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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김정은 투톱쇼 끝났다, 바이든 시계는 느리게 갈 것

중앙일보

입력

제 46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제 46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 [로이터=연합뉴스]

미 대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승리하면서 한·미관계 및 북·미 관계에도 대대적인 변화가 예상된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톱-다운(Top down) 방식'에 맞춰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오던 정부의 로드맵도 일정 부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바이든 당선인이 밝힌 '원칙에 입각한 대북관계', 실무협상을 우선하는 '바텀-업(Bottom up) 방식'에 따라 대미 접근법을 전면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바이든 후보는 한반도 비핵화 협상과 관련, "북한이 핵 능력을 줄이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겠다(10월 22일 최종 TV 토론회)"는 입장을 밝혀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쇼맨십 성' 정상회담이 아닌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결과가 도출돼야 만남에 응하겠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향후 한반도 비핵화 협상은 '실무 협상→고위급 협상→정상회담'이라는 단계적 협상 원칙이 지켜지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북한이 이런 방향 전환에 보조를 맞춰줄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당장 바이든 당선인 취임 때까지의 지도력 공백 기간에 여유를 주지 않고 미국을 몰아붙이며 시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천천히 그리고 깐깐하게' 北 비핵화 협상 난항

조 바이든(가운데) 제 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3년 부통령 시절 손녀 피너건양과 함께 판문점 인근 올렛초소(GP)를 방문해 대니얼 애드완 당시 JSA 유엔군사령부 경비대대장(맨 우측)으로부터 비무장지대(DMZ) 경계태세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왼쪽은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  [사진공동취재단]

조 바이든(가운데) 제 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 2013년 부통령 시절 손녀 피너건양과 함께 판문점 인근 올렛초소(GP)를 방문해 대니얼 애드완 당시 JSA 유엔군사령부 경비대대장(맨 우측)으로부터 비무장지대(DMZ) 경계태세에 대해 브리핑을 받고 있다. 왼쪽은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 [사진공동취재단]

전문가들은 미국과 북한의 협상이 매우 '천천히 그리고 까다롭게' 변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재선 시 북한과의 즉각적인 대화'를 내걸었던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바이든 당선인의 협상 시계는 아주 느리게 흘러갈 것이란 전망이다.

우선 바이든 당선인은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친화적 대북정책이 '폭력배(thug)' 같은 북한 정권의 무기 개발에 정당성을 부여해줬다"고 지적해 온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4년간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Review)하는 절차가 예상된다. 또 새롭게 대북 협상을 주도할 인사들의 인선 절차도 거쳐야 한다.

한 외교 소식통은 "미국과 북한이 본격적으로 비핵화 대화를 시작하는 데는 적어도 1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바이든의 외교안보라인 중에서도 북한과의 대화를 중시하는 온건파가 있긴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양측 정상이 쉽게 만나는 일은 일어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어렵게 비핵화 협상에 착수하더라도 북·미가 합의에 도달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으로 인해 북·미간 '빅딜'이 성사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바이든 당선인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물론 실행을 위한 구체적 계획 등을 요구하며 '스몰 딜'을 통한 단계적 합의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조선중앙TV가 지난해 3월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작별' 장면. [조선중앙TV=연합뉴스]

조선중앙TV가 지난해 3월 공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하노이 작별' 장면. [조선중앙TV=연합뉴스]

일례로 바이든 후보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탈퇴한 '이란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의 이유로 제시했던 우라늄 농축에 대한 영구 제한 및 모든 핵 시설에 대한 즉각적 조사 허용 문제 등에 대해서는 바이든 당선인도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트럼프의 정책 결정을 비판하면서도, 그로 인해 이익이 될 수 있는 요소들은 가져가는 '체리 피커(Cherry Picker·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사람)'식 협상을 할 것이란 분석이다. 물론 핵 능력이 이미 완성된 북한과 이란 핵협상은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바이든 당선인의 이 같은 깐깐한 협상 방식은 북한과의 협상에서도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또 지난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추가적인 주요 핵시설 폐기를 요구하는 '영변+알파(α)안'을 제시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향후 북한과의 핵협상에서 이보다 낮은 수준의 요구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위성락 전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북한도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미국에 대한 요구 수위를 높이고 있기 때문에 손쉽게 결실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 인권문제·한미연합훈련 강화…남북관계 긴장요소로

조 바이든(맨 왼쪽) 제 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부통령 시절이던 지난 2013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몰 미군장병에 헌화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북한에 억류 중이던 미국인 메릴 뉴먼씨의 석방 소식을 듣고 "좋은 소식"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조 바이든(맨 왼쪽) 제 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부통령 시절이던 지난 2013년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전몰 미군장병에 헌화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당시 바이든 부통령은 북한에 억류 중이던 미국인 메릴 뉴먼씨의 석방 소식을 듣고 "좋은 소식"이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사진공동취재단]

트럼프 대통령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바이든 당선인은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와는 다른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관성 때문에라도 북한 인권문제가 다시 한반도의 주요 의제 중 하나로 올라올 수 있다. 바이든 당선인이 공개석상에서 북한의 인권 문제를 거론하며 김 위원장을 '인권 침해자' 등으로 지칭한다면 북·미 관계가 냉각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다.

특히 이는 정부에도 새로운 압박 요소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2008년 이후 11년 만에 유엔 대북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빠진 바 있다. 올해도 공동제안국 회의에 불참했으며, 최종적으로 공동제안국 명단에서 빠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인권 문제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보다 민감하게 대응하는 바이든 정부는 한국의 이같은 대북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불참 등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수 있다"며 "북한 인권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한국 정부에 주문하는 것들이 많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미연합훈련의 사전 연습 성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이 시작된 지난 8월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들이 계류돼 있다.  한국과 미국 군은 예년보다 축소된 규모로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연합군사훈련을 진행했다. [뉴스1]

한미연합훈련의 사전 연습 성격인 위기관리 참모훈련이 시작된 지난 8월 오후 경기도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들이 계류돼 있다. 한국과 미국 군은 예년보다 축소된 규모로 8월 16일부터 28일까지 연합군사훈련을 진행했다. [뉴스1]

트럼프 대통령이 비용 문제를 들어 꺼렸던 한·미연합훈련도 강화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갑작스럽게 한·미 엽합훈련 중단을 거론하면서 "(한·미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6시간씩 괌에서 비행기가 한국까지 날아오는 데 비용이 정말 많이 든다"면서 비싼 값을 치르고 진행하는 `훈련(war game)`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18년 8월 예정됐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이 취소됐고, 2019년 첫 한·미연합훈련인 '동맹'이 대폭 간소화돼 진행됐다.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북한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한다는 등의 이유로 훈련 규모와 일정이 더욱 축소됐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이 특히나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던 변수였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북한을 겨냥한 훈련이라고 보고 강하게 비난해왔다. 2017년에는 한·미 연합군사훈련 문제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가져가려다 별 호응을 얻지 못하자 안보리를 ‘꼭두각시’라며 비판하는 일도 있었다. 때문에 바이든 행정부에서 훈련이 부족하다는 군의 의견을 수용해 연합훈련을 강화할 경우 북한과의 마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방위비 분담금 협상만은 '단기적 순항' 예상

지난 3월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한미 간 7차 회의를 마친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왼쪽)와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지난 3월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한미 간 7차 회의를 마친 정은보 한미 방위비분담협상대사(왼쪽)와 제임스 드하트 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정치군사국 선임보좌관)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외교부]

트럼프 행정부 들어 교착상태에 빠졌던 한·미 방위비 분담금특별협정(SMA)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바이든 당선자는 SMA 문제에 대해 "한반도가 핵위기에 놓여있는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비용 분담을 대폭 인상하라며 동맹인 한국을 갈취하려 했다"며 "공정한 분담 기여를 권장하겠지만, 결코 폭력단처럼 동맹을 대우하지는 않을 것(2020 대선 민주당 정강 정책 초안)"이라는 입장을 피력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를 '갈취(Extort)'라고 표현한 만큼 당장 분담금을 더 받아내는 것 보다는 동맹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원칙을 천명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한·미가 첨예하게 충돌했던 전환배치 비용, 역외 훈련비용 등의 새로운 카테고리를 추가하는 형식의 '트럼프 식' 무리한 요구는 철회될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만, 총액 측면에서는 한국 측이 트럼프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전년 대비 13% 인상'을 제안했던 만큼 바이든 정부도 이 수준에서 협상을 진행하려 하지 않겠냐는 분석이다. 13% 인상률을 적용 시 10차 SMA에서 타결한 액수인 1조389억원을 고려하면 1조1740억원 수준으로, 약 1000억원 이상을 올려주게 된다.

다만, 방위비 분담금 협상 순항은 한국에 '단기적 희망'이 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단기적으로는 트럼프 행정부가 훼손한 동맹의 가치를 되살리기 위해 비교적 순탄하게 협상을 진행할 수는 있지만, 바이든 정부 또한 한국의 방위비 분담 비중을 늘려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며 "장기적으로는 바이든 정부의 원칙에 따라 협상이 까다로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수혁 주미대사도 최근 국회 국정감사에서 "바이든 캠프도 한국이 내는 방위비 분담금이 이전보다는 증액돼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2008년 오바마 취임發 위기 재현되나 

북한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북한이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미 본토를 겨냥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공개했다. [노동신문 홈페이지 캡처]

바이든의 승리로 북한의 군사적 도발 위험성도 트럼프 행정부 때와 비교해 더욱 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군사적 도발을 예고했으나, 미 대선을 앞둔 올해 '저강도 도발'로 수위 조절을 해왔다.

코로나19로 인한 북한 내부적 상황도 있었지만, 미국 대선판에서 열세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부정적 영향을 주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만큼 북한으로선 도발을 자제해야 할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새로운 협상 파트너를 향해 기선 제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바이든 당선자가 취임하는 1월 20일을 기점으로 북한이 군사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북한은 미국 대선 이후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으로 '시선 끌기' 도박을 감행해왔다. 지난 2008년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약 2개월 뒤 서해상에 단거리미사일 수 발을 발사했다.

이어 2009년 5월 25일 북한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두 번째 핵실험을 강행했다. 당시 도발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과 남북관계 경색이라는 배경도 작용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선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충분히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위성락 전 본부장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북정책 재검토를 진행하며 북한과의 대화가 지체되는 동안 북한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가능성은 작다"며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공개한 신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이나 신형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추가 핵실험 등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강해질수록 북·미 대화 상황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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