을 즐겼지만, 18세기부터는 서민을 위한 그림도 본격적으로 제작됩니다. 상공업의 발달과 농업 생산력의 증가로 백성의 경제력과 삶의 질이 상승했기 때문이죠. 민화는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한 화가들의 작품인 경우가 많지만, 도화서 소속 화원(畫員·화가)들이 본업 외 수입을 얻기 위해 그린 경우도 있어요. 민화는 백성들을 위한 그림이기에 점잖고 격식을 중시한 궁중 회화나 사대부들의 그림(문인화)과는 달리 자유분방하고 개성이 강한 표현이 매력이죠.
민화는 그림의 소재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꽃과 나무, 새와 바위 등을 그린 화조도(花鳥圖)는 집안의 풍요와 부부 화합을 염원한 것이고, 가득 쌓인 책과 종이·붓·벼루·먹 등 선비들이 애용하는 문방사우(文房四友)를 그린 책거리도는 늘 책을 곁에 두고 싶었던 마음을 담았죠. 민화는 행복한 삶을 향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소망을 담아 주로 병풍·족자·벽화 등의 형태로 집 안팎을 단장했습니다. 민화와 친해지면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도 잘 알 수 있겠죠? 그래서 소중 학생기자단이 ‘정원의 풍경: 인물·산수·화조’ 전시회가 열리는 서울 강남구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을 찾았습니다.

‘정원의 풍경: 인물·산수·화조’ 중 화조도 전시실의 전경. 병풍과 족자에 주로 그려진 민화의 특성을 고려한 공간 구획이 특징이다.
전시 이름에서 나타나듯 다양한 민화 중에서 인물도(人物圖)와 산수도(山水圖), 화조도가 중심이에요. 전시가 시작되는 3층에 들어서니 역사·문학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담은 인물도들이 기자단을 맞이했죠. 이들의 공통점은 제작 목적이 분명하다는 겁니다. 송민수 도슨트가 학생기자단을 위해 자세히 설명했죠. “농가의 풍경을 그린 경직도는 왕이 백성의 수고로움을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그린 백동자도는 다산을, 중국 당(唐)나라 무장이었던 곽자의의 생일잔치를 그린 곽분양행락도는 부귀영화에 대한 염원을 담았어요.”

‘화접도’ 8폭 병풍 중 일부. 민화에서 나비는 기쁨과 행복을 상징한다.
산수도는 중국과 우리나라 명승지(名勝地‧뛰어나게 아름다운 경치)를 소재로 했습니다. ‘무이구곡도’는 중국 남송 시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가 머물던 무이구곡을 그렸죠. 유명한 도시의 풍경을 곁에 두고자 제작된 그림도 있어요. 평양의 모습을 지도처럼 세세하게 그린 ‘평양성도’죠. “나 같으면 귀찮아서 다 점으로 찍었을 텐데. 사람들과 나무, 산을 하나하나 다 그렸네.” 김태균 학생기자의 말에 장예현 학생기자는 “자세하게 그려서 더 좋아”라며 고개를 끄덕였어요.

여성성을 상징하는 모란과 남성성을 상징하는 괴석(怪石·특이하게 생긴 바위)을 함께 그린 ‘모란괴석도’는 부부간의 금슬과 음양의 조화를 상징한다.
2층부터는 다양한 화조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모란·목련·연꽃·바위·새·나비 등 그림 속 여러 동·식물들이 소중 학생기자단을 매료했어요. “화조도는 그림에 등장하는 꽃과 새의 종류에 따라 의미가 달라요. 모란은 부귀(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음), 연꽃은 군자(행실이 점잖고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나비와 참새는 기쁨을 상징하죠.” “이 그림에는 왜 학과 사슴이 많이 등장하나요?” 조유민 학생기자가 ‘장생도(長生圖)’를 가리켰어요. “여러분 십장생(十長生)이란 단어를 들어본 적 있나요? 오래도록 사는 열 가지를 뜻하는 건데, 그중 학·사슴·소나무를 그린 거예요.”

‘평양성도’를 관람 중인 학생기자단. 평양의 산천과 인물들의 모습을 커다란 지도처럼 화폭에 구현했다.

송민수(가운데) 도슨트가 학생기자단에게 조선시대 후기에 성행한 민화와 근현대화가 박생광의 작품세계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박생광이 그린 ‘장생도’는 과감한 색채와 고정관념을 깬 형태로 민화의 단골 소재인 십장생을 재해석했다.

박생광의 또 다른 작품인 ‘호모란도’ 역시 민화가 한국 근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민화라고 하면 조선시대에만 존재했던 예스러운 유물 같지만 현대 여러 화가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민화의 여러 소재와 화려한 색채를 적용한 화가 박생광(1904~1985)의 작품도 함께 전시됐죠. “귀여워요.” 조유민 학생기자가 ‘호모란도’ 속 쨍한 색감의 모란과 익살스럽게 묘사된 호랑이를 꼼꼼히 살펴봤어요.
인물도·산수도·화조도 등 50여 점의 민화에 푹 빠져 감상하던 소중 학생기자단의 궁금증이 차곡차곡 쌓일 무렵, 전시를 기획한 유진현 호림박물관 학예사가 등장했어요. 심여진 학생기자가 “조선시대 사람들은 민화를 어떻게 구매했나요? 또 이번 전시에 공개된 민화는 어떤 과정을 거쳐 수집했나요?” 질문했죠. “조선 수도인 한양 청계천 부근에 광통교(廣通橋)라는 다리가 있었어요. 거기에 미술품 시장이 형성돼 글씨와 그림을 사고팔았죠. 요즘은 고미술 작품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상인들에게 구매해요.”

물고기와 게 등 바다 생물을 그린 ‘어해도’의 일부. 밤낮으로 눈을 뜨고 있으며, 알을 많이 낳는 물고기는 재물을 지키는 파수꾼과 다산의 상징이다.
“민화는 배경지식을 알아야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민화 속 상징의 의미를 귀 기울여 듣던 장예현 학생기자가 민화와 좀 더 쉽게 가까워지는 방법을 물었어요. “뭔가와 친해지려면 서로 마음이 통해야죠. 특히 예술 작품이나 문화재는 내가 관심을 가져야만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어요. 선생님이나 책을 통해 공부하는 걸 추천해요.”
민화는 집을 꾸미는 가구이면서도, 조선시대 서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예술품이에요. 시대는 바뀌었지만, 행복한 삶을 향한 사람들의 갈망은 여전합니다. 민화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닌 비결이죠. 어때요. 이렇게 보니 조선시대 사람들의 일상도 멀게만 느껴지지 않죠? 소중 친구들은 어떤 삶을 꿈꾸고 있나요. 여러분의 소망과 닮은 민화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유진현 학예사 미니 인터뷰

유진현(왼쪽에서 둘째)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과의 미니 인터뷰를 마치고 화조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전시회는 누가 만드는지 알고 있나요? 바로 학예사입니다. 큐레이터라고도 하는데요. ‘정원의 풍경: 인물·산수·화조’를 기획한 유진현 호림박물관 학예사를 만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 태균: 학예사가 되고 싶으셨던 이유가 궁금해요. 학예사가 되려면 무슨 과목을 잘해야 하나요.
- 저는 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했어요. 각종 유물은 역사의 일부이자, 눈에 보이는 연구 대상이죠. 거기에 매력을 느껴서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어요. 전시에 나온 유물들은 역사의 일부이니 당연히 역사를 잘 알아야겠죠. 전문 분야에 따라 관련 외국어 능력이 필요한 경우도 많아요.
- 유민: ‘학예사가 되길 잘했다’ 싶은 순간은 언제였나요.
- 제 전시 설명을 들은 관람객들의 반응이 좋았을 때 보람을 느껴요. 늘 관객들이 전시된 작품을 충분히 감상하고, 좋은 내용도 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 예현: 반면 ‘학예사가 이런 일까지 할 줄은 몰랐다’ 싶었던 적도 있나요.
- 학예사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만 하는 직업이 아니에요. 박물관에 따라 학예사가 전시 기획부터 작품 선정‧공간 구성까지 모든 과정을 전담하는 경우도 있어요. 전시 작품을 비추는 등을 달거나, 진열장을 닦기도 하죠.
- 여진: 전시품을 어떻게 옮기고 배치할지 결정하려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아요.
- 작품에 손상이 갈까 봐 긴장돼서 힘들 때도 있죠. 모든 전시품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예술 작품이니까요. 예를 들어 국보로 지정된 도자기를 상자에서 꺼낼 때는 긴장하죠. 민화는 그림이기에 깨지지 않지만 찢어질 수도 있어요. 전시실은 아무 것도 없는 빈 공간인데, 한정된 곳에 여러 개의 큰 그림을 어떻게 전시할지, 벽에 거는 그림과 접을 수 있는 병풍을 어떻게 설치할지 공간을 구축하는 데 많은 노력을 했죠. 그림 전시하려고 벽처럼 서 있는 부분 등은 공사를 새로 했습니다.
글=성선해 기자 sung.sunhae@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호림박물관, 동행취재=심여진(서울 을지초 4)·김태균(서울 위례별초 4)·조유민(경기도 매송초 4)· 장예현(경기도 중앙기독초 6)학생기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민화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데 작품을 보고 학예사님의 설명도 들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학예사님이 설명도 쉽게 해주시고 질문에 대한 답도 잘 해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저는 괴석과 모란이 같이 있는 ‘모란괴석도’가 기억에 남아요. 민화는 그림에 우리의 역사가 담겨 멋있는 것 같아요.
김태균(서울 위례별초 4) 학생기자
민화 전시회 방문은 처음이라 긴장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민화에는 다 얽힌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송민수 도슨트님과 유진현 학예사님이 설명도 잘해주셨어요. 그림 소재마다 상징하는 의미가 있어서 신기했어요. 예를 들어 모란은 부귀영화, 참새는 장원급제(기쁜 소식), 한 쌍의 새는 부부를 나타낸대요. 이번 전시 취재를 통해 제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 바뀌었어요. 그것은… 모란! 여러분도 민화 전시 꼭 보러 가세요!
심여진(서울 을지초 4) 학생기자
이번 취재로 민화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어요. 민화를 본 적 없다고 생각했는데 오만원권 속 신사임당의 그림도 민화라는 사실에 매우 놀랐습니다. 도슨트님께서 친절하게 잘 설명해 주셔서 귀에 쏙쏙 들어왔고요. 저는 평양성도가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붓으로 그린 옛날 그림임에도 섬세하고, 멀리서 보면 진짜 사진 같아요.
조유민(경기도 매송초 4) 학생 기자
이번 취재를 통해서 민화와 학예사라는 직업에 대해 잘 알게 되어서 정말 좋았어요. 저는 민화가 단순히 서민들의 생활상을 그렸다 여겼는데, 왕이 백성들의 삶을 알기 위해 제작한 경우도 있음을 알게 되었어요. 관람했던 그림 중에는 ‘평양성도’와 ‘자수화조도’가 기억에 남아요. 유진현 학예사님과 인터뷰에서 학예사가 전시 기획 외에도 손상된 작품을 복원하는 등 여러 일을 한다는 말씀을 듣고 놀라기도 했죠.
장예현(경기도 중앙기독초 6) 학생기자
庭園(정원)의 풍경: 인물·산수·화조
장소: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317 호림아트센터 1빌딩 호림박물관 신사분관
전시 기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상황에 따라 종료 날짜는 유동적
관람 시간: 월~토,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매주 일요일, 1월 1일, 설날·추석 연휴 휴관)
입장료: 성인 8000원, 청소년·장애인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