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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승현의 시선

잘못은 덮어버리는 여권의 포장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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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승현 기자 중앙일보 사회 디렉터
김승현 정치에디터

김승현 정치에디터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만나는 고위 당정(黨政) 회의를 볼 때마다 미안하게도 ‘당의정(糖衣錠)’이 떠오른다. 쓰디쓴 내용물 위에 설탕을 입힌 알약(sugar-coated tablet) 말이다. 비슷한 발음보다도 그 뒤에 숨은 노림수가 연상 작용을 일으킨다. 당의정은 불쾌한 약 냄새를 덮어 삼키기 쉽게 하고, 외관도 예쁘게 꾸미는 게 목적이다. 약효와는 무관하다.

정책 혼선 “친서민·진정성” 변명 #실책·모순 당의정 궤변으로 포장 #덮으려 해도 국민은 명약 알아봐

그런 기능을 문재인 정부의 당정이 보여주고 있다. ‘당의(糖衣)’ 기술이 장인 수준이다. 최근 민주당과 정부의 주식양도 소득세 공방만 봐도 그렇다. 세금을 내는 대주주 요건을 현행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게 기획재정부의 입장이었는데 민주당이 제동을 걸었다.

국민의 세 부담을 민주당이 막아냈다는 실속을 챙겼으니 당의 목표는 달성된 듯하다. 그러나, 입 안에 남은 단맛이 찝찝하다. 대주주 기준을 낮춰 주식 양도세를 물리는 정책은 2017년 정부와 국회가 세법 개정을 통해 단계적 인하(15억→10억→3억)에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공평 과세의 원칙과 세계적 트렌드까지 반영한 로드맵이었다. 부과 대상도 한 종목에 3억원 이상 투자할 수 있는 ‘부자’들로 전체 주식 투자자(2500만여 명)의 1% 안팎이었다.

부자 증세에 망설임 없던 민주당이 이번엔 홍남기 경제 부총리를 몰아붙이면서까지 막아선 이유는 하나로 귀결된다. 향후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고 본 것이다. 주가 하락을 걱정하며 불만을 터뜨리는 동학개미들에게 사탕을 물리고, 아파트 한 채만 갖고도 과세표준 급현실화로 세금 폭탄을 맞게 된 중산층에 초콜릿을 안겨야 했다. 공평 과세는 집어치우고 ‘친서민’이라는 달콤한 포장만 뒤덮은 것이다. 오죽했으면 홍 부총리가 국정감사에서 “2년 전에는 바람직하다고 입법하지 않았느냐”고 여당에 불만을 터뜨렸을까.

민주당은 코로나19로 급변한 환경에서 국민의 부담을 줄이겠다는 명분을 고수했다. 우격다짐 같은 애민 정신 앞에 홍 부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표까지 던졌다. 정책의 일관성을 외치는 경제 관료의 소신과 여당이 충돌하는 순간, 다시 한번 신묘한 ‘당의 기술’이 시전됐다. 사표를 앞에 둔 문 대통령은 “그가 경제 회복을 이끌 적임자”라며 재신임했고, 경제수장은 “인사권자의 뜻을 따르겠다”며 순한 양이 됐다.

야당은 “국민을 우롱했다”며 사과를 요구(6일 기재위)했지만, 홍 부총리는 “저의 진정성을 이해해달라”며 거부했다. 공평 과세 로드맵은 다시 파묻혔다. 겉과 속이 다르고 앞과 뒤가 안 맞으면 어떤가, 국민이 쉽게 삼켰으면 됐지. 당·정·청 갈등을 일거에 해결한 신뢰와 진정성이 경제를 살리는 명약이길 바라고 또 바란다.

이가 시릴 정도로 달달한 여권의 포장 기술은 이미 익숙하다. 도덕성을 담보하려고 만든 무공천 당헌을 무력화하면서 “도덕적 후보를 내겠다”(이낙연 대표)는 약속어음을 썼고, 유권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었다. 까도 까도 민주당의 잘못은 찾을 수 없는 포장의 늪에 빠진 기분이다.

끔찍한 총격 피살과 성추행 피해는 ‘배움의 계기와 기회’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내년도 예산을 설명하는 시정연설에서 북한군의 총격은 쏙 빼고 ‘서해 국민 사망’이라 명명했다. 이어 “평화체제의 절실함을 다시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정성스런 포장을 북한도 눈치챘는지 “남측에 우선적인 책임이 있다”(지난달 30일 조선중앙통신)는 화답을 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피해자를 ‘피해 호소 여성’이라 표현했다가 호된 질책이 쏟아진 지 100여 일밖에 안 지났는데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민 전체가 성인지에 대한 집단 학습을 하는 기회”라고 했다. 피해자 측이 “학습이 필요한 건 여가부 장관, 학습하지 않은 것은 정부 여당”이라고 울분을 토할 만하다.

여권의 포장된 전횡은 멈추지 않는다. 월성 원전의 경제성이 잘못 평가됐다는 감사 결과에 뒤이은 검찰 수사에 “정치인 검찰총장이 정부를 공격하고 흔들기 위한 과잉수사”(추미애 법무부 장관)라는 비판이 가해진다. 정책 결정 과정이 수사의 성역이 아닌데도 검찰권 남용 프레임을 짰다. 임기제 검찰총장을 쫓아내려는 준동은 검찰개혁으로 치장하고, 수사 대상인 정치권이 검찰에 재갈을 물리는 이율배반은 민주적 통제로 분칠한다. 약효는 사라진 ‘개악’이자 ‘민주당적 통제’일 뿐인데도 말이다. 명약은 입에 쓰다는 걸 다 아는 국민 앞에서 이제 그만 ‘슈가 코팅 쇼’를 멈추길 바란다.

김승현 정치에디터